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증 이사장, 죽산 조봉암 선생 57주기 추도식 참석
박상증 이사장, 죽산 조봉암 선생 57주기 추도식 참석
죽산 조봉암(1899~1959) 선생의 57주기 추모제가 31일 오전 11시 서울 망우리 묘지공원 내 죽산묘역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제에서는 유족, 국회의원, 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죽산 선생의 육성녹음 청취, 박상증 이사장의 추도사와 유족 인사 등이 이어졌다.
박상증 이사장은 "무한경쟁과 빈부격차, 고령화로 성장의 동력은 상실해 가고, 남북한의 대치와 갈등이 나날이 심화되는 현실"이라며 "죽산 선생이 추구했던 책임 있는 혁신정치, 수탈 없는 계획경제, 민주적 평화통일의 정치노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죽산 조봉암 선생은 1959년 당시 자유당 정권하에서 국가변란 및 간첩혐의로 사형되었으나 대법원은 2011년 1월 20일 가족이 낸 재심청구를 받아들여 대법관 전원 일치로 무죄를 선고해 사형 집행 52년 만에 간첩 누명을 벗었다.
<추도사>
선생의 백비(白碑)에 ‘평화통일의 선지자’로 새겨지기를 염원하며
다시 옷깃을 여미며 망우리 죽산 선생의 백비 앞에 섰습니다.
“내가 사형을 당하더라도 조국을 사랑한다. 구명운동 하지 말라”
죽산 선생의 파란만장한 일생이 서대문형무소 교수대에서 막을 내린지 57년이 지난 오늘도 사형장의 버드나무에는 새들이 깃듭니다. 작열하는 태양을 이고 선 나뭇가지 사이에서 때로는 슬피 우는 전설의 ‘죽산조’는, 찢어진 이조국의 운명과 그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이 땅의 민중을 위무하는 듯합니다.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나신지 60여 년, 오늘 우리 국민은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무한경쟁과 사회안전망의 미비로 ‘불임의 나라’가 되어가고 있고, 갈수록 심해져가는 빈부격차와 청년실업, 급격한 고령화로 인해 성장의 동력을 상실해가고 있습니다. 북한의 도발과 핵 개발, 남한의 사드 배치 등 남북한의 대치와 갈등은 나날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분단조국 민중의 실존적 고통을 생생하게 마주하면서, 우리는 오늘 죽산 선생이 살아 계신다면, 과연 어떤 처방과 대안을 제시했을까 새삼 안타까운 마음으로 되뇌어 봅니다. 짐작컨대 선생은 예의 그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책임 있는 혁신정치’, ‘수탈 없는 계획경제‘, ’민주적 평화통일’의 진보당 3대 강령을 힘주어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일을 없애고, 모든 사람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고, 모든 사람이 착취당하는 것 없이 응분의 노력과 사회적 보장에 의해 다 같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세상, 이것이 한국의 진보주의입니다” 죽산 선생이 설파했던 정치노선은 오늘 우리 조국의 현실에서도 여여하게 살아 있습니다.
선생은 자신이 믿었던 가치가 틀렸다고 생각했을 때 과감하게 전향을 선언했습니다.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현실정치를 부정하거나 냉소하지 않고 뛰어들어 큰일을 해내고, 대안세력으로서의 실험정신을 불굴의 투지로 밀고 나가셨습니다. 단군 이래 수천 년 이어지던 소작제를 철폐한 농지개혁이나, 반공이 국시인 나라에서 진보당을 창당하고 당당하게 ’평화통일론‘을 주창하신 선생의 정치적 발걸음은, 조국의 산천초목과 이 땅의 민중들을 아우르는 대인다운 기개였습니다.
선생은 1956년 ‘5.15 정부통령선거’에 나서며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이라는 표제의 선거공약을 통해 “우리는 민족의 비원인 남북통일을 평화적으로 단시일 내에 성취시키겠다. 전 세계 인류의 시대적 요구가 전쟁 반대일 뿐만 아니라, 우리 동포들도 이 이상 피 흘리기를 절대로 원치 않는다.... 우리는 민주역량을 공고히 하여 그 토대와 주동 밑에 민주 승리의 평화통일을 쟁취하기 위하여 국가적 총력을 여기에 경주할 것이다.”고 발표하셨습니다.
불평등 해소와 함께 오늘 우리의 시대정신은 ‘평화통일’입니다. 평화통일은 남북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일그러진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정체성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고통 받고 있는 이 땅 청년들의 미래를 개척할 경제적 청사진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중견기업이 청년세대와 함께 진출하여 북한의 인프라 확충에 투자하고, 중국의 동북 3성과 러시아 연해주, 그리고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경제공동체 건설을 논의해야 할 때입니다. 여야 정치권과 전문가들이 앞장서고 시민들이 참여하여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나가는 과정은, 곧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2011년 1월 20일, 대법원은 선생에게 굴레 씌워진 간첩죄와 국가보안법 위반 등 주요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1959년 처형 이후 반세기가 넘어서야 공식적 복권과 명예회복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선생의 백비는 빈 채로 서 있습니다. 억울한 죽음 앞에서도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던 선생의 백비(白碑)에, ‘평화통일의 선지자’로 새겨지기를 염원합니다.
2016년 7월 31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박상증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