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정기 선생 5주기 추모제
○ 일 시: 2023년 7월 28일(금) 오전 11시
○ 장 소: 마석 모란공원
행사 정보
금요일
2023-07-28
마석 모란공원
지도에서 보기
인물 정보
박정기
- 1928년 10월 29일(음), 경남 동래군(현재 부산시 기장군) 정관면 월평리에서 부 박영복, 모 정금순 사이에 외아들로 태어남.
- 1944년 정관 소학교 졸업
- 1946년 3월 부산공립원예전수학교 입학, 여동생 정옥 태어남.
- 1947년 어머님 정금순 여사 복막염으로 별세.
-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학교가 문을 닫게 되어 수학을 중단함.
- 1952년 3월 국민대학교(현 경남대학교) 경제학과 입학
- 1953년 6월 빨치산에 납치되어 가다가 탈출, 이후 대학 중퇴.
- 1954년 부산시 수도국 공무원으로 입사. 이후 수도국 공무원으로 36년간 재직.
- 1956년 중매로 정차순을 만나 결혼. 슬하에 2남1녀(박종부, 박은숙, 박종철)를 둠.
- 1980년 서강대에서 학생운동을 하던 장남 박종부가 경찰에 연행되었다가 두 달만에 석방됨.
- 1984년 막내 박종철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에 입학. 학생운동에 참여.
- 1986년 박종철 언어학과 학생회장으로 선출되고, 4월 11일 청계피복노조 관련 거리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구속되어 성동구치소에 수감됨. 7월 15일, 징역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석방됨.
- 1987년 1월 14일,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에 재학 중이던 막내 박종철,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에서 고문을 받다가 만 22세 나이에 사망함.
- 1987년 1월 16일, 막내 박종철의 시신을 벽제 화장터에서 화장하고, 임진강 지류 샛강에 뼈를 뿌리며, “철아, 잘 가그래이. 이 아부지는 할 말이 없데이.”며 작별.
- 이후 온 가족이 경찰, 안기부 등의 감시와 미행을 받는 가운데에서도 막내 박종철의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싸움을 지속해 나가고, 부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활동에 참여.
- 1988년 박종철 1주기 추모식 이후 유가협(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현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에 참여하여 막내 박종철의 뜻을 이어 민주화운동에 헌신함. 유가협 부회장(1988~91), 유가협 회장(1991~93) 등을 역임하면서 유가협을 이끌어 감.
- 1988년 10월부터 1989년 2월까지 이어진 의문사 유가족들의 진상규명 135일 농성에 참여.
- 1989년 3월 3일, 박종철 초혼장. 장대비가 내리는 가운데 서울대에서 영결식을 갖고 남영동 대공분실로 향했으나 경찰에 막힘. 밤에 마석 모란공원에서 하관함.
- 1989년 3월 31일, 유가협의 집 마련을 위한 전시회를 유가족들과 함께 개최. 그 수익금으로 그해 12월 17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한울삶> 집을 마련함.
- 1990년 8월 12일, 유가협 후원회 창립, 옥중의 문익환 목사 회장으로 추대.
- 1991년 7월 7일, 명지대생 강경대 학생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전경 재판에 방청 갔다가 법정소란죄로 구속되어 영등포구치소에 수감. 10월 14일,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석방됨.
- 1992년 5월 7일, 불교인권상 수상.
- 1993~95년 ‘고문피해자 문국진과 함께 하는 모임’대표 역임.
- 1994년 제5차 범민족대회 통일선봉대장
- 1998년 11월 4일부터 1999년 연말까지 422일 동안 이어진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 및 민주화운동명예회복특별법 제정을 위한 유가족 농성’에 참여. 끝내 1999년 12월 30일 국회에서 두 개의 특별법 통과.
- 이후 의문사 진상규명 투쟁, 민주화운동관련자들의 명예회복, 민주공원묘역 조성 등을 위해 노력하셨고, 우리 사회의 약자들의 투쟁, 민주주의와 인권 사안에는 있는 곳이면 어디든 방문하여 연대하였음. 몸을 돌보지 않는 헌신적인 활동을 전개하여 수많은 사람들에 감동을 줌.
- 2009년 6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로부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국가와 검찰의 잘못을 인정하며 “국가와 검찰은 유족에게 사과하여야 한다”는 권고 결정을 받아냄.
- 2017년 1월 14일, 박근혜 퇴진 촛불항쟁이 전국적으로 전개되던 중 박종철 30주기를 맞아서 부산에서 진행된 촛불집회에 마지막으로 참여함.
- 이후 척추 골절 수술을 받은 뒤에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부산 수영구 남천동 요양병원에 입원.
- 2018년 3월 20일, 문무일 검찰총장이 병원으로 방문하여 요양 중인 선생을 방문하여 과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에서 검찰의 잘못에 대해 사과를 함.
- 2018년 6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6월항쟁 기념사에서 남영동 대공분실을 인권기념관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함.
