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마을입니까?
왜 마을입니까?
- 민주주의 배움터 다섯 번째 강좌 후기 -
지난 12월 4일(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2013하반기 민주주의 배움터> 다섯 번 째 강좌가 진행되었습니다. “우린 마을에서 논다”라는 제목으로 유창복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센터장이 강의해 주었지요. 유창복 센터장은 1996년 아이 육아를 위해 성산동에 이사와 공동육아를 시작하면서 현재의 ‘성미산 마을’이 만들어지게 된 오랜 과정을 함께 해 온 지난 일들에 대해 하나 하나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면서 마을이라는 것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만들어지고 왜 중요한지에 대해 이야기를 펼쳐나갔습니다.
최근에 ‘마을’이야기가 붐을 탔다고 할 정도로 여기저기에서 마을만들기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 대우중공업 등의 회사에서도 강의를 해 달라고 요청이 들어오기도 하고 대만에서 일본에서도 서울시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합니다. 전국에 마을지원센터가 열 다섯 개가 만들어지고 내년에는 열 개정도가 더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부산에서도 마을지원센터가 만들어졌죠.
그리고 묻습니다. “왜 마을입니까?”
유창복 센터장은 ‘있는 집 애들이 공부를 잘한다’는 말은 요즘 거의 상식이 되었으며, 거기에 ‘있는 집 애들이 인물도 좋다’거나 ‘있는 집 애들이 성격도 좋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나오고 있다면서 우리사회가 전반적으로 빈익빈 부익부 양극화의 물결 속에서 부의 되물림 현상이 되돌릴 수 없는 수준에 왔다고 깊은 회의에 빠져 있다고 진단합니다. 물질적 풍요는 커져만 가지만 희망이 사라짐에 따라 사람들이 이전보다 더 힘들고 외롭고 고통스러워지게 되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에 없는 사람, 덜 가진 사람들은 그 악순환을 자식에게 되물림시키지 않으려고 더 욕망하고 있기도 합니다. 국가가 없는 사람들을 배려하면 좋은데 국가마저도 그런 여력이나 의지가 없어 보입니다. 결국 아쉬운 사람들이 우물을 판다고 그들이 나서서 해결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스멀스멀 나서기 시작하며 마을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유창복 센터장은 성미산 마을도 이러한 하소연들이 쌓이고 그들이 모여 궁리를 하게 되고 그 중 누군가가 일을 저지르기 시작하면서 하나 하나 마을의 역사가 쌓였다고 이야기합니다.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아이들을 같이 돌보기 시작하여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커나가게 되고, 방과후 학교, 대안학교, 마을카페, 동네부엌, 마을 식당, 공동주택건설회사 등의 마을 기업이 하나하나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유대표는 성미산 마을의 사례를 들면서 마을은 시장, 국가에서 관심에 멀어진 사람들이 자기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직접 나서서 해결하다보니 이웃과 관계를 맺게 되고, 또 작은 일을 시도하면서 협동의 성취를 맛보니까 계속 그 시도를 확장시켜 나가게 되어 형성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흔히 마을 하면 도시화 이전의 농촌이미지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지금 농촌조차도 젊은 청년과 아이들이 없을 정도로 세대간 관계가 완전히 붕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마을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죠. 유센터장은 자신의 서울 미아리에서의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도시 속에서 ‘마을’을 쉽게 경험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동네 골목에서, 그 골목의 평상위에서, 심지어 복도식 아파트에서조차 아이들을 함께 돌보고 함께 키우는 풍경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골목에서 동네 형아들과 어른들을 통해 삶의 방식을 자연스레 익혔죠. 구슬치기, 말뚝박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 등등의 풍경들, 그리고 죽음이라는 경험까지 익숙한 이웃들로부터 배우게 되었죠. 그러나 요즘의 풍경을 유센터장은 ‘다 공장에서 태어나고 공장에서 결혼하고 공장에서 죽는다’고 표현합니다. 미국의 도시학자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는 『미국 대도시의 삶과 죽음』이라는 책에서 골목의 이웃들의 시선이 그 지역 아이들을 낯선 사람들로부터 지켜낸다는 사례를 보여주면서 사라진 마을은 관계의 복원을 통해서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요? 