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승희 열사 33주기 추모제
○ 일 시: 2024년 4월 27일(토) 오후 3시
○ 장 소: 목포정명여고 후문
○ 장 소: 목포정명여고 후문
행사 정보
토요일
2024-04-27
목포정명여고
지도에서 보기
인물 정보
박승희(당시 21세)
1971년 전남 목포 출생.
1990년 2월 목포 정명여고 졸업.
1990년 3월 전남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입학. 단대 학생회활동. 교지 [용봉] 편집위원활동.
1991년 4월 29일 전남대에서 ‘고 강경대 열사 추모 및 노태우정권 퇴진 결의 대회’ 중 “노태우정권 타도하고 미국놈들 몰아내자”라고 외치며 분신.
1991년 5월 19일 운명
1990년 2월 목포 정명여고 졸업.
1990년 3월 전남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입학. 단대 학생회활동. 교지 [용봉] 편집위원활동.
1991년 4월 29일 전남대에서 ‘고 강경대 열사 추모 및 노태우정권 퇴진 결의 대회’ 중 “노태우정권 타도하고 미국놈들 몰아내자”라고 외치며 분신.
1991년 5월 19일 운명
동지는 고교 재학 중 학생회장에 출마하였고, 전교조와 관련해 사회문제에 일찍 눈을 떴으며, 대학생활로 더욱 더 진지한 모습으로 운동을 고민해 왔다.
분신 전날 4월 28일 목포 집에 가서 부모님을 끌어 안고 “가족들을 사랑한다”며 해후 한 뒤 “2만 학우가 잘 다니는 곳에 묻어 달라. 항상 함께 있고 싶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하였다.
한 때 몸의 상태가 호전되자 손가락으로 ‘노정권 타도. 미국놈들 몰아내자’는 표현을 힘겹게 쓰기도 하며 강인한 투혼을 보였으나 끝내 강경대 열사의 운구가 광주에 도착할 때인 5월 19일 운명하였다. 5월25일 광주 시민들의 애도 속에 광주망월동 묘지에 영원한 반미구국전사로 잠들었다.
동지를 생각하며 - 병상일지 중에서
승희야
네 머리맡에 엎드려 울면서 아직 네가 깨어있지 않은 아침의 이름을 나는 예감한다.
이게 마지막이구나 마지막이라는 말은 눈물보다 슬픔보다 고통보다 더한 ‘영혼의 파괴’를 느끼게 한다.
의사선생님께 여쭤보았다. 그동안 한번도 나는 의사선생님께 너의 미래에 대하여 묻지 않았다. 의학적으로 예정된 결과를 나는 믿지 않았고 어떤 희망도 절망도 없이 그저 살아있는 날
농부가 밭을 갈고 노동자가 나사를 조이듯 우리의 숨이 살아있는 그 순간을 최선으로 살고 싶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 계속되는 어제밤의 혼수상태에서 너에게 아침을 말해줄수 없는 오늘아침
의사선생님께 많이 어렵냐고 여쭤보았다.
의사선생님의 침통한 표정과 목소리 ‘많이 어려워’ 나는 네 침대로 돌아와 울었다
아무도 아직 모른다 오늘 아침 이 아침이 너의 마지막이란걸 지금 울고 이따가 울지 않으마
승희야 이제 너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 너의 머리를 쓰다듬어 눈물을 적시며. 승희야
이게 정말 ‘마지막 아침’이라는 슬픈 이름을 오늘 적어야 할거냐
(중략)
피비린내가 자욱한 병원 침대의 머리맡에서 나는 승희와 지냈던 지난날들을 생각했다.
그 기억들은 너무 선명하여 기억속의 승희와 눈앞의 승희가 일치되지 않아
허공에 발을 내딛은 것처렴 내 마음은 허둥대고 있다. 나는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승희가 제 몸에 신나를 끼얹고 불을 당기고 이렇게, 타다가 붉은 살을 그대로 피 흘리며
붕대에 칭칭 감겨있는 이 모습이, 눈썹까지 타버리고 눈은 붉은 줄이 하나 그어져 있을뿐
눈자위도 눈동자도 없는 얼굴, 코는 검게 그을려 내려앉고 흐르는 진물로 살껍질이 녹아 문드러진 모습, 주먹보다 더 큰 입술과 죽어가는 조개의 속살처럼 삐죽이 내밀어진 혓바닥,
살갗이 타서 붉게 벗겨진 턱, 턱밑에 기관지를 절개하여 숨을 쉴수 있게 틔워놓고,
가슴과 어깨는 보기 끔찍하게 타다가 짓이겨진 그 상처에서 붉은 피가 흥건히 새어나와
몸을 감은 하얀 붕대를 붉게 시트까지 적시고 있다. 이모습 어디에서 승희를 찾을수가 있는가.
