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경동 열사 30주기 추모제
○ 일 시: 2023년 9월 9일(토) 오후 2시
○ 장 소: 마석 모란공원
행사 정보
토요일
2023-09-09
마석 모란공원
지도에서 보기
인물 정보
이경동(당시 24세)
1969년 10월 24일 전남 여천군 출생
1989년 순천고등학교 졸업
광주교대 윤리과 입학, 교육동아리 ‘아희스랑’ 참여
1990년 동아리 연합회 간부활동
1990년 10월 교원 종합대책안 반대투쟁 시 직격 최루탄으로 다리골절 부상
1991년 2학기 총학생회 사회부 차장으로 활동
1992년 4학년 과 대의원으로 활동, 북한이해 분과장 역임.
1992년 11월 광주전남 교사 청년회 간사로 활동
1993년 9월 8일 분신 항거
1993년 9월 9일 운명
1989년 순천고등학교 졸업
광주교대 윤리과 입학, 교육동아리 ‘아희스랑’ 참여
1990년 동아리 연합회 간부활동
1990년 10월 교원 종합대책안 반대투쟁 시 직격 최루탄으로 다리골절 부상
1991년 2학기 총학생회 사회부 차장으로 활동
1992년 4학년 과 대의원으로 활동, 북한이해 분과장 역임.
1992년 11월 광주전남 교사 청년회 간사로 활동
1993년 9월 8일 분신 항거
1993년 9월 9일 운명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고민해왔던 이경동 동지는 내성적이면서도 때로는 누구 못지 않게 활발하게 생활했으며, 자치공간의 청소를 도맡아 할 정도로 근면하고 성실하였다.
책임감이 강했고, 자기 자신보다는 동기나 후배들을 먼저 챙기며,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글을 적어 그들의 삶을 공유하려고 노력했다. 임용고시 철폐 투쟁기간 동안 모든 학우들과 함께 투쟁해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안타깝게 느끼고 현실에 안주하는 삶보다 항상 깨어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자며 다짐했다.
분신하기 일주일 전의 생활을 살펴보면 이경동 동지가 자신의 삶을 정리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동아리 방에서 책을 정리하며 동기와 후배들이 갖고 싶어하는 책들을 나누어 주었고, 부모님과 할머님께 드릴 선물을 마련하는가 하면 강경대 열사를 찾아 갔었고, 5일 일요일 오전에는 망월동에 참배를 다녀왔다. 오후에 고향으로 내려가 부모님과 할머님께 선물을 드리고, 6일 아침 일찍 광주에 올라와서 동기와 후배들에게 선물을 주었고, 7일 저녁에는 10여명의 동기들에게 안부전화와 더불어 열심히 생활해 나가라며 격려하였다.
이렇듯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면서 의지를 재차 다져가며 죽음을 준비하였다. 8일 12시 45분경 음악관 뒷편에서 임용고시철폐, 주한미군 철수와 기만적인 김영삼 정권을 반대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하였다.
동지를 생각하며
자신의 아픔을 도려내지 않고
항상 웃는 얼굴로 우리를 감싸안았고
참된 삶을 고민하며 치열하게 청춘을 살아왔던 형
우리가 김영삼의 기만적인 여론정치에 속아
무감각의 시대를 살아갈 때
형은 이 땅 식민지 현실을 아파했고
우리가 노예교사, 지식판매자의 길을 강요하는
임용고시를 맞아 “싸워도 대안이 없다” “승리할 수 있을까” 말하며
때론, 도서관으로 때론, 술집으로 향했을 때
형은 우리의 수동적이고, 대안이 없음을 정권이 요구하는 대로
개별화되는 것을 그리고 이땅의 교육현실을
가슴 아파하셨습니다.
형이 준비한 투쟁은 지금도 눈물짓게 하는
분신항거였습니다.
우리는 형을 죽음으로 몰고간 이땅 현실과 우리들의 문제, 이땅
교육을 파행적으로 몰고가는 임용고시에 이악스럽게 달라들어
형의 뜻대로
반드시 임용고시를 끝장냅시다.
형의 죽음을 애도하며 4학년 한 학우
유고글
유 서
아버지, 어머니 제가 먼저 가는 이유는 먼저, 전혀 변화되지 않았는데도 언론의 조작에 현혹되어 버린 국민들이 각성하도록 하는 것이요, 두번째는 한반도의 원수였던 외세가 남한의 심장부에 문민시대에도 남아있으며, 주둔하는 군대에는 비용을 늘려주면서 우리 국민들에게는 고통분담을 요구하며 조금만 요구를 하더라도 집단 이기주의라고 호도하며, 도무지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알 수가 없으며, 나라의 백년지대계인 교육을 마음대로 하기 위하여 우수교원 확보라는 미명하에 예비교사들을 대학교육보다는 학원으로 달려가 단지 지식을 암기하여 지식을 팔아먹는 교사가 되게 하려 하고 있기에 제가 항의를 하는 것입니다.
