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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정보

홍장길-당시 59세

홍장길-당시 59세

홍장길(당시 59세)

1939년 7월 8일 경남 밀양군 하남읍 백산리 출생
밀양수산 동명중학교 졸업
파월장병으로 지원하여 맹호 26연대 복무
1973년 연희교통(현재 국민캡)입사
1992년 노동조합 상임위원 재임
1994년 노동조합 고문으로 선임 활동
1997년 5월 31일 국민캡 휴게실에서 음독자살
홍장길 동지는 밀양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때어나 가난의 굴레를 벗고자 박정희 정권의 인력 수출정책아래 파월장병이라는 미명하에 월남전에 참여하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가난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남들이 천하게 여기는 택시 노동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하지만 택시 사업주의 이윤창출을 위해 현대판 노예제도를 도입하여 무사고 10년에 개인택시 영업권이라는 제도에 올가미를 씌워 족쇄를 채우고 그것도 모자라는 듯이 자본가속성의 마각을 드려내듯이 회사를 분할매각하고 사람을 택시의 부품처럼 끼워팔아 노동조합을 와해 시키는 행위를 국민캡 사장 허준도는 서슴없이 자행하였다

하지만 홍장길 동지는 이에 분할매각 완전철회를 외치며 24년 8개월이라는 한많은 국민캡 노동자생과 60년 인생을 택시 자본가에게 죽음으로서 저항한 것이다.

<b>동지가 남긴 글</b>

<b><유서></b>

민주노총 동지들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그리고 국민캡 노동조합 위원장 내 시체를 집에 옮기지 말 것.

국민캡 마당에 빈소를 차릴 것

그리고 부산시장 문정수, 허준도 똘마이 우종수가 나를 짓밟고 나를 죽였다.

민주노총 그리고 국민캡 조합 동지 여러분 복수해 주기 바란다

1997. 5월 홍장길 올림


<b>홍장길 동지의 자녀가 쓴 글</b>

이젠 정말 목놓아 부르고픈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께

사랑하는 아버지! 사랑하는 아버지!

이젠 정말 목놓아 부르고픈 나의 아버지!

아버지 벌써 4일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 갔습니다.

이젠 뭐라고 말씀좀 해보세요? 그렇게 힘없이 누워 울지만 마시고 무슨 말이라도 해 보시란 말예요? 네?

우리가 납득할 수 있도록 아무 말씀이나 해보시란 말예요

... 아버지 ...! 아버지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요

아버지의 그 목소리가 듣고 싶단 말예요.

아버지! 이젠 더 이상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아요.

아니 영원히 믿지 않을 거예요.

<b>장례대책위원회 유인물</b>

고 홍장길 동지가 우리곁을 떠나던 날

차량넘버 1호, 근속연수 24년8개월. 국민캡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던 고 홍장길동지(60)는 노조가 분할매각 철회를 위한 전면투쟁에 들어갔던 바로 그날부터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궂은 일을 마다않고 앞장서 싸워왔던 한 늙은 노동자이었다.

분할매각 철회 전면투쟁 31일째를 맞았던 5월30일 저녁. 국민캡노조는 완전고용승계가 이루어질 경우 양수사와 합의하는 안건을 토론하고 있었다. 조합원들이 대체로 합의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아갈 때, 홍장길동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합의에 결사반대하는 격변을 토하였다. 홍장길 동지의 의견은 분할매각 자체가 철회될 때까지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5월31일 새벽1시 국민캡노조는 양수사와 완전고용승계를 조건으로 내용적인 타결을 보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10시 노조는 조합원앞에서 이 타결내용을 보고하였고 11시 이춘근 노조위원장이 합의서에 도장을 찍으러 부산시청으로 향했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남상철 부위원장이 조합원들과 함께 계속 질의, 응답시간을 가졌다. 11시반 문정수시장과 마주한 이춘근위원장은 11시50분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양수사는 이미 한시간전 도장을 찍고 돌아간 상태였다. 11시50분 바로 그 시각. 부위원장과 질의, 응답시간을 마치고 휴게실로 간 홍장길동지는 가슴속에 품어왔던 비닐봉지 속의 약물을 마셨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조합원에 의해 발견돼 신속히 삼선병원으로 실려간 홍장길동지는 그만 이송중에 싸늘한 시신이 되고 말았다.

휴게실에서 홍장길동지를 처음 발견한 조합원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질의응답시간을 마치고 갑자기 홍동지가 보이지 않아 급히 찾아 헤매다 휴게실에서 누워있는 것을 발견했지요. 주무신다고 생각했으데 왠지 이상해 다가가서 몸을 만져보니까 이미 빳빳한 거 아입니까. 옆에 있는 막걸리병에 이상한 액체가 있어 코를 대보니 냄새가 너무 독해 잠시 얼굴도 대기 힘들 지경이었지요. 액체가 바닥 스치로폴에 떨어져 있었는 데 그 자리가 스치로폴이 타들어가서 푹 꺼져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미망인이 된 부인 윤옥순씨는 당일 아침상황을 이렇게 얘기해 주셨다. “새벽에 술을 잔뜩 드시고 들어오셨는데, 아침식사를 잘드셨어요. 지금까지 밖에서 싸울때 집에 들어오라고 하지 않았지요. 그런데 그날따라 왠지 안나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 일찍 들어올테니 집에 계시라고 신신당부를 드렸어요. 그랬는데 결국 나가서 그런 일이 벌어지다니….” 말끝을 맺지 못하고 통곡을 터트리는 미망인. 잠시후 계속 말을 이으셨다. “아침일찍 차비가 있는지 주머니 지갑을 뒤져보니까 4,000원이 들어있었어요. 차비하고 담배값말고는 돈이 없었을 텐데. 나중에 알아보니 새벽에 술을 먹고 나서 함께 투쟁하던 조합후배가 형 차비하라고 찔러준 돈이었대요. 그 돈으로, 그 돈으로 약국에서 약을 구해서….”

홍장길 동지는 가슴이 여리고 눈물이 많았다. 그것은 언제나 분노의 눈물이었다. 투쟁을 하는 나날 밤늦게 동료들과 술을 한잔 마시면 흔히 가슴을 치고 분루를 흘리면서 이렇게 울분을 토하였다. “내는 죽을끼다. 내 이제 이 나이에 가면 어디로 갈끼고. 여기는 내 청춘을 다바친 직장이다. 내는 끝까지 여기서 싸우다 여기서 뼈를 묻을끼다!”

결국 홍장길동지는 평소의 말씀대로 청춘을 다 바친 직장에 뼈까지 다 바치고 이렇게 우리곁을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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