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기
- 1958년 충북 옥천에서 출생
- 1984년 기아자동차 입사
- 1987년 어용노조 퇴진과 임금인상을 위한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 대식당 식판사건으로 구속, 해고
- 1989년 기아자동차 해고자복직추진위원회 결성
- 1989년 이종대열사 분신대책투쟁 전개
- 1991년 고등법원에서 복직 승소 판결
- 1991년 기아자동차 6.28투쟁으로 3년간 수배 생활
- 1993년 기아그룹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및 전국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결성, 복직투쟁 및 단식투쟁
- 1994년 수배해제 후 임금인상과 해고자복직을 위한 120일간 출근투쟁 및 농성투쟁 전개
- 1995년 전국자동차산업노동조합총연합 사무처장, 민주노총 준비위 집행위원
- 1995년 기아그룹민주노동자회 초대의장
- 1996년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으로 원직 복직
- 1998~2000년 기아자동차 민주노동자회 의장
- 2000년 민주노총 1기 통일선봉대 대장
- 2000~2003년 민주노동자전국회의 의장
- 1997~2004년 기아자동차노동조합 교육위원 / 노동자, 조합원 교육
- 2004년 전노회(자주민주통일과 노동해방의 길로 전진하는 노동자회) 지도위원
- 2004년 금속산업 연맹 3기 위원장 후보 출마
- 2005년 현장을 생명처럼, 대중을 주인으로, 투쟁으로 희망을!을 기치로 현장에서 다시 서는 전국회의 혁신본부 구성 및 활동
- 2006년 산별노조 건설, 현장권력 쟁취, 비정규직투쟁 승리를 위한 현장공동투쟁위원회 소집권자 기아자동자 화성 비정규직 투쟁
- 2007년 금속노조 5기 임원선거 현장을 생명처럼! 조합원을 주인으로! 투쟁으로 희망을! 기치로 임원선거에 출마
- 2009년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4월 10일 운명
[추모시]
형의 확신 깊이 새기리라
형이 들고 떠난 꽃 한송이에 한철 넘게 눈이 내렸는데
우리가 놓아두었던 꽃 한송이에
어느새
봄기운은 소리도 없이 곁에 서 있습니다.
간당에 울리던 목소리
우리들의 피가 우리들의 무기라고
노동자의 피 속에 감추어진 비밀을 깨닫는 순간
빗나갈 수 없는 화살이 되어 기어이 해방의 영마루에 올라 설 거라고
마이크마저 소름끼치게 했던
확신에 참 그 목소리
아직 가슴속에서 팔닥팔닥 뛰고 있습니다.
우리 노동자 파업이 외세를 몰아내는 통일투쟁이 된다고
임투가 순식간에 매향리 파업으로 전화되어 가던 길에
후배들보다 한발 앞서 걸으며
노동자 투쟁의 정확한 과녁을 말씀하시던
그 몸짓이 사진처럼 박혔습니다.
맨처름 노동자 통일선봉대를 이끌고
오일팔 묘역으로 오시던 그날
그 하얀 이를 한꺼번에 드러내고 쑥스럽게 웃으시던
확신에 찬 그 미소가
아지랑이 같이 소리없이 다가와
더운 가슴에서 다시 자라고 있습니다.
"동지" " 조직"
수잔으로 말하지 말고
심장이 하는 소리, 그 결기서린 언어를 들어라
아, 그 떨리던 밤, 뒷풀이가 그립습니다.
자본의 논리가 스며들어
뒤죽박죽 삶과 꿈이 흐트리져 가는 것을 부끄러워하되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장을 핑계삼지 말라던
에둘러 돌아가려는 우리들의 비겁과 나약함이 더 무섭다고
적개심으로 불태워 버리라던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노래만 부르지 말고
울지도 말고 불태워 보라던
힘들다 하여
깃발을 절대로 내려 꽂지 말고
어떻게 갈 건지만 늘 고민하라던
타닥타닥 타오르던 모닥불 같은
목소리를 떡하니 새겨두었습니다.
형이 가지고 간 것
우리들이 놓아두고 간 것
빛깔 고운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공장 안팎의 세월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래서 서러움으로
뒤척이다 말고 돌아 누운 여러날 동안
밤이 더욱 깊어 울었습니다.
그 밤을
걸어 나오면서
여명을 향해 다시 걷고 있는 동지들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우리가 모여 가는 길목에 조직적인 팻말하나 떡하니 걸어 두었습니다.
형과 함께 꾸던 꿈을 잊지 말자고 떡하니 걸어 두었습니다.
형,
어둠에서 새벽은 순식간에 온다는데
형,
붉은 태양 여명으로 오십시오
함께 가십시다
우리들
노동자들의 피속에 감추어진 진실을 일깨우는
그 목소리를 닮은
꽃 한송이를 오늘 또 올려 놓습니다.