- 2018년 7월 28일, 향년 89세로 운명하여 7월 31일 민주시민장 엄수, 마석 모란공원 막내 박종철의 곁에서 영원한 안식에 드심.
- 1944년 정관 소학교 졸업
- 1946년 3월 부산공립원예전수학교 입학, 여동생 정옥 태어남.
- 1947년 어머님 정금순 여사 복막염으로 별세.
-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학교가 문을 닫게 되어 수학을 중단함.
- 1952년 3월 국민대학교(현 경남대학교) 경제학과 입학
- 1953년 6월 빨치산에 납치되어 가다가 탈출, 이후 대학 중퇴.
- 1954년 부산시 수도국 공무원으로 입사. 이후 수도국 공무원으로 36년간 재직.
- 1956년 중매로 정차순을 만나 결혼. 슬하에 2남1녀(박종부, 박은숙, 박종철)를 둠.
- 1980년 서강대에서 학생운동을 하던 장남 박종부가 경찰에 연행되었다가 두 달만에 석방됨.
- 1984년 막내 박종철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에 입학. 학생운동에 참여.
- 1986년 박종철 언어학과 학생회장으로 선출되고, 4월 11일 청계피복노조 관련 거리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구속되어 성동구치소에 수감됨. 7월 15일, 징역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석방됨.
- 1987년 1월 14일,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에 재학 중이던 막내 박종철,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에서 고문을 받다가 만 22세 나이에 사망함.
- 1987년 1월 16일, 막내 박종철의 시신을 벽제 화장터에서 화장하고, 임진강 지류 샛강에 뼈를 뿌리며, “철아, 잘 가그래이. 이 아부지는 할 말이 없데이.”며 작별.
- 이후 온 가족이 경찰, 안기부 등의 감시와 미행을 받는 가운데에서도 막내 박종철의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싸움을 지속해 나가고, 부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활동에 참여.
- 1988년 박종철 1주기 추모식 이후 유가협(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현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에 참여하여 막내 박종철의 뜻을 이어 민주화운동에 헌신함. 유가협 부회장(1988~91), 유가협 회장(1991~93) 등을 역임하면서 유가협을 이끌어 감.
- 1988년 10월부터 1989년 2월까지 이어진 의문사 유가족들의 진상규명 135일 농성에 참여.
- 1989년 3월 3일, 박종철 초혼장. 장대비가 내리는 가운데 서울대에서 영결식을 갖고 남영동 대공분실로 향했으나 경찰에 막힘. 밤에 마석 모란공원에서 하관함.
- 1989년 3월 31일, 유가협의 집 마련을 위한 전시회를 유가족들과 함께 개최. 그 수익금으로 그해 12월 17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한울삶> 집을 마련함.
- 1990년 8월 12일, 유가협 후원회 창립, 옥중의 문익환 목사 회장으로 추대.
- 1991년 7월 7일, 명지대생 강경대 학생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전경 재판에 방청 갔다가 법정소란죄로 구속되어 영등포구치소에 수감. 10월 14일,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석방됨.
- 1992년 5월 7일, 불교인권상 수상.
- 1993~95년 ‘고문피해자 문국진과 함께 하는 모임’대표 역임.
- 1994년 제5차 범민족대회 통일선봉대장
- 1998년 11월 4일부터 1999년 연말까지 422일 동안 이어진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 및 민주화운동명예회복특별법 제정을 위한 유가족 농성’에 참여. 끝내 1999년 12월 30일 국회에서 두 개의 특별법 통과.
- 이후 의문사 진상규명 투쟁, 민주화운동관련자들의 명예회복, 민주공원묘역 조성 등을 위해 노력하셨고, 우리 사회의 약자들의 투쟁, 민주주의와 인권 사안에는 있는 곳이면 어디든 방문하여 연대하였음. 몸을 돌보지 않는 헌신적인 활동을 전개하여 수많은 사람들에 감동을 줌.
- 2009년 6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로부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국가와 검찰의 잘못을 인정하며 “국가와 검찰은 유족에게 사과하여야 한다”는 권고 결정을 받아냄.
- 2017년 1월 14일, 박근혜 퇴진 촛불항쟁이 전국적으로 전개되던 중 박종철 30주기를 맞아서 부산에서 진행된 촛불집회에 마지막으로 참여함.
- 이후 척추 골절 수술을 받은 뒤에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부산 수영구 남천동 요양병원에 입원.
- 2018년 3월 20일, 문무일 검찰총장이 병원으로 방문하여 요양 중인 선생을 방문하여 과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에서 검찰의 잘못에 대해 사과를 함.
- 2018년 6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6월항쟁 기념사에서 남영동 대공분실을 인권기념관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함.
- 2018년 7월 28일, 향년 89세로 운명하여 7월 31일 민주시민장 엄수, 마석 모란공원 막내 박종철의 곁에서 영원한 안식에 드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