교사가 지식만을 가르치는 교사로 전락했을 때 그 교사 밑에서 배우는 아이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대로 된 교육을 받겠습니까. 올바른 교사관과 풍부한 지식, 아이들에 대한 끝없는 사랑이 있어야만 올바르게 커가는 아이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초등교사를 길러내는 교육대학이 파행적으로 운영이 될 때 초등교육뿐만 아니라 이 나라 교육은 파행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반드시 임용고시가 철폐되고 올바른 임용제도가 실시되어야 합니다. 저도 초등교사가 되어서 좋은 교사가 되고 싶지만 이런 제도 속에서는 지식 전달자 밖에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글
우리는 교육계에서 개혁을 해야합니다. 썩은 것을 도려내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며 살아가야 하기에 우리도 물이 들어가는 것이 아닌 힘들지만 하나로 단결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갑시다.
풍향골에서 먼저 일어나 전국의 교대가 일어나고 전국민의 지지를 받으면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저의 행동이 기폭제가 되어서 완강한 싸움을 통해서 우리의 교대와 교육을 살려냅시다. 그리고 승리하면 풍향골 곳곳에 민들레씨를 뿌려 주십시오. 언제나 여러분들과 함께 교육을 위하여 힘을 쓰겠습니다. 민족자주교육과 통일교육, 인간교육이 실현되는 그날이 올때까지 열심히 살아갑시다.
미국없이 더 잘 산다. 주한미군 몰아내고 우리교육 살려내자!!!
고통분담 허울속에 교육비 삭감 왠 말이냐 교육재정 5%확보하자!!!
주둔비는 증액되고 교육비 삭감속에 나라꼴이 엉망이다. 교육환경 개선하자!!!
임용고시 철폐하고 초등교육 정상화하자!!!
예비교사 선봉투쟁, 4천만의 단결투쟁 우리교육 살려내자!!!
임용고시 철폐하고 민주적 임용고시 쟁취하자!!!
예비교사 단결투쟁 우리교육 살려내자!!!
참교육 염원 49년 9월7일 경동이가
추모글
추모사
알았습니다. 5박 6일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분명히 알았습니다. 온몸이 타들어 가면서도 불길이 목구멍을 헤집고 들어올 때도 열사는 입을 다물지 않고 말라 비틀어져 갈라진 입술을 달싹거리며 우리에게 일깨워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거짓개혁을 때려치우고, 참민주 대개혁을 실현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혈맹 우방도 민족의 이익에 우선하지 못한다.”는 말은 달콤한 감언이설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것을 다 바쳐서라도 지켜야 할 실천의 요체임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열사여! 결코 헛되이 하지 않겠습니다. 열사가 분신하기까지의 그 고뇌에 찬 시간들을 헛되이 하지 않겠습니다. 열사의 고통, 피, 땀, 눈물 한방울까지도 헛되이 하지 않겠습니다. 열사의 손톱조각, 머리카락 한오라기라도 의미없이 만들지는 않겠습니다. 열사가 가신 뒤에 우리는 무척 아픈 상처에 가슴을 쥐어뜯으며 서러워했지만 그만큼 성숙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로 되었습니다. 매일 아침 모든 것을 뒤로 미루고, 과 깃발아래 총학생회 깃발아래 하나되어 소리높여 외쳐댔습니다.
교육대개혁 쟁취하자!
민주대개혁 실현하자!
주한미군 몰아내자!
<동지 추모집 추모사 中>
책임감이 강했고, 자기 자신보다는 동기나 후배들을 먼저 챙기며,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글을 적어 그들의 삶을 공유하려고 노력했다. 임용고시 철폐 투쟁기간 동안 모든 학우들과 함께 투쟁해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안타깝게 느끼고 현실에 안주하는 삶보다 항상 깨어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자며 다짐했다.
분신하기 일주일 전의 생활을 살펴보면 이경동 동지가 자신의 삶을 정리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동아리 방에서 책을 정리하며 동기와 후배들이 갖고 싶어하는 책들을 나누어 주었고, 부모님과 할머님께 드릴 선물을 마련하는가 하면 강경대 열사를 찾아 갔었고, 5일 일요일 오전에는 망월동에 참배를 다녀왔다. 오후에 고향으로 내려가 부모님과 할머님께 선물을 드리고, 6일 아침 일찍 광주에 올라와서 동기와 후배들에게 선물을 주었고, 7일 저녁에는 10여명의 동기들에게 안부전화와 더불어 열심히 생활해 나가라며 격려하였다.
이렇듯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면서 의지를 재차 다져가며 죽음을 준비하였다. 8일 12시 45분경 음악관 뒷편에서 임용고시철폐, 주한미군 철수와 기만적인 김영삼 정권을 반대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하였다.
동지를 생각하며
자신의 아픔을 도려내지 않고
항상 웃는 얼굴로 우리를 감싸안았고
참된 삶을 고민하며 치열하게 청춘을 살아왔던 형
우리가 김영삼의 기만적인 여론정치에 속아
무감각의 시대를 살아갈 때
형은 이 땅 식민지 현실을 아파했고
우리가 노예교사, 지식판매자의 길을 강요하는
임용고시를 맞아 “싸워도 대안이 없다” “승리할 수 있을까” 말하며
때론, 도서관으로 때론, 술집으로 향했을 때
형은 우리의 수동적이고, 대안이 없음을 정권이 요구하는 대로
개별화되는 것을 그리고 이땅의 교육현실을
가슴 아파하셨습니다.
