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승복 휘날리며 역사의 한복판에 뛰어들다… 발간
잿빛 승복 휘날리며 역사의 한복판에 뛰어들다…<6월항쟁과 불교> 발간
“1980년대 불교계의 치열한 투쟁 과정과 자료를 충실히 담아 사료적 가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지선)가 <6월항쟁과 불교>를 펴냈다. 작년에 펴낸 <6월항쟁과 국본>의 후속편이다. 책에는 6월항쟁 당시 불교계의 대응과 투쟁 양상, 그리고 1980년대의 치열하고도 지난했던 불교계의 이념 모색과 투쟁 과정이 담겨 있다.
천주교·개신교계 ‘민주화는 우리의 십자가’ 외침에
불교계 ‘민주화는 정토의 구현’ 응답하며 거리로
1987년 6·10민주항쟁(이하 6월항쟁)의 시발점은 그해 1월 14일에 일어난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6개월간 ‘박종철을 살려내라’,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는 국민들과 폭력진압에 나선 전두환 정권 사이에 접전이 벌어졌다. 이때 최루가스 자욱한 거리에서 잿빛 승복 휘날리며 불퇴전의 기개로 시위를 벌이는 스님들이 등장했다. 한국사회의 새로운 풍경이었다. 이들의 등장은 많은 국민에게 경이로웠다. 대다수 국민에게 불교는 독재정권에 예속된 종교요, 그 지도층은 독재정권의 들러리일 뿐이라는 인식이 단단히 박혀 있던 때였다.
6월항쟁 때 종교계의 역할은 지대했다. 성당·교회·사찰에서는 박종철 열사 추모집회와 ‘민주헌법쟁취’ 전국 동시다발 집회의 개최를 알리는 타종을 했고, 집회·시위·농성의 거점 역할을 했다. 천주교·개신교계는 ‘민주화는 우리의 십자가’라고 외쳤고, 불교계는 ‘민주화는 정토의 구현’이라고 외쳤다. 수녀·신부·목사·스님이 한데 어울려 거리시위와 농성에 나섰다.
민중불교운동 모색한 지 10년 만에
진보적 승가·재가조직 결집해 6월항쟁 수행
이 책은 1980년대 불교계의 불교자주화·사회민주화 투쟁을 정리한 기록이다. 불교계의 민주화운동 참여는 천주교·개신교계에 비해 한 발 늦었다. 천주교·개신교계가 유신독재 반대투쟁을 벌이던 1970년대에 불교계는 아직 민중불교운동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불과 10여년 만에 불교계는 ‘새롭게 다듬어진 불법(佛法)과 보살정신과 역사의식으로 무장한’ 승가·재가 조직을 결집해 6월항쟁이라는 거대한 전민(全民) 항쟁을 수행하기에 이르렀다. 이 또한 대단히 경이로운 일이었다.
이와 같은 불교운동의 비약적 발전은 1980년 신군부세력의 광주학살과 10.27법난이라는 충격적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광주학살로 정권을 잡은 대통령 전두환은 그해 10월 ‘불교정화’를 구실로 무장계엄군과 경찰을 동원해 조계종 총무원장 월주스님 등 153명의 스님·신도를 강제 연행해 무차별 고문하는가 하면 전국의 사찰·암자 5,731 개소를 일제 수색해 1,076명을 무차별 연행·고문했다. 그 결과 고문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거나 장애를 얻는 등 고통 받은 사람이 부지기수였고 일부는 삼청교육대까지 끌려갔다. ‘전두환 장군 지지표명’을 거부한 채 범종단 차원에서 자율성 회복 움직임을 보이던 월주스님 체제의 새 총무원을 겨냥한 일대 참사였다. 이것이 10.27법난이라는 전대미문의 불교탄압 사건이었다.
1980년 5월 광주학살과 10.27법난 경험에서
‘불교자주화·사회민주화 투쟁은 하나’ 터득
광주학살의 주범과 10.27법난의 주범은 같았다. 게다가 10.27법난은 호국불교를 자처하며 무조건 독재정권을 지지·옹호해 오던 한국불교가 바로 그 국가권력에게 무참히 짓밟힌 사건이라는 점에서 불자들이 받은 충격은 컸다. 뜻있는 승가·재가불자들은 이를 통해 ‘불교자주화 투쟁과 사회민주화 투쟁은 둘이 아닌 하나’임을 터득했다. 그들은 군부독재정권의 폭압을 뚫고 진보적 승가·재가불자 조직 건설에 박차를 기했다. 그리고 마침내 1986년 해인사 승려대회, 1987년 박종철 영가(靈駕) 추모투쟁, 광주 원각사 5.18 추모법회 침탈 규탄투쟁 등을 거쳐 거국적 6월항쟁의 한 주체로 우뚝 서기에 이르렀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불교계의 공헌 ‘제자리잡기’
이 시기 진보 불교계의 분투는 한 편의 대서사시에 가깝다. 당시 맹활약한 승가·재가 지도자들과의 인터뷰와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공들여 정리한 투쟁기는 사뭇 생생하다. 또한 책 뒤에 실린 1980년대 불교계의 주요 성명서·시국선언문 24편은 당시의 긴박한 현장감을 오롯이 불러일으킨다. 이 책이 사료적 가치를 지니는 이유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불교계의 민주화운동 공헌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6월항쟁 당시 국본 상임공동대표로 불교계의 투쟁을 이끌었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지선 스님은 “유신독재 시절, 적극 나서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며 민족민주운동을 모색했던 불교인들은 198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일어서기 시작했다. 당시만큼 계층과 종교와 지역을 떠나 하나 되었던 뜨거운 연대의 힘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고 회상하며 “<6월항쟁과 불교>에 그 치열했던 현장과 불교계의 엄중한 투쟁 과정을 충실하게 정리하고자 노력해 기초 자료로서 충분히 가치가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또한 향후 보다 다양한 문헌자료, 실증자료, 증언과 다각적인 평가 등으로 보완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끝]
※첨부: <6월항쟁과 불교> 표지 이미지 1부. (원본 이미지 별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