각 골목 뿐만 아니라 주택에서도 각각 CCTV를 설치하면서 범죄에 대한 공포를 잠재우려 하지만 실제로는 민생범죄에 해당되는 우발적 범죄를 막는데는 그리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게 현실이지요. 유창복 센터장은 결국 어른들을 포함해서 아이와 약자들의 안전을 이제는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상황에 우리가 와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럼 이러한 마을을 만들기를 위한 작은 실천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을까요? 유센터장은 성미산 학교라는 국내 최초의 12년제 대안학교가 마을에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진행했던 토론 방식을 소개합니다. 유센터장은 그걸 ‘바구니 토론’이라고 부르는데요. 우선은 모인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이상 자르지 않고 더 이상의 제안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모두 담아낸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가 기획해서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걸 만들어내게 된다고 합니다. 학자들은 이것을 일컬어 ‘창발(Emergence)'이라고도 하고 ‘집단지성’, ‘다중지성’이라고도 말하죠. 이러한 방식으로 아이디어가 나오고 그 아이디어들을 동네에서 조그맣게 실험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호응이 차고 넘칠 때가 되어서 마을기업이라는 형태의 공간을 열고 운영을 시작하게 됩니다. 마을 반찬가게인 ‘동네 부엌’, 마을 식당인 ‘성미산 밥상’, 마을 카페인 ‘작은 나무’ 등의 주민이 출자하고 주민이 운영하는 마을기업들이 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유창복 센터장은 인류사회에 축적의 위기가 왔을 때 그걸 돌파한 것이 ‘주식회사’라는 제도이며 이 제도의 핵심은 십시일반의 원리였다며 단지 마을협동조합은 주식 수대로가 아닌 사람 중심으로 경영권에 참여한다는 것이 차이라고 강조합니다. 마을기업의 원리는 바로 자기가 알아서 출자하고 자기 스스로가 조직하고 다니는 다단계원리와 똑같지만, 자본주의와 차이라면 나혼자 잘 살겠다가 아니라 같이 잘살겠다는 이 종이 한 장의 차이가 커다란 차이를 만듭니다.
성미산 마을에 마을극장을 만든 장본인으로서 유창복 센터장은 예술에 대한 중요성도 강조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예술교육은 심하게 표현하면 기예 연마의 전당이 되버렸습니다. 기능중심으로 아이들을 길러내고 있죠. 마약과 총기사고가 빈번하는 베네수엘라 뒷골목에서 상처입고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한 마을 어른이 아이들에게 악기를 쥐어주고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정성을 쏟아 훌륭한 예술가들을 배출하기까지 했다는 ‘엘 시스테마’라는 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우리나라에 와서는 정해진 곡들을 가지고 2년 안에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는 방식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유센터장은 예술이라는 건 일상속의 감수성으로 쌓여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현재 IMF이후 급속한 해체 위기를 맞고 있는 가족 안에서 그 일차적인 예술적 감수성을 익히기 어려워졌는데, 이제 그 역할을 마을이 해 주어야 한다면서 유센터장은 마을극장을 설립한 취지를 설명합니다. 실제로 2009년 성미산 마을극장이 만들어 진 후 마을 안에서 마을 극단, 풍물패, 노래 모임, 악기 모임, 엄마들의 인문학 클럽, 동네 사진관 동아리 등의 예술동아리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며 아이들도 덩달아 춤과 악기와 미술 등의 예술을 일상속에서 배웠고, 그러한 결실들은 성미산 마을축제라는 마을 규모의 정기적인 이벤트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여러 마을기업들이 만들어지면서 아이들의 보육과 교육,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성인 동아리 활동 등이 펼쳐지면서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 오래 살고 싶은 욕구가 생기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라는 마을기업도 등장하여 공동주택을 계속 짓고 있는 것도 특징입니다. 유창복 센터장은 입주자들과 동네주민들까지 확장되어 이용할 수 있는 이러한 공유공간이 계속 만들어지면서 관계도 만들어지고 이러한 관계가 그 공간에 쌓이면 덮개가 생기게 되는데 그것이 사연이고 추억이 되고 스토리가 된다고 강조합니다. 