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철순(당시 25세)
1963년 7월 13일 강원도 화천에서 출생
1982년 인천 신명여고 졸업. 판매사 자격 취득
1987년 1월 세창물산 입사
1988년 6월 29일 노조 창립과 함께 사무장으로 선출됨
1988년 7월 15일 ‘파업기금마련 연대집회’ 준비로 현수막 설치중 추락
1988년 7월 17일 운명
1982년 인천 신명여고 졸업. 판매사 자격 취득
1987년 1월 세창물산 입사
1988년 6월 29일 노조 창립과 함께 사무장으로 선출됨
1988년 7월 15일 ‘파업기금마련 연대집회’ 준비로 현수막 설치중 추락
1988년 7월 17일 운명
세창물산에서는 88년 6월28일부터 임금인상과 어용 노사협의회 타도를 위한 싸움이 시작되었으나, 회사측이 휴업조치를 단행하자, 노조 사무장이던 송철순 동지는 열악한 근로조건 개선과 파업기금 마련을 위한 연대집회를 준비하던 중, 허술하기 짝이 없는 슬레이트 지붕 위에 현수막을 설치하기 위하여 작업을 하다가 지붕이 내려앉으면서 공장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후, 동료 노동자들과 이웃 노조원들의 안타까움과 분노속에 결국 17일 밤 9시45분경, 25세의 생을 마감했다. 다음날 세창물산 건물벽에는 동지가 걸어놓은 ‘사장놈이 배짱이면 노동자는 깡다귀다’라는 현수막이 마침 내린 비에 젖으며 나부끼고 채 걸지 못한 현수막 ‘노동자의 서러움 투쟁으로 끝내자’가 지붕에 걸려 있었다.
동지를 생각하며
<추모시>
인간다운 삶과 투쟁, 그리고 승리를
쟁취하기까지의 고통속에서
우리의 동지여, 동지여.
자본가의 횡포는 우리의 동지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대 흘린피가 노동자의 서러움에
복받쳐 새로운 투쟁을 여는
우리의 인간선언이 될 수밖에
없는 지금,
저들은 얼만큼 많이 우리들의 피를
먹으려는가.
동지의 피를 딛고 선 우리의
투쟁속에 승리를 다짐하는
세창노조여! 세창노조여!
<결의문>
지난 9월3일 한달만에 나타난 사장 김세준이 “경영난과 노동조합이 너무 강경하다”란 이유 하나로 300여 노동자들의 생계의 밥줄을 하루아침에 끊어 놓은 이후, 비록 오랜 기간의 힘들고 어려운 싸움이었지만 우리 세창 깡순이들은 고 송철순 열사의 죽음을 가슴깊이 새기며 기필코 빼앗긴 일터를 되찾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싸워온지 이제 128일. 우리는 그간 투쟁의 과정에서 위장폐업이 50일 내지 100일, 길게는 그 이상에 이르는 장기농성속에 노동자를 방치해 둠으로써 투쟁열기가 식고 노동자들이 제풀에 꺾이기를 기다리는 악랄한 책동임을 온몸으로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또한 이의 해결은 결코 호소, 청원의 차원이 아닌 굳건한 노동자들의 위력으로 본때를 보여 줄 때, 그리고 노동형제, 애국시민, 학생들과의 튼튼한 연대에 의해서만 우리 투쟁의 힘은 더욱 강해짐을 인식하며 끈질기게 싸워왔습니다.
그러나 현재 검찰 수사과정에서도 보여주듯이 검찰청 역시 위장폐업에 대한 법적 규제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악덕기업주를 처벌할 의사는 없이 시간 끌기로 또다시 우리를 기만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긴 기간을 학교로부터의 압력, 부모님들의 걱정어린 한숨을 이겨내여, 온몸에 피멍이 들고, 동료의 다리가 부러져 나가는 아픔을 겪으며 열심히 싸워왔음에도 정부관계 당국은 저토록 기만적으로 나오고 그에 힘입어 사장은 아예 감옥에 가는 한이 있어도 문은 안열겠다고 배짱을 튕기고 있으니 그 끓어오르는 분노를 금할길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140여일이란 장기간의 치열한 투쟁이 저들에게 결정적인 압력을 가하지 못한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또한 그 결정적 압력은 어디에서 찾아질 수 있는가?
결국 지금껏 우리가 저들에게 압력을 가한 것은 한계내에서 압력이었지 실질적 결정적인 압력은 못되었던 것이 분명하며 그 실질적 압력의 힘은 바로 지역노동형제와의 폭넓은 연대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세창 깡순이들이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그 힘은 바로 연대의 힘이었읍니다. 그러나 공단내 노동자들 중에도 아직 세창물산이 문을 닫았다는데 왜 싸우고 있는지 모르는 노동자가 많은 것이 현실이며 세창 투쟁에 관심은 가지고 있으나 어떻게 참여해야 할지 몰라 안타까와 하고 있는 노동형제도 무수히 많은 현실을 보면 그간 우리의 연대가 얼마나 소극적이고 단편적이었나 입증되는 것입니다. 즉, 이제 우리가 수행해야 할 연대는 보다 폭 넓고 적극적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원화절상 등으로 끊임없이 중소기업이 위협당하고 있는 올 상반기 임투시기에는 자본가들은 수틀리면 손쉬운 노조탄압방식으로 위장폐업이란 무기를 쓸 것이 분명합니다. 즉, 이제 위장폐업의 위협이 도처에서 나타날 것이며 수없이 많은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단결권을 위협할 것입니다. 바로 이때 세창의 위장폐업 분쇄투쟁이 지역 노동형제들과의 힘있는 연대로 끈기있게 수행된다면 이는 이후 투쟁의 커다란 물줄기를 형성해 나갈 것임을 저희 세창 깡순이들은 확신합니다. 인간답게 살아보려고 송철순 열사의 희생까지 치루면서 지켜온 노동조합을 사수하기 위해 세창 깡순이들은 앞으로도 지침없이 모든 투쟁의 선두에서 당당히 싸워나갈 것입니다.