- 1984년 기아자동차 입사
- 1987년 어용노조 퇴진과 임금인상을 위한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 대식당 식판사건으로 구속, 해고
- 1989년 기아자동차 해고자복직추진위원회 결성
- 1989년 이종대열사 분신대책투쟁 전개
- 1991년 고등법원에서 복직 승소 판결
- 1991년 기아자동차 6.28투쟁으로 3년간 수배 생활
- 1993년 기아그룹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및 전국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결성, 복직투쟁 및 단식투쟁
- 1994년 수배해제 후 임금인상과 해고자복직을 위한 120일간 출근투쟁 및 농성투쟁 전개
- 1995년 전국자동차산업노동조합총연합 사무처장, 민주노총 준비위 집행위원
- 1995년 기아그룹민주노동자회 초대의장
- 1996년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으로 원직 복직
- 1998~2000년 기아자동차 민주노동자회 의장
- 2000년 민주노총 1기 통일선봉대 대장
- 2000~2003년 민주노동자전국회의 의장
- 1997~2004년 기아자동차노동조합 교육위원 / 노동자, 조합원 교육
- 2004년 전노회(자주민주통일과 노동해방의 길로 전진하는 노동자회) 지도위원
- 2004년 금속산업 연맹 3기 위원장 후보 출마
- 2005년 현장을 생명처럼, 대중을 주인으로, 투쟁으로 희망을!을 기치로 현장에서 다시 서는 전국회의 혁신본부 구성 및 활동
- 2006년 산별노조 건설, 현장권력 쟁취, 비정규직투쟁 승리를 위한 현장공동투쟁위원회 소집권자 기아자동자 화성 비정규직 투쟁
- 2007년 금속노조 5기 임원선거 현장을 생명처럼! 조합원을 주인으로! 투쟁으로 희망을! 기치로 임원선거에 출마
- 2009년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4월 10일 운명
[추모시]
형의 확신 깊이 새기리라
형이 들고 떠난 꽃 한송이에 한철 넘게 눈이 내렸는데
우리가 놓아두었던 꽃 한송이에
어느새
봄기운은 소리도 없이 곁에 서 있습니다.
간당에 울리던 목소리
우리들의 피가 우리들의 무기라고
노동자의 피 속에 감추어진 비밀을 깨닫는 순간
빗나갈 수 없는 화살이 되어 기어이 해방의 영마루에 올라 설 거라고
마이크마저 소름끼치게 했던
확신에 참 그 목소리
아직 가슴속에서 팔닥팔닥 뛰고 있습니다.
우리 노동자 파업이 외세를 몰아내는 통일투쟁이 된다고
임투가 순식간에 매향리 파업으로 전화되어 가던 길에
후배들보다 한발 앞서 걸으며
노동자 투쟁의 정확한 과녁을 말씀하시던
그 몸짓이 사진처럼 박혔습니다.
맨처름 노동자 통일선봉대를 이끌고
오일팔 묘역으로 오시던 그날
그 하얀 이를 한꺼번에 드러내고 쑥스럽게 웃으시던
확신에 찬 그 미소가
아지랑이 같이 소리없이 다가와
더운 가슴에서 다시 자라고 있습니다.
"동지" " 조직"
수잔으로 말하지 말고
심장이 하는 소리, 그 결기서린 언어를 들어라
아, 그 떨리던 밤, 뒷풀이가 그립습니다.
자본의 논리가 스며들어
뒤죽박죽 삶과 꿈이 흐트리져 가는 것을 부끄러워하되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장을 핑계삼지 말라던
에둘러 돌아가려는 우리들의 비겁과 나약함이 더 무섭다고
적개심으로 불태워 버리라던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노래만 부르지 말고
울지도 말고 불태워 보라던
힘들다 하여
깃발을 절대로 내려 꽂지 말고
어떻게 갈 건지만 늘 고민하라던
타닥타닥 타오르던 모닥불 같은
목소리를 떡하니 새겨두었습니다.
형이 가지고 간 것
우리들이 놓아두고 간 것
빛깔 고운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공장 안팎의 세월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래서 서러움으로
뒤척이다 말고 돌아 누운 여러날 동안
밤이 더욱 깊어 울었습니다.
그 밤을
걸어 나오면서
여명을 향해 다시 걷고 있는 동지들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우리가 모여 가는 길목에 조직적인 팻말하나 떡하니 걸어 두었습니다.
형과 함께 꾸던 꿈을 잊지 말자고 떡하니 걸어 두었습니다.
형,
어둠에서 새벽은 순식간에 온다는데
형,
붉은 태양 여명으로 오십시오
함께 가십시다
우리들
노동자들의 피속에 감추어진 진실을 일깨우는
그 목소리를 닮은
꽃 한송이를 오늘 또 올려 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