마을은 그 스토리의 누적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1년 취임하면서 성미산 마을 같은 걸 서울시에 열 다섯 개 정도 만들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 때 시민사회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있었죠. 시장이 직접 ‘마을’ 이야기를 했다는 것 자체가 풀뿌리 활동가들에게 있어서는 희망을 가져다 주었지만 관주도의 칸막이 행정이 오히려 마을을 만들려는 호흡을 끊을까 우려도 있었고, 일부 진보진영에서는 산적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가한 낭만적 접근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유창복 센터장은 특히 전자의 관주도의 사업방식의 문제점을 혁신하여 ‘주민주도 마을 사업’을 펼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자원 배분의 탑 다운 방식 자체를 마을주민들이 주도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른 실행을 해서 밑으로부터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2년 사이에 1만 6천여명의 일반주민들이 마을기업 지원사업과 부모커뮤니티 지원사업에 참여하고 그들간에도 지역별 이슈별로 네트워크가 이뤄지고 있다고 합니다. 유센터장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위임하는 대의정치인데, 현재 대의제 정치에 대한 기대가 무너져 내리고, 시민을 대변해야 하는 시민사회단체조차 정작 ‘대변의 현장에 시민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에 우리가 서 있다고 진단하고, 마을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증가하는 것은 결국은 시민이 자신의 삶, 생활의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나서기 시작하는 것, 다시 말해 위임과 대변을 통한 간접 민주주의가 아니라 당사자가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직접민주주의의 주체로 나서기 시작했다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이럴 때에만 대변의 힘도 생기고, 권력을 위임받은 위정자도 허투루 못하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요. 결국 주민주도 마을만들기는 또 다른 의미에서 시민사회의 혁신의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겠죠.
<서울시에서 하는 ‘우리마을 프로젝트 지원사업’, ‘부모커뮤니티 지원사업’, ‘돌봄 지원사업’, ‘마을기업
지원사업’ 등에 참여하고 있는 주민주도 마을사업들 현황. 이들이 서로 네트워크를 만들어가고 있다 - 유창복>
유창복 센터장은 끝으로 마을을 만들어 나간다는 과정에 있어서의 주의점을 이야기합니다.
마을이 매일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것, 끊임없이 작은 사안 하나하나를 가지고 싸우고 이야기하고 고민해야 한다는 것. 아이들 육아와 교육과 연계되어 있는 마을살이에서는 모두 각자의 개성이 다 드러나며 그런 과정에서 서로 지지고 볶는 폭풍의 시간이 지나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유센터장은 보통 마을에서 3년 정도 산 사람들을 보고 ‘새내기’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마을살이를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신뢰의 마음, 즉 그 사람을 수용하고자 하는 수용적 관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람이 만나 애정을 느끼고 연을 맺고 지지고 볶으면서 관계가 두터워지며 공존을 찾는 부부관계처럼 마을 관계도 똑같습니다. 아쉽고 힘들 때 누군가 응답할 때 거기서 관계가 맺어지는데, 우리가 이야기하는 마을은 옛날 농촌마을의 생득적 관계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신뢰와 수용의 관계로 이뤄지는 관계망이이라고, 그리고 여러분들도 짝사랑만 하지 말고 도랑을 건너는 마음으로 이웃에 손을 내밀고 하소연을 해 보라고 권하면서 유창복 센터장은 강의를 마쳤습니다.
<2013년 하반기 민주주의 배움터> “수상한 민주주의-일상에서 바라본 풍경” 마지막 여섯 번 째 강좌는 12월 10일 화요일 오후 7시에 민주누리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마지막 강좌는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상임대표인 도법 스님이 “민주주의와 인드라망”이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갈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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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배움터 참가 신청하기> (개별 강좌는 참가비 1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