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협 결성 30주년 기념식 격려사] 화광동진, 상선약수, 무주상보시하는 삶
전대협 결성 30주년 기념식 격려사
화광동진, 상선약수, 무주상보시하는 삶
1987년 6월의 거리는 장대했습니다. 교정을 박차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청년․학생들과 그들을 에워싼 회사원, 상인, 시민들은 거리를 축제로 수놓았습니다. 6월 한 달 동안 종로와 명동에서, 서면로터리에서, 금남로에서 5백만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해방의 공동체, 그해 여름은 찬란했습니다.
6월항쟁의 결과 우리는 5공화국헌법을 폐기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획득했으며 헌법 전문에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할 것을 분명히 하면서 민주헌정질서를 회복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유신 이후 긴급조치와 계엄령, 국가보안법과 집시법으로 유지했던 억압의 시대를 끝내고 ‘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되찾았습니다.
4.19혁명이 그랬듯 6월민주항쟁의 그 맨 앞자리에는 100만 청년학도가 있었습니다. 청년학생들은 스스로 꽃으로 피어났을 뿐만 아니라 수십 년 마이너리그에 머물러 있던 노동자들의 대투쟁을 이끌어내면서 그이들도 함께 꽃피웠습니다. 또한 초심을 간직한 채 부모가 된 전대협 세대들은 지난겨울, 아이들의 손을 잡고 기꺼이 촛불항쟁에 나섰습니다. 통치의 대상인 국민에서 스스로 세상의 주인인 시민으로 눈부시게 성장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함께 만들었습니다.
내 청춘 조국에 바쳐 이 나라의 자유와 평등을 위에 몸과 마음을 헌신한 전대협 세대들의 앞길에 무량한 평화가 깃들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 청년학생들의 분투가 당대 노동자, 농민들의 희생에 빚지고 있었음을 잊으면 안 됩니다. 평화시장에서, 건설 현장에서, 거친 황토밭에서 땀 흘려 일해 우리들을 먹이고, 키우고, 공부시킨 누이, 형, 언니, 오빠들과 부모님들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그때의 우리가 있었습니다. 생활현장을 지키느라 그이들이 직접 나설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이들을 대신해서 우리 청년학도들이 투쟁의 전면에 나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화광동진, 먼저 깨우친 자들은 그 빛을 감추고 속세의 먼지에 섞여 들어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심화입니다. 상선약수, 참으로 지극한 도는 낮을 곳을 향해 흐르는 물처럼 사는 것이며, 그것이 민주주의의 확장입니다. 빛이 그렇듯, 물이 그렇듯 우리는 남을 보기 전에 내 자신을 먼저 내보이는 선의와 긍지로 이웃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상호의존하는 연기의 세상에서 나와 남이 따로 존재할 수 없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자비실행, 차별 없는 사랑과 연민의 마음으로 이웃과 뭇 생명을 껴안으며 무주상보시하는 삶, 그것이 오늘,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깨달아야할 민주주의의 핵심임을 마음속에 고요히 새겼으면 합니다.
여러분들의 앞날이 장쾌하고 원융하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불기 2561년(서기 2017년) 8월 19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지선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