1989.1.20.
세창물산 노동조합 조합원 일동.
그 후, 동료 노동자들과 이웃 노조원들의 안타까움과 분노속에 결국 17일 밤 9시45분경, 25세의 생을 마감했다. 다음날 세창물산 건물벽에는 동지가 걸어놓은 ‘사장놈이 배짱이면 노동자는 깡다귀다’라는 현수막이 마침 내린 비에 젖으며 나부끼고 채 걸지 못한 현수막 ‘노동자의 서러움 투쟁으로 끝내자’가 지붕에 걸려 있었다.
동지를 생각하며
<추모시>
인간다운 삶과 투쟁, 그리고 승리를
쟁취하기까지의 고통속에서
우리의 동지여, 동지여.
자본가의 횡포는 우리의 동지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대 흘린피가 노동자의 서러움에
복받쳐 새로운 투쟁을 여는
우리의 인간선언이 될 수밖에
없는 지금,
저들은 얼만큼 많이 우리들의 피를
먹으려는가.
동지의 피를 딛고 선 우리의
투쟁속에 승리를 다짐하는
세창노조여! 세창노조여!
<결의문>
지난 9월3일 한달만에 나타난 사장 김세준이 “경영난과 노동조합이 너무 강경하다”란 이유 하나로 300여 노동자들의 생계의 밥줄을 하루아침에 끊어 놓은 이후, 비록 오랜 기간의 힘들고 어려운 싸움이었지만 우리 세창 깡순이들은 고 송철순 열사의 죽음을 가슴깊이 새기며 기필코 빼앗긴 일터를 되찾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싸워온지 이제 128일. 우리는 그간 투쟁의 과정에서 위장폐업이 50일 내지 100일, 길게는 그 이상에 이르는 장기농성속에 노동자를 방치해 둠으로써 투쟁열기가 식고 노동자들이 제풀에 꺾이기를 기다리는 악랄한 책동임을 온몸으로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또한 이의 해결은 결코 호소, 청원의 차원이 아닌 굳건한 노동자들의 위력으로 본때를 보여 줄 때, 그리고 노동형제, 애국시민, 학생들과의 튼튼한 연대에 의해서만 우리 투쟁의 힘은 더욱 강해짐을 인식하며 끈질기게 싸워왔습니다.
그러나 현재 검찰 수사과정에서도 보여주듯이 검찰청 역시 위장폐업에 대한 법적 규제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악덕기업주를 처벌할 의사는 없이 시간 끌기로 또다시 우리를 기만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긴 기간을 학교로부터의 압력, 부모님들의 걱정어린 한숨을 이겨내여, 온몸에 피멍이 들고, 동료의 다리가 부러져 나가는 아픔을 겪으며 열심히 싸워왔음에도 정부관계 당국은 저토록 기만적으로 나오고 그에 힘입어 사장은 아예 감옥에 가는 한이 있어도 문은 안열겠다고 배짱을 튕기고 있으니 그 끓어오르는 분노를 금할길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140여일이란 장기간의 치열한 투쟁이 저들에게 결정적인 압력을 가하지 못한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또한 그 결정적 압력은 어디에서 찾아질 수 있는가?
결국 지금껏 우리가 저들에게 압력을 가한 것은 한계내에서 압력이었지 실질적 결정적인 압력은 못되었던 것이 분명하며 그 실질적 압력의 힘은 바로 지역노동형제와의 폭넓은 연대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세창 깡순이들이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그 힘은 바로 연대의 힘이었읍니다. 그러나 공단내 노동자들 중에도 아직 세창물산이 문을 닫았다는데 왜 싸우고 있는지 모르는 노동자가 많은 것이 현실이며 세창 투쟁에 관심은 가지고 있으나 어떻게 참여해야 할지 몰라 안타까와 하고 있는 노동형제도 무수히 많은 현실을 보면 그간 우리의 연대가 얼마나 소극적이고 단편적이었나 입증되는 것입니다. 즉, 이제 우리가 수행해야 할 연대는 보다 폭 넓고 적극적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원화절상 등으로 끊임없이 중소기업이 위협당하고 있는 올 상반기 임투시기에는 자본가들은 수틀리면 손쉬운 노조탄압방식으로 위장폐업이란 무기를 쓸 것이 분명합니다. 즉, 이제 위장폐업의 위협이 도처에서 나타날 것이며 수없이 많은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단결권을 위협할 것입니다. 바로 이때 세창의 위장폐업 분쇄투쟁이 지역 노동형제들과의 힘있는 연대로 끈기있게 수행된다면 이는 이후 투쟁의 커다란 물줄기를 형성해 나갈 것임을 저희 세창 깡순이들은 확신합니다. 인간답게 살아보려고 송철순 열사의 희생까지 치루면서 지켜온 노동조합을 사수하기 위해 세창 깡순이들은 앞으로도 지침없이 모든 투쟁의 선두에서 당당히 싸워나갈 것입니다.
1989.1.20.
세창물산 노동조합 조합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