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나라! 협동조합
<2013 민주주의 배움터 4강 후기> 깨어나라! 협동조합
지난 6월 19일(목) 오후 7시 30분에는 20년이 넘는동안 생활협동조합에 몸담아 왔고 최근에 『깨어나라 협동조합』이라는 책을 펴 낸 김기섭 선생님과 함께 <2013 민주주의 배움터>“다시, 경제민주화의 길을 묻다” 네 번째 시간을 가졌습니다.
김기섭 선생은 먼저 이번 배움터 제목인 ‘경제 민주화’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지면서 협동조합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민주’라는 것은 ‘백성, 곧 사람이 주인이다’라는 뜻이고, ‘민주화’는 사람이 주인되게 하는 걸 말합니다. 그 앞에 ‘경제’가 붙어 경제민주화라고 하면 ‘먹고사는 일을 사람이 주인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김기섭 선생은 민주주의는 시스템과 제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사람의 일상적 삶을 어떻게 ‘사람이 중심이 돼서’ 꾸려갈 것인가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시스템과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생활속의 민주주의로 실제적으로 뿌리박지 않으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최근들어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죠. 그렇지만 어떻게 민주주의를 일상생활에서 구현해 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김기섭 선생은 경제 민주화는 공정한 시장경제질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돈 중심의 경제에서 사람중심의 경제로 그 `시장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이라고 강조합니다.
김기섭 선생은 대규모 제조업과 서비스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내수 기업과 수출기업 사이에서 볼 수 있는 ‘기업간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와 임금격차 심화, 자영업 비중 증대로 나타나는 ‘노동시장 양극화’가 결국에는 `소득양극화`를 불러오고, 이는 결국 교육, 건강 등 인적자본의 격차의 심화와 심지어 되물림 현상까지 강화되는 ‘대응능력의 양극화’를 겪고 있는게 한국사회의 현실이라고 분석합니다. 20대는 사회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30대 여성들은 출산과 육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다 30대 중반부터 40대에 들어서면 아이들 사교육비와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충당하기 위해 다시 여성들이 힘들게 취업전선으로 뛰어듭니다. 하지만 이때의 일자리는 20대 때 일자리의 질과 확연이 다른 질낮은 비정규직 일자리가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죠. 뿐만 아니라 OECD국가들의 취업률을 분석한 그래프가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50대 초반에서 끝나지만, 우리나라는 남편들의 조기퇴직으로 여성들이 생활 부양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50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여성들이 생활전선에 뛰어드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헤이젤 헨더슨의 생산구조 모형>
그렇다면 왜 이런 구조가 나타나고 있는 걸까요? 그 중 하나로, 시장과 국가라고 하는 것으로만 우리 사회가 그동안 유지되어 왔다는 것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김기섭 선생은 ‘헤이젤 헨더슨의 4단 케익을 예시로 한 생산구조’를 인용하면서 맨 위의 시장경제의 영역, 그 밑에서 시장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국가의 계획경제, 그리고 이 둘이 바다위에 떠 있는 빙산의 표면이라면 그 바다 밑에는 비공식적인(INFORMAL) 경제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공식/비공식 차이는 GNP, 즉 화폐경제에 속해 있는가 여부에 달려있는데요. 이 비공식적인 영역에는 가족, 이웃, 지역사회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엄마가 식사를 만들어 가족에게 대접하는 것, 노인이나 병자를 이웃들이 돌보아주는 것, 아이를 학원 보내는 대신 부모가 숙제를 같이 점검해 주는 것 등이 작은 예가 될 수 있겠지요. 실제로 우리가 받고 싶어하는 서비스는 돈 때문이 아닌 바로 이 사례에서 볼 수 있는 마음과 정성이 깃든 비경제적 지원입니다. 김기섭 선생은 국가는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시장은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자기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고, 시장은 구조조정, 보상을 빙자해서 실업 노동을 양산하면서 이들을 비공식 영역이 돌보도록 내쫓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지금의 사회는 이 비공식적 영역을 점점 더 축소시키면서 시장경제와 국가경제를 살찌우는 체제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런 사회를 극복하려 할 때의 해결책으로 무엇이 있을 수 있을까요? 김기섭 대표는 프랑스 혁명에서 나온 세 가지 정신을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프랑스에서 혁명의 주체였던 시민은 모두 시장(당시 도시는 ‘시장이 서는 곳’을 지칭했다고 합니다)을 구성하는 장사하는 사람들로서, 그들은 왕과 봉건귀족 통제하에 있는 경제구조와 삶의 방식 자체를 바꾸려 했습니다. 그 때 나온 자유는 ‘임금과 봉건영주에게 허락받지 않고 시장에서 자유롭게 물건을 사고 팔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고, 평등은 ‘우리가 낸 세금을 임금과 봉건영주가 호위호식하는 데 쓰지 말고 만인에게 쓰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었으며, 마지막으로 ‘박애, 우애’는 당시 길드와 같은 협동조합 방식 속에 소속되었던 시민들이, 협동조합 안에서 서로가 우애와 형제애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김기섭 대표는 이걸 좀더 추상적으로 구분하면 자유는 시장경제, 평등은 계획경제이고, 박애, 우애는 바로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이 영역에서 강조되는 정신이라고 설명합니다.
