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 시: 2021년 6월 19일(토) 10:00
○ 장 소: 외대 용인캠퍼스 추모비앞
행사 정보
인물 정보
이재용(당시 23세)
1982년 2월 성일고등학교 졸업
1984년 3월 외대 용인캠퍼스 영어과 입학
1986년 9월 외대 용인캠퍼스 학회연합회장
1987년 6월 용성지역 호헌철폐 및 군부독재 타도 학생협회회 공동의장
1987년 6월 25일 경찰의 침탈을 피하다 교통사고로 새벽 2시경에 운명
제 23차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 인정자
동지는 서울대 박종철 열사의 고문조작은폐사건으로 전 국민이 분노하고 지긋지긋한 군사독재를 끝장내고자
성난 파도같이 일어섰던 ’87년 6월 항쟁 당시 용인성남지역총학생회연합(용성총련) 호헌철폐 및 군부독재 타도
학생협의회 공동의장을 맡아 투쟁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은 동지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기 위해 수배조치를 내렸고 동지는 그 지치기 쉬운 수배생활 속에서도
늘 승리를 확신하였고 오히려 한달 생활비를 형편이 어려운 동료, 후배들에게 선뜻 내놓으며 자신은
끼니 거르기를 예사로 했던 투사였다.
그러던 중 경원대에서 경찰의 학내 침탈 소식을 듣고 급히 몸을 피하다가 학교 앞에서 교통사고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였다.
동지의 죽음은 5.18광주민중들의 피를 밟고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정권이 정권연장을 위해 학생을 비롯한 민주세력들을
탄압하고 억압한 필연적인 결과였다.
추도식에서 동료가 낭독한 추도사중의 일부
“암울한 식민지 조국, 밤의 어둠이 걷히지 않고 민족해방의 찬연한 신새벽이 동트기 전에는 그대를 보내지도,
보낼 수도 없다는 것을. 투사 이재용 동지를 생각하며 용기를 얻습니다. 그리고 확신합니다.
우리들의 살을 태워, 우리들의 뼈를 깍아, 기필코 이 피의 전투에서 민족해방의 위업을 이루고야 말 것입니다.
그리하여 조국이 해방되고 민중이 주인되는 새 날, 동지와 함께 성남에서, 어머니 조국강토에서 한판 춤을 출 것입니다.”
동지를 생각하며
이재용 동지! 알량한 혓바닥으로 살지 않겠노라.
오직 이 억센 팔다리와 뜨거운 가슴으로 살겠노라며 캄캄한 식민지 조국의 밤을 하얗게 지샜던 그날들.
한달 생활비를 형편이 어려운 동료, 후배들에게 선뜻 내놓으며 자신은 끼니 거르기를 예사로 했던
그 지치기 쉬운 도피생활 중에서도 늘 승리를 말하고 전선을 얘기하며 캠퍼스에서,
가두에서 묵묵히 헌신적으로 싸우던 동지의 모습. 드디어 진군의 북소리가 울리고 이번만은 결단코
학살자의 심장에 비수를 꽂아 이 지긋지긋한 군사독재를 끝장내기로 한 6·10 총파업. 절치부심의 투쟁.
그 6월 투쟁의 어느 날, 성남 시청앞에 운집한 수많은 군중들로 부터 박수갈채를 한몸에 받았던 동지.
가슴이 터져라 조국의 자주화와 민주화를 피로 토해 냈던 투사. 우리들의 동지, 우리들의 투사, 이재용. 동지는 갔습니다.
승리가 목전에 있던 6월투쟁의 막바지에 갔습니다. 살인마의 시퍼런 칼날에 어두운 거리 차디찬 아스팔트 위에
쓰러져 갔습니다. 아직은 남의 나라 땅. 동강난 어머니 식민지 조국강산을 온몸으로 부둥켜 안고 동지는 갔습니다.
가슴이 미어져 옵니다. 이 원통함을 어찌해야 합니까. 그러나 동지여, 울지 않으렵니다.
암울한 식민지 조국 밤의 어둠이 걷히지 않고 민족해방의 찬연한 신새벽이 동트기 전에는 그대를 보내지도,
보낼 수도 없다는 것을. 투사 이재용. 동지를 생각하며 용기를 얻습니다. 그리고 확신합니다.
우리들의 혈관이 꿈틀거리는 한, 팔팔한 심장의 고동침이 있는 한. 우리들의 살을 태워, 우리들의 뼈를 깍아.
기필코 기필코 이 피의 전투에서 민족 해방의 위업을 이루고야 말 것입니다.
그리하여 조국이 해방되고 민중이 주인되는 새 날, 동지와 함께 성남에서, 어머니 조국강토에서
한판 해방춤을 출 것입니다.
분단조국 43년 7월 4일 친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