형이 준비한 투쟁은 지금도 눈물짓게 하는
분신항거였습니다.
우리는 형을 죽음으로 몰고간 이땅 현실과 우리들의 문제, 이땅
교육을 파행적으로 몰고가는 임용고시에 이악스럽게 달라들어
형의 뜻대로
반드시 임용고시를 끝장냅시다.
형의 죽음을 애도하며 4학년 한 학우
유고글
유 서
아버지, 어머니 제가 먼저 가는 이유는 먼저, 전혀 변화되지 않았는데도 언론의 조작에 현혹되어 버린 국민들이 각성하도록 하는 것이요, 두번째는 한반도의 원수였던 외세가 남한의 심장부에 문민시대에도 남아있으며, 주둔하는 군대에는 비용을 늘려주면서 우리 국민들에게는 고통분담을 요구하며 조금만 요구를 하더라도 집단 이기주의라고 호도하며, 도무지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알 수가 없으며, 나라의 백년지대계인 교육을 마음대로 하기 위하여 우수교원 확보라는 미명하에 예비교사들을 대학교육보다는 학원으로 달려가 단지 지식을 암기하여 지식을 팔아먹는 교사가 되게 하려 하고 있기에 제가 항의를 하는 것입니다.
교사가 지식만을 가르치는 교사로 전락했을 때 그 교사 밑에서 배우는 아이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대로 된 교육을 받겠습니까. 올바른 교사관과 풍부한 지식, 아이들에 대한 끝없는 사랑이 있어야만 올바르게 커가는 아이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초등교사를 길러내는 교육대학이 파행적으로 운영이 될 때 초등교육뿐만 아니라 이 나라 교육은 파행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반드시 임용고시가 철폐되고 올바른 임용제도가 실시되어야 합니다. 저도 초등교사가 되어서 좋은 교사가 되고 싶지만 이런 제도 속에서는 지식 전달자 밖에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글
우리는 교육계에서 개혁을 해야합니다. 썩은 것을 도려내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며 살아가야 하기에 우리도 물이 들어가는 것이 아닌 힘들지만 하나로 단결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갑시다.
풍향골에서 먼저 일어나 전국의 교대가 일어나고 전국민의 지지를 받으면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저의 행동이 기폭제가 되어서 완강한 싸움을 통해서 우리의 교대와 교육을 살려냅시다. 그리고 승리하면 풍향골 곳곳에 민들레씨를 뿌려 주십시오. 언제나 여러분들과 함께 교육을 위하여 힘을 쓰겠습니다. 민족자주교육과 통일교육, 인간교육이 실현되는 그날이 올때까지 열심히 살아갑시다.
미국없이 더 잘 산다. 주한미군 몰아내고 우리교육 살려내자!!!
고통분담 허울속에 교육비 삭감 왠 말이냐 교육재정 5%확보하자!!!
주둔비는 증액되고 교육비 삭감속에 나라꼴이 엉망이다. 교육환경 개선하자!!!
임용고시 철폐하고 초등교육 정상화하자!!!
예비교사 선봉투쟁, 4천만의 단결투쟁 우리교육 살려내자!!!
임용고시 철폐하고 민주적 임용고시 쟁취하자!!!
예비교사 단결투쟁 우리교육 살려내자!!!
참교육 염원 49년 9월7일 경동이가
추모글
추모사
알았습니다. 5박 6일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분명히 알았습니다. 온몸이 타들어 가면서도 불길이 목구멍을 헤집고 들어올 때도 열사는 입을 다물지 않고 말라 비틀어져 갈라진 입술을 달싹거리며 우리에게 일깨워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거짓개혁을 때려치우고, 참민주 대개혁을 실현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혈맹 우방도 민족의 이익에 우선하지 못한다.”는 말은 달콤한 감언이설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것을 다 바쳐서라도 지켜야 할 실천의 요체임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열사여! 결코 헛되이 하지 않겠습니다. 열사가 분신하기까지의 그 고뇌에 찬 시간들을 헛되이 하지 않겠습니다. 열사의 고통, 피, 땀, 눈물 한방울까지도 헛되이 하지 않겠습니다. 열사의 손톱조각, 머리카락 한오라기라도 의미없이 만들지는 않겠습니다. 열사가 가신 뒤에 우리는 무척 아픈 상처에 가슴을 쥐어뜯으며 서러워했지만 그만큼 성숙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로 되었습니다. 매일 아침 모든 것을 뒤로 미루고, 과 깃발아래 총학생회 깃발아래 하나되어 소리높여 외쳐댔습니다.
교육대개혁 쟁취하자!
민주대개혁 실현하자!
주한미군 몰아내자!
<동지 추모집 추모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