사회적 경제 조직이라고 하는 것은 내부적으로 민주주의에 기초해서 운영되어야 하고, 국가라는 공적부분으로터 독립되어 있어야 하며, 그 활동의 목표가, 회원의 이익을 위한 것(共益)이 아니라, 우리 사회 모두의 이익(公益)에 있어야 합니다. 사회적 경제의 법적 형태는 크게 보면 협동조합과 상호부조조직과 결사체라는 세 가지 형태를 띄고 있는데요. 상호부조조직은 우리 전통의 ‘계’가 이에 해당합니다. 이 ‘계’라는 상호부조조직을 잠식해 들어가서 장사화한 것이 바로 ‘보험’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런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삶을 시장세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상호부조 조직들을 만들어 가야 하고 그게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라고 김기섭 선생은 주장합니다.
김기섭 선생은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의 협동조합 정의를 협동조합의 수단, 목적, 주체, 본질로 구분해서 풀어나가면서, 협동조합은 자발적인 사람들의 모임이며, 그 주인은 이윤을 추구하하는 자본이 아닌 ‘사람 그 자체’이며, 따라서 그 목적은 협동조합에 모여있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을 충족해 가는 것이며,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업’을 한다고 설명합니다. 영국 협동조합의 역사를 살펴보면, 최초의 근대적 협동조합이었던 로치데일 협동조합이 직장폐쇄를 당하고 파업했다는 이유로 쫓겨난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위해서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를 통한 정치시스템을 바꾸는 것에 모든 역량을 투여한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주택을 구입하거나 건설하고, 식료품점을 내고, 일자리를 잃은 조합원들로 하여금 물건을 생산해 내게 하여 그 상품을 조합원들에게 서로 판매하는 등 그들 스스로가 기존 시장경제 속에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고자 노력했지요 . 김기섭 선생은 자신이 20여년 가까이 몸담았던 생활협동조합운동을 되돌아보면서, 한국의 생협운동도 국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해 배제당하고 시장경제로부터 도태될 수밖에 없는 농민들, 시장경제에 의해 뒤치닥거리를 강요받았던 여성들이 모여 그 사람들로 하여금 기존의 공식적 영역을 깨면서 치고 올라가게끔 하는 것이었다고 회고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협동조합운동의 주체가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아까 위에서 설명했던 사회 나가기 두려워하는 20대, 육아와 출산에 불안해 하는 30대, 아이 교육문제 때문에 몇 푼이라도 돈을 벌어야 하는 40대 부모, 언제 짤릴지 모르는 50대, 노후 대책 없이 시장에서 내쫓김을 당하고 있는 6~70대 노인 들이 비공식적 부문을 이루고 있고 바로 이들이 이제는 새로운 협동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김기섭 선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산업혁명 당시의 패러다임으로 사회운동의 주체를 노동자, 농민 등 계급성 중심으로 주체를 설정함으로 인해, 현재 역사변동의 주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협동조합 운동이 앞으로 해 나가야 할 일은 바로 이러한 비공식적인 영역과 국가, 시장 등의 공식적인 영역 사이에 징검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김기섭 선생은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비공식적 영역에서 천대받던 사람들이 자발적 조직을 만들어 내야 하고, 국가는 그 조직들이 커나갈 수 있도록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해 줘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현재 지자체나 중앙정부에서 협동조합에 관심을 갖고 인큐베이팅을 해주려고 제도장치를 많이 만들고 있는 것 자체는 나름대로 의미있는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기섭 선생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삼아 이러한 추세에 대해 쓴소리를 합니다. 문제는 시민사회 영역에서 성숙된 인재들이 중간지원조직으로 다 가버린다는 데 있습니다. 그 중간지원조직들이 ‘협동조합 이래서 좋다’고 이야기하면서 다니는데, 문제는 중간지원조직의 사람들이 협동조합이 만들어진 이후에 이들을 제대로 인큐베이팅 해줄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김기섭 선생은 협동조합 인큐베이터들은 협동조합을 자기 현장에서 아주 구체적인 사례를 가지고 설립부터 경영까지 충분하게 공부하고 체험한 사람들이어야 하며, 그들이 실제로 그 경험에 근거한 철저한 자기 반성과 성찰에 근거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협동조합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라는 능력과 마인드를 갖추고 `협동조합! 이래서 좋다`가 아니라 `협동조합! 이렇게 해야 성공할 수 있다`의 이야기를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의를 마쳤습니다.
‘2013 민주주의 배움터’ 다섯 번째 강좌는 오는 6월 26일(수)에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홍장표 부경대학교 교수와 함께 진행할 예정입니다.
* <2013 민주주의 배움터 3강 후기> 깨어나라 협동조합
* <2013 민주주의 배움터 3강 후기> 비정규직의 현실과 우리의 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