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게 드리는 글 - 6월항쟁 23주년 기념식
6.10민주항쟁 23주년 기념식 [국민에게 드리는 글]
 
우리는 오늘, 온 나라를 민주화 염원의 함성과 대동 축제로 수놓았던
6.10민주항쟁 23주년 기념일을 맞습니다.
해마다 6월이 오면 우리의 가슴은 환희로 요동칩니다.
부당한 정권이 민중의 숨통을 짓누를 때마다, 불의한 권력이 세상을 어지럽힐 때마다, 풀잎처럼 일어섰던 우리 국민의 저항정신은 억눌린 자유를 되찾고 정의가 물결치는 만민평등의 터전을 닦아왔습니다.
4.19민주혁명, 79년 부마항쟁, 80년 광주항쟁 그리고 오늘 기념하는 87년 6월민주항쟁이 바로 그 예범입니다. 시대의 여망을 거스르는 권력은 여지없이 무너졌고 민주주의는 언제나 승리했으며 국민의 여망만큼 성장해 왔습니다.
올해는 참으로 뜻 깊은 해입니다.
을사늑약의 핵, 불의한 침략자 이등박문을 제거한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민족상잔의 비극60주년, 4.19민주혁명 50주년 그리고 5.18광주민중항쟁 30주년을 맞는 해이며 또한 자신을 불태워 시대의 등불이 된 전태일 노동청년의 산화 40주년 그리고 분단 극복을 위한 통일운동의 큰 이정표인 6.15남북공동선언 10주년을 맞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항일독립투쟁은 대한민국 건국의 주춧돌이자 우리 헌법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이념적 푯대로서 우리 민족의 기개를 상징해 왔으며 개인의 영달에 연연하지 않는 희생정신과 불굴의 저항정신으로 지속되었기에 바로 한국 민주화운동의 뿌리이며 토대입니다.
 
민족상잔은 강대국과 권력층의 이해관계에 따라 겨레의 허리가 꺾이고 가슴이 멍든 우리 민족사 최대의 비극이자 극단적 사상대립을 초래하여 반목과 질시, 분열과 갈등, 감시와 탄압으로 점철된 한국현대사의 질곡과 큰 상처입니다.
민주주의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파괴를 수습하고 이 나라를 새롭게 일군 경제 성장의 원동력으로, 이를 통해 우리는 자유․평등․평화의 아름다운 가치를 계속 실현하고 있습니다.
 
통일은 갈라진 민족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고 생명력을 복원하여 만국평화에 기여하는 우리 민족 최대의 비원이자 민족의 일치와 화해를 위해 우리가 지향해야할 최고의 과제입니다.
 
일제침략시기의 시대적 소명은 항일독립투쟁, 60,70,80년대의 시대적 과제는 민주주의 실현, 그리고 오늘의 시대적 과제는 바로 통일입니다.
이 시대적 과제 앞에서 우리는 역사적 성찰을 통해 참회하며 동료와 이웃과, 생각이 서로 다른 계층과, 허심탄회하게 소통하여 사회적 합의를 이룩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엄중한 시대적 소명을 앞에 두고 우리는 방향을 잃고 있습니다. 우리의 어머니이며 고향이고 뭇 생명들의 서식처인 4대강이, 속살을 드러낸 채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 강이 흘러 들어가는 곳은 어디에서나 생명이 넘친다."(에제키엘 47,9ㄷ) 는 축복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우리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의 중단과 그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를 요구합니다. 대자연의 생명 순환 고리를 인위적으로 끊고 인위적으로 이으려는 개발론자들의 오만과 독선이 바로 대재앙을 불러일으킬 것이라 생각하면 너무나 두렵습니다.
 
또한 천안호 사건의 비극 앞에서 남북당국이 취하고 있는 경색국면의 태도와 남북이 각각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에 기대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선조들 앞에 너무 부끄럽고 죄스럽습니다. 순국선열들과 민주영령들 앞에 또한 죄송할 뿐입니다. 사대주의는 물론, 이제 우리는 6자회담도 넘어서서 민족 문제를 남북당사자 대화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와 있습니다.
천안호 사건에 대한 남북 당국의 대응방식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더욱 마음이 아프고 슬픕니다. 남북대화를 외면한 채, 서로 외세에만 기대려는 정치현실 속에서 우리는, 사대주의 사상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지난날의 어두운 그림자를 선명하게 보기 때문입니다.
 
한 단계 높은, 새로운 차원의 남북대화와 더욱 진전된 남북관계를 염원하며 몇 해 전 주한교황대사가 우리 사제들에게 들려준 말을 이 기회에 다시 함께 되새기고자 합니다.
 
"북한을 돕는 것은 인간의 도리와 의무이며 교황께서도 이 점을 늘 매우 강조하고 계십니다. 이태리의 언론을 종합하면 여러분들이 현재 6자회담을 하고 있는데 6자회담도 잘 진행되어야 하지만 그보다 더 핵심은 남북 양자회담입니다. 여러분은 6자회담의 환상을 깨야 합니다. 네 나라 중 어느 나라가 남북의 일치와 통일을 바라겠습니까? 일본입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중공입니까? 더더욱 아닙니다. 러시아입니까? 미국입니까? 생각해보십시오. 남북이 하나가 되면 인구 8천여만명의 그야말로 엄청난 큰 나라가 되는데 그것을 그 나라들이 과연 진심으로 바랄 것 같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남북문제는 여러분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이 이 점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참으로 큰 힘이며 아름다운 지혜입니다. 민심은 천심입니다.
올해 지방선거는 바로 제2의 6월항쟁으로, 87년 민주항쟁의 재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투표를 통해 국민의 참된 힘을 확인하고 그 참된 힘 앞에 머리를 숙였습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 모두는 대결이 아닌 대화, 전쟁이 아닌 평화, 요란한 구호가 아닌 조용한 실천 핵심임을 깨달았습니다. 여기에 바로 6월정신과 지방선거의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 역사상 최단 기간에 민주화와 번영을 이룩한 역동적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이 저력을 바탕으로, 이제는 미래지향적 민주주의를 담고 기억할 민주화운동기념관을 건립하여 구체적으로 뿌리내려야 할 때입니다. 민주화운동기념관(한국민주주의전당)은 국가의 품격을 높이고 한국 민주주의의 국제적 위상을 제고하고 세계 민주주의 네트워크 형성에 크게 기여할 대표적 상징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지난 독재 정권시절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고문후유증 환자들을 돌보고 재활을 지원하기 위한 고문후유증 치유센터의 건립도 꼭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바로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역사의식의 확인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뿌리내린 공유의 가치입니다. 이것이 바로 6.10민주항쟁을 통해 확인된 민주주의의 정신이며 흔들리지 않을 민주주의의 원칙입니다.
 
정부와 여당은 국민의 마음을 진정으로 위로하고 국민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국민들이 흘리는 땀과 눈물을 닦아주기 바랍니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고 진정한 국민통합을 높이는 방향으로 국정운영의 기조를 바꾸기를 바랍니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걱정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민족의 일치와 화해를 위해 6월민주항쟁 정신으로 거듭 태어나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모두 6월 지방선거의 교훈과 6.10민주항쟁 정신을 기리며 사랑하는 박종철군, 이한열군을 비롯하여 익명의 모든 민족․민주․통일 희생자들을 마음속에 모시고 민주주의를 심화 발전시키도록 굳게 다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0년 6월 10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함세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