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정보
인물 정보
윤재영(당시 27세)
1984년 충남대학교 철학과 입학
1987년 충남대학교 총학생회장
1987년 8월 전대협 결성주도(제 1기 전대협 부의장)
1987년 12월 12일 12·12반란 규탄대회 투쟁 중 구속
1988년 2월 출소
1989년 수배중 대전 새길 청년회 창립 주도
1992년 10월 10일 노동운동을 하던 중 천식으로 인해 운명
탁구장에서의 만남 이후 우리는 급속히 가까워졌고 드디어 유성의 모다방에서 회합하여 (이날의 회합에는 5명이 참여했다) 청년운동에 대한 각자의 견해와 계획을 토론하였다. 몇번의 계속된 만남속에서 모임의 성격은 더욱 구체화되기에 이르렀는데, 우리의 토론 결과는 ‘청년운동을 소수에서 다수의 운동으로 전환할 것, 회원을 주인으로 세우는 모임으로 할 것, 청년대중의 이해와 요구에 근거하는 모임이 될 것’ 등 청년운동의 대중화와 지역운동의 강화발전으로 모아졌다. 사실 지금 생각하여 보면 사회 초년생들이 내놓은 계획치고는 거창하였지만 5명의 우리들은 쉽게 의기투합하여 그 해 3월부터는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각자 다른 개성을 가진 우리들이 그토록 쉽게 뜻을 맞추고 활동에 들어갈 수 있었던데에는 재영이의 노력이 각별하였다. 동료의 이야기를 끝까지 귀담아 들어 성급한 결론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자세나 사소한 논쟁에 토론이 맴돌 때는 핵심과 원칙을 끌어내는 등 자기 의견을 내세우지 않아도 그 뜻을 관철할 줄 아는 동료였다. 이러한 그의 자세는 이후 활동 속에서 회원들의 생활이나 고민을 놓치지 않고 듣고 이해하고 도우려하여 청년회 활동이 풍부해지고 늘 웃음이 끊이지 않는 원동력이 되었다. <동료의 회상 中에서>
시 1
동지들이여! 우리 이제 압니다. 흐린 날에도 별은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민족해방 투쟁의 길에 반역의 먹구름, 분열의 비바람 세차게 몰아쳐도 자주의 별, 민주의 별, 통일의 별은 흔들림없이 그 자리에 빛나고 있음을.... 우린 이제야 깨닫습니다 참된 삶은 자신을 위한 안락이 아니라 혁명의 길임을..... 조국과 민중에 바치는 부끄럼없는 삶임을... 이제 동지들의 묘를 덮은 잔디처럼 밟아도 되일어서는 푸른 잔디처럼 동지들은 죽어도 죽지않는 태양으로 우리는 민족해방의 거대한 뿌리로 살아 찬란한 조국통일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시 2
재영아 불퇴전의 투사가 아니라도 좋다. 소탈한 웃음 나누는 벗으로 곁에 있다면 이렇게 변명으로 고민하지 않을텐데 네가 우리 곁을 떠난 지 일년이 되는구나 망각의 세월을 보내다 이제 주섬주섬 너의 이야기를 챙기는 구나 어설프고 부끄럽지만 가슴 한 곳에 고여있는 벗들의 그리움이 사랑이 한줄기 희망으로 다시 피어났으면 정말 좋겠다. 재영아 < 93.10.10. 故 윤재영 동지 1주기에 부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