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 전 사법부 독립 위해 저항했던 ‘사법파동’ 사료 공개
47년 전 사법부 독립 위해 저항했던 ‘사법파동’ 사료 공개
고 최영도 변호사 유족, <사법권 독립선언서> 등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기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지선, 이하 사업회)는 ‘1세대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 지난 6월 9일 별세한 고 최영도 변호사의 유족으로부터, 고인이 우리나라 사법 독립과 인권 변론을 위해 활동했던 자료와 기록들을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이번 기증사료 중 특히 눈에 띠는 것은 1971년 여름의 ‘제1차 사법파동’ 사건 당시 서울형사지방법원 단독판사로 재직 중이던 최 변호사가 직접 작성하여 민복기 당시 대법원장에게 제출했던 건의문이다. 사법파동 사건은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소장 판사들이 당시 정보기관(중앙정보부), 검찰, 경찰을 내세워 정권의 입장에 반하는 소신 판결을 하는 판사들을 사찰하고 유형, 무형의 방법으로 외압을 가하는 불법적인 사례가 빈발하자 정권의 외압으로부터 사법권의 수호와 사법부의 독립을 요구하며 벌였던 판사들의 집단행동을 말한다.
당시 전국 판사 정원 450명 중 3분의 1인 150명이 사표를 제출했다. 1차 사법파동 당시 최영도 판사가 정리하여 대법원장께 재발 방지를 강력하게 건의했던 ‘사법권독립을 침해하는 사례’는 후에 일명 <사법권 독립선언서>라 불리게 되었다.
이번에 사업회가 기증받은 건의문은 고인이 1971년 7월 28일 작성해 30일 대법원장 면담시 대법원장에게 제출하기 직전, 직접 한 부 복사해서 47년간 보관해온 친필 문서이다. 이 건의문 문서 옆에는 최 변호사가 직접 작성한 메모지가 붙어 있다. “이 문서로 인해 1973. 3. 23. 유신헌법에 의한 법관 재임명에서 탈락, 해직판사가 되었다. 내 인생의 운명을 확 갈라버린 종이 두 쪽이다.”라는 메모에서 사법파동에 대한 고인의 소회를 엿볼 수 있다.
당시 판사들의 사법권 수호 의지에 놀란 박정희 정권은 1972년 10월 헌법을 전면 개정하여 소위 ‘유신헌법’을 제정하였고, 이때 기존에 대법원장이 가졌던 판사임용권을 대통령이 사법부의 판사를 직접 임명하는 방식으로 바꾸어 당시 유신정권에 밉보인 판사들을 대거 판사임용에서 탈락시켰다. 실제로 최 변호사는 사법권 독립선언서 작성으로 인해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하여 그 이후로 인권변호사의 길에 들어섰다.
사업회는 사법파동 당시 최변호사가 제출했던 판사사직서 사본, 뜻을 같이 한 동료판사들과 함께 민복기 대법원장을 면담했던 사진(첨부3) 등 사법파동과 관련한 생생한 사료들을 함께 기증받았다. 이밖에도 최 변호사가 인권변호사로 활동할 당시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백태웅 현 하와이대학교 교수와 주고받은 편지, 언론사 기고문, 언론사 기자로부터 직접 받은 사진, 저술한 책자 등 사료상자 2개 분량을 기증받았다.
고인의 아들 최윤상 변호사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은 고인의 뜻이 반영된 유품이 잘 보존될 수 있는 기관이라고 생각하여 기쁜 마음으로 기증한다.”며 “이러한 자료들이 잘 보존되어 훗날 이 땅의 민주화가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님을 후세에게 생생하게 전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었으면 한다.”고 기증 사유를 밝혔다.
남규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47년 전 사법부 독립을 위해 저항했던 고 최영도 변호사의 이른바 ‘사법권 독립선언서’ 육필 문서가 세상에 나오게 되어 의미가 크다.”며 “최근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이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지만, 고 최영도 변호사님처럼 사법권 수호와 인권변호를 위해 한평생을 바치는 숭고한 희생을 하신 법조인들도 많다. 그 뜻이 담긴 사료를 잘 보존하고 널리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고 최영도 변호사는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 겸 인권위원장(1992~1995), 한국인권단체협의회 상임공동대표(1996),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1996~2000),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부이사장(2001), 참여연대 공동대표(2002~2004),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2004)을 지냈으며, 국민훈장 모란장(2001), 봉래상(봉래부완혁 출판문화재단, 2003), 명덕상(서울지방변호사회, 2018)을 수상하였다. 또한 우리나라 토기문화의 흐름을 살피 수 있는 원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토기 1,719점을 25년간 수집하여 2001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여 ‘최영도 기증실’이 있다.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사료 기증 문의는 오픈아카이브(http://archives.kdemo.or.kr/inquiry/donate) 또는 전화(02-3709-7544)를 통해 할 수 있다. <끝>
※첨부1: 고 최영도 변호사 사진
첨부2: 1971년 제1차 사법파동 사건 당시 고 최영도 변호사가 작성한 건의문 사본과 친필 메모
첨부3: 제1차 사법파동 당시 소장 판사들과 민복기 대법원장이 면담하고 있는 사진. 고인이 직접 사진 옆에 사진 제목, 일시, 참석자 이름을 기록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