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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정보

황혜인-당시 20세

황혜인-당시 20세

황혜인(당시 20세)

1996년 4월16일 성균관대학교 율전 캠퍼스 학생회관 3층 여학생 화장실에서 물리학과 95학번 황혜인 동지가 분신, 자결하였다. 언론은 황혜인 동지의 죽음을 총선패배에 대한 비관자살로 보도했다. 과연 그런가. 성균관대 총학생회에서 발표한 공식입장과 동지의 유서, 글들을 살펴보았을 때 동지는 김영삼정권의 민중탄압에 맞서 노동해방, 민중해방을 위해 더욱 힘차게 투쟁할 것을 살아남은 이들에게 절규하기 위해 자신의 한 목숨을 기꺼이 바쳐 산화해 간 것이다.

<유고글>

(일기)

내몸이 타가고 있다. 죽음이 눈 앞에 보인다.
관념론자들은 날 정당치 못한 행동이라 하겠지.
유물론자들은 날 비겁하다 하겠지.
하지만 난 내가 할 수 있는 대중의 의식화 조직화를 위해 이 길이 최선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종교론자들이 애기하는 지옥에 가도 나는 상관없다.
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현정권에 대한, 대중의 의식의 변함이 있길 바랄 뿐이다.
난 노동해방을 보고 죽기를 바랬다.
그러나, 나의 역량은 날 이길로 선택하게 했다.
뜨겁다 괴롭다.
부모님의 얼굴 동지들의 얼굴이 눈앞에 스쳐간다.
하지만 보다 많은 이들이 노동해방을 위해
정권타도를 위해 자본가 타도를 위해
이 세상의 변혁을 위해 투쟁하기만을
난 지금 바랄뿐이다...
이제... 그 실천을 동지들이 해주길..
결의를 해야할 것 같다.
더 이상 개념없이 산다라는 얘기는 듣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내 자신이 커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이젠
노동해방 노동자가 되는 그날까지
열심히 투쟁하세요

<추모글>
(결의문 - 동지의 죽음을 투쟁으로 보답하자!!)

故 황혜인 동지의 죽음은 분명히 비관자살이 아니다. 작년 11월 이후 김영삼정권에 의해 수 많은 동지들이 산화해 가셨다.

어용노조의 희생자 김시자 동지, 살인철거의 희생자 신연숙 동지, 병역특례해고자 조수원 동지, 살인철거 공권력의 폭력 희생자 이덕인 동지, 사학비리 경찰고문희생자 장현구 동지, 대선자금 공개 교육재정 확보 요구 중 살해당한 노수석 동지, 사학재단에 맞서 싸우다 분신한 경원대 진철원 동지, 등록금투쟁 후 단식 후유증으로 사망한 권희정 동지. 고 황혜인 동지는 이들의 죽음이 우리의 투쟁으로 힘있게 진행되어지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했으며, 자신 역시 동지의 죽음을 강고한 투쟁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다.

“무얼하며 밤을 지샜던가 대자보 문건을 만들었고, 지난날 쓴 대자보 28장이 나의 노력의 댓가라 생각하지만 성과는 없었다. 분노하라 외쳤지만 분노하는 학우는 보이지 않고, 투쟁하라 외쳤지만, 투쟁하는 학우는 보이지 않았다.”

-(동아리연합회 날적이 중 4월 8일에 황혜인 동지가 적은 글)

故 황혜인 동지는 자신의 죽음으로서 우리에게 투쟁하라 외치고 있는 것이다. 더욱 더 강고해 지는 김영삼 정권의 민중탄압에 맞서, 노동자와 민중의 해방을 위해 더욱 더 분노할 것을, 더욱 힘있게 투쟁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제도 언론에서는 황혜인 동지의 죽음을 총선의 패배에 대한 비관과 개인적인 고민으로부터 돌출되어진 비관자살로 몰아가고 있다. 제도 언론과 정권의 이러한 축소, 왜곡보도를 우리는 우리의 투쟁으로 힘있게 깨뜨려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고 황혜인 동지의 죽음이 단순한 고민속에서의 비관자살이 아닌 전체 민중운동진영과 우리에게 보내는 마지막 결의, 우리에게 보다 더 강고하게 투쟁할 것을 결의하는 몸짓임을 알려낼 것이다.

동지가 적은 마지막 글귀를 우리의 가슴속에 새기자.

“노동해방 노동자가 되는 그날까지 열심히 투쟁하세요”

<성균관대 총학생회 >

열사 추모시

김영위

인간의 몸은 탄소라
거기에 질소와 수소
산소 조금이라
아름답게 타오른다
우리의 몸은 우리 것이라
육체의 소모 방식은
우리의 마지막 자유라
영원히 침해당하지 않으리

혹한에 더 이상 태울 것이 없을 때
무엇으로 추위를 녹여야 하나
고민하다
고민을 거듭하다 나온 결론이
탄소 질소 수소 산소 조금이라면
용광로보다 성난 열기가
이불이 되어 우리를 덮으리

열사의 불꽃은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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