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열
1935.1.23. 전남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125번지 출생
이리상업고등학교 졸업
2015.8.12. 일본대사관 앞 정기 수요집회 현장에서 가족에게 남기는 자필 유서,
‘칠천만 동포에게 고함’, ‘나라사랑’ 시를 남기고 분신 항거
2015.8.21. 중증화상에 의한 패혈증으로 운명
2015.8.23.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동지의 삶과 죽음
고 최현열 선생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2013년 5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사무실을 찾아와 국권 회복 활동을 격려하고 2014년 5월부터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후원회원으로 활동하심.
부친은 항일독립운동에 참여한 최병수(작고)님으로 1932년 6월 조선의 독립 쟁취를 목적으로 한 ‘영암 영보 농민 독립만세 시위 사건’에 참여해 치안유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1년 형을 언도 받고 고초를 겪은 바 있으나 독립유공자 추서는 안되었음.
고 최현열 선생은 언론을 통해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의 소식을 접했다며 사무실을 찾아오셔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미쓰비시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재판이 있을 때마다 여러 차례 법정을 찾아 힘을 보태는 등 평소 국권회복과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여 옴. 2014년 10월부터는 광주에서 서울까지 직접 상경,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하는 수요집회에 수차례 참가함. 그리고 2015년 8월 12일, 광복 70년이 되도록 해결되지 않는 일제 피해자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며 분신으로 항거하심.
2015년 8월 21일 중증화상에 따른 패혈증으로 운명
이리상업고등학교 졸업
2015.8.12. 일본대사관 앞 정기 수요집회 현장에서 가족에게 남기는 자필 유서,
‘칠천만 동포에게 고함’, ‘나라사랑’ 시를 남기고 분신 항거
2015.8.21. 중증화상에 의한 패혈증으로 운명
2015.8.23.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동지의 삶과 죽음
고 최현열 선생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2013년 5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사무실을 찾아와 국권 회복 활동을 격려하고 2014년 5월부터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후원회원으로 활동하심.
부친은 항일독립운동에 참여한 최병수(작고)님으로 1932년 6월 조선의 독립 쟁취를 목적으로 한 ‘영암 영보 농민 독립만세 시위 사건’에 참여해 치안유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1년 형을 언도 받고 고초를 겪은 바 있으나 독립유공자 추서는 안되었음.
고 최현열 선생은 언론을 통해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의 소식을 접했다며 사무실을 찾아오셔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미쓰비시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재판이 있을 때마다 여러 차례 법정을 찾아 힘을 보태는 등 평소 국권회복과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여 옴. 2014년 10월부터는 광주에서 서울까지 직접 상경,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하는 수요집회에 수차례 참가함. 그리고 2015년 8월 12일, 광복 70년이 되도록 해결되지 않는 일제 피해자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며 분신으로 항거하심.
2015년 8월 21일 중증화상에 따른 패혈증으로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