짧은 커트에 안경을 쓰고 목포출신답게 목포의 눈물을 구성지게 부르던 가만히 눈을 감고 입을 열어 손가락으로 장단을 맞추던 승희가. 친구들에겐 색화선지를 곱게 붙여 봉투와 편지지를 만들고,
샴푸와 린스에 수질오염을 일으키는 성분이 있다고 비누로 머리를 감고
마지막 헹굴 때 식초 두세방울을 풀어 헹구라고 가르켜 주던,
하이타이도 퐁퐁도 콜라도 손안대던 작은 애국자.
청소를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고 편집실 식구, 친구들을 많이 생각하던
평범하고 정많았던 한 여대생이 신나를 사고 유서를 쓰고 제몸에 불을 지르게 되기까지
이땅에서는 과연 무슨일이 일어난 것인가
분신 전날 4월 28일 목포 집에 가서 부모님을 끌어 안고 “가족들을 사랑한다”며 해후 한 뒤 “2만 학우가 잘 다니는 곳에 묻어 달라. 항상 함께 있고 싶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하였다.
한 때 몸의 상태가 호전되자 손가락으로 ‘노정권 타도. 미국놈들 몰아내자’는 표현을 힘겹게 쓰기도 하며 강인한 투혼을 보였으나 끝내 강경대 열사의 운구가 광주에 도착할 때인 5월 19일 운명하였다. 5월25일 광주 시민들의 애도 속에 광주망월동 묘지에 영원한 반미구국전사로 잠들었다.
동지를 생각하며 - 병상일지 중에서
승희야
네 머리맡에 엎드려 울면서 아직 네가 깨어있지 않은 아침의 이름을 나는 예감한다.
이게 마지막이구나 마지막이라는 말은 눈물보다 슬픔보다 고통보다 더한 ‘영혼의 파괴’를 느끼게 한다.
의사선생님께 여쭤보았다. 그동안 한번도 나는 의사선생님께 너의 미래에 대하여 묻지 않았다. 의학적으로 예정된 결과를 나는 믿지 않았고 어떤 희망도 절망도 없이 그저 살아있는 날
농부가 밭을 갈고 노동자가 나사를 조이듯 우리의 숨이 살아있는 그 순간을 최선으로 살고 싶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 계속되는 어제밤의 혼수상태에서 너에게 아침을 말해줄수 없는 오늘아침
의사선생님께 많이 어렵냐고 여쭤보았다.
의사선생님의 침통한 표정과 목소리 ‘많이 어려워’ 나는 네 침대로 돌아와 울었다
아무도 아직 모른다 오늘 아침 이 아침이 너의 마지막이란걸 지금 울고 이따가 울지 않으마
승희야 이제 너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 너의 머리를 쓰다듬어 눈물을 적시며. 승희야
이게 정말 ‘마지막 아침’이라는 슬픈 이름을 오늘 적어야 할거냐
(중략)
피비린내가 자욱한 병원 침대의 머리맡에서 나는 승희와 지냈던 지난날들을 생각했다.
그 기억들은 너무 선명하여 기억속의 승희와 눈앞의 승희가 일치되지 않아
허공에 발을 내딛은 것처렴 내 마음은 허둥대고 있다. 나는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승희가 제 몸에 신나를 끼얹고 불을 당기고 이렇게, 타다가 붉은 살을 그대로 피 흘리며
붕대에 칭칭 감겨있는 이 모습이, 눈썹까지 타버리고 눈은 붉은 줄이 하나 그어져 있을뿐
눈자위도 눈동자도 없는 얼굴, 코는 검게 그을려 내려앉고 흐르는 진물로 살껍질이 녹아 문드러진 모습, 주먹보다 더 큰 입술과 죽어가는 조개의 속살처럼 삐죽이 내밀어진 혓바닥,
살갗이 타서 붉게 벗겨진 턱, 턱밑에 기관지를 절개하여 숨을 쉴수 있게 틔워놓고,
가슴과 어깨는 보기 끔찍하게 타다가 짓이겨진 그 상처에서 붉은 피가 흥건히 새어나와
몸을 감은 하얀 붕대를 붉게 시트까지 적시고 있다. 이모습 어디에서 승희를 찾을수가 있는가.
짧은 커트에 안경을 쓰고 목포출신답게 목포의 눈물을 구성지게 부르던 가만히 눈을 감고 입을 열어 손가락으로 장단을 맞추던 승희가. 친구들에겐 색화선지를 곱게 붙여 봉투와 편지지를 만들고,
샴푸와 린스에 수질오염을 일으키는 성분이 있다고 비누로 머리를 감고
마지막 헹굴 때 식초 두세방울을 풀어 헹구라고 가르켜 주던,
하이타이도 퐁퐁도 콜라도 손안대던 작은 애국자.
청소를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고 편집실 식구, 친구들을 많이 생각하던
평범하고 정많았던 한 여대생이 신나를 사고 유서를 쓰고 제몸에 불을 지르게 되기까지
이땅에서는 과연 무슨일이 일어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