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상열 열사 32주기 추모제
○ 일 시: 2024년 4월 6일(토) 오후 2시
○ 장 소: 숭실대학교 열사 동상 앞
○ 일 시: 2024년 4월 6일(토) 오후 2시
○ 장 소: 숭실대학교 열사 동상 앞
행사 정보
토요일
2024-04-06
숭실대학교
지도에서 보기
인물 정보
이상열
- 1966년 경북 상주 출생
- 1985년 상주고등학교 졸업
- 1986년 공장일과 막노동 생활
- 1987년 3월 공장일과 막노동 생활을 하다가 숭실대 화공과 입학
- 1987년 7월 6월항쟁 관련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 수배 생활을 겪으며 구속영장을 발부받음
- 1992년 군복무후 복학해서 숭실대 야간강좌 부총학생회장 당선
- 1992년 4월 12일 자취방에서 지나친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로 운명
- 1992년 제6기 전대협 영웅상 수상함.
동지는 상주에서 3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나 ’85년 상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87년 숭실대에 들어오기 전 2년 동안을 구로공단의 닭장 집에서 노동자의 삶을 걸어왔으며 1년은 매형의 이발소에서 일을 하기도 하였다. 숭실대에 입학하자마자 6월 항쟁의 거리를 힘차게 달리면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으며 이로 인하여 수배 생활을 겪고 난 후 군에서 3년을 보내고 복학하였다. 동지는 복학한 후에도 야간대학 부총학생회장으로 역임하면서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학우들과 만나 사업을 전개하였으며 그러던 중 지나친 과로에 의해 자취방에서 심장마비로 운명하였다. 죽음 이후 동지의 모범적인 삶을 따라배우고자 하는 동지들에 의해 추천되어 박현민 동지와 함께 ’92년 전대협 영웅상을 수상하였다.
- 1985년 상주고등학교 졸업
- 1986년 공장일과 막노동 생활
- 1987년 3월 공장일과 막노동 생활을 하다가 숭실대 화공과 입학
- 1987년 7월 6월항쟁 관련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 수배 생활을 겪으며 구속영장을 발부받음
- 1992년 군복무후 복학해서 숭실대 야간강좌 부총학생회장 당선
- 1992년 4월 12일 자취방에서 지나친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로 운명
- 1992년 제6기 전대협 영웅상 수상함.
동지는 상주에서 3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나 ’85년 상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87년 숭실대에 들어오기 전 2년 동안을 구로공단의 닭장 집에서 노동자의 삶을 걸어왔으며 1년은 매형의 이발소에서 일을 하기도 하였다. 숭실대에 입학하자마자 6월 항쟁의 거리를 힘차게 달리면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으며 이로 인하여 수배 생활을 겪고 난 후 군에서 3년을 보내고 복학하였다. 동지는 복학한 후에도 야간대학 부총학생회장으로 역임하면서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학우들과 만나 사업을 전개하였으며 그러던 중 지나친 과로에 의해 자취방에서 심장마비로 운명하였다. 죽음 이후 동지의 모범적인 삶을 따라배우고자 하는 동지들에 의해 추천되어 박현민 동지와 함께 ’92년 전대협 영웅상을 수상하였다.
이상열 동지는 상주에서 3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나 85년 상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87년 숭실대에 들어오기 전 2년 동안을 구로공단의 닭장집에서 노동자의 삶을 걸어왔으며 1년은 매형의 이발소에서 일을 하기도 하였다.
숭실대에 입학하자마자 6월 항쟁의 거리를 힘차게 달리면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으며 이로 인하여 수배 생활을 겪고 난 후 군에서 3년을 보내고 복학하였다. 동지는 복학한 후에도 야간대학 부총학생회장으로 역임하면서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학우들과 만나 사업을 전개하였으며 그러던 중 지나친 과로로 자취방에서 심장마비로 운명하였다.
동지를 생각하며
동지애의 노래
(가는 길 험난하다 해도)
상열아 음치였던 널 구박하며 이 노랠 불렀었다.
집행부 회의 끝나고 술 한잔 걸치면 음치야, 널 지목해 이 노랠 시켜 놓고
한 번 더! 한 번 더! 놀려대고 했었구나
(시련의 고비 넘으리)
장대같은 스물 일곱 땅을 기는 질경이로만 피어 죽으나 사나 땅으로
꿈속에서도 학우에게로 새벽 공기 휘저어 학생회실 청소하며
라면 두 개, 대충 한 끼 검은 얼굴엔 허연 버짐 꽃 경상도 깡촌 보리 문딩이 음치야
그래도 넌 학우들에게 보급할 노래라며 쉴새 없이 흥얼거리곤 했었지.
(생사를 같이 하리라)
너 떠난 날 상열아 영안실 알싸한 국화꽃엔 노란 단내가 났단다.
이 녀석아 넌 정말 떠난거냐
영영 떠나버려 다시는 우리들 구박받으며 짖궂은 장난에도 품 넓게 허허 웃으며 머리 긁적일 수 없는거냐
시린 사월 임진강에 뼛가루 등등 띄워 보내고 나는 갈대줄기나 꺾어와서 이렇게 추모시를 써야 하는거냐
(다진 맹세 변치말자)
(다진 맹세 변치말자)
숭실대에 입학하자마자 6월 항쟁의 거리를 힘차게 달리면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으며 이로 인하여 수배 생활을 겪고 난 후 군에서 3년을 보내고 복학하였다. 동지는 복학한 후에도 야간대학 부총학생회장으로 역임하면서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학우들과 만나 사업을 전개하였으며 그러던 중 지나친 과로로 자취방에서 심장마비로 운명하였다.
동지를 생각하며
동지애의 노래
(가는 길 험난하다 해도)
상열아 음치였던 널 구박하며 이 노랠 불렀었다.
집행부 회의 끝나고 술 한잔 걸치면 음치야, 널 지목해 이 노랠 시켜 놓고
한 번 더! 한 번 더! 놀려대고 했었구나
(시련의 고비 넘으리)
장대같은 스물 일곱 땅을 기는 질경이로만 피어 죽으나 사나 땅으로
꿈속에서도 학우에게로 새벽 공기 휘저어 학생회실 청소하며
라면 두 개, 대충 한 끼 검은 얼굴엔 허연 버짐 꽃 경상도 깡촌 보리 문딩이 음치야
그래도 넌 학우들에게 보급할 노래라며 쉴새 없이 흥얼거리곤 했었지.
(생사를 같이 하리라)
너 떠난 날 상열아 영안실 알싸한 국화꽃엔 노란 단내가 났단다.
이 녀석아 넌 정말 떠난거냐
영영 떠나버려 다시는 우리들 구박받으며 짖궂은 장난에도 품 넓게 허허 웃으며 머리 긁적일 수 없는거냐
시린 사월 임진강에 뼛가루 등등 띄워 보내고 나는 갈대줄기나 꺾어와서 이렇게 추모시를 써야 하는거냐
(다진 맹세 변치말자)
(다진 맹세 변치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