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조정식동지 32주기 추모제
○ 일 시: 2021년 5월 23일(일) 12:00
○ 장 소: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
행사 정보
일요일
2021-05-23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
지도에서 보기
인물 정보
조정식(당시 25세)
1964년 1월 17일 대구시 수성구에서 출생
1982년 서울대 물리학과 입학, 학생운동에 투신
1984년 7월 제적, 인천 범아산업에 취직
1986년 5월 인천 진도에 입사하여 노동운동 시작함
1987년 11월 반제동맹사건으로 구속, 3년형을 선고
1989년 5월 10일 영전기계에 취업
1989년 5월 24일 오후 3시경 공장에서 산재로 운명
1982년 서울대 물리학과 입학, 학생운동에 투신
1984년 7월 제적, 인천 범아산업에 취직
1986년 5월 인천 진도에 입사하여 노동운동 시작함
1987년 11월 반제동맹사건으로 구속, 3년형을 선고
1989년 5월 10일 영전기계에 취업
1989년 5월 24일 오후 3시경 공장에서 산재로 운명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조정식 동지는 대학에서 제적된 후 인천 범아산업을 거쳐 인천 진도에 입사하여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동지는 진도에서 친목회를 만들어 노동자들의 현실에 관해 토론활동을 했으며 투쟁을 호소하며 혈서를 쓰기도 했다. 그러다가 87년 반제동맹사건으로 치안본부 인천 대공분실에 불법연행되어 고문을 당하고 0.7평의 차디찬 독방에 수감되었다.
88년 석방 후 89년에 영전기계에 선반공으로 취업한 동지는 힘들지만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생활을 더없이 좋아했다. 그러나 5월 24일 드릴링 작업중인 조정식 동지 뒤에서 선반공이 시간에 쫓겨 선반의 속도를 높이는 순간 공작물 균형을 위해 고정시켜 두었던 추(약 30㎏)가 튕겨나와 동지의 뒷머리를 강타, 병원으로 옮기던 중 운명하였다.
동지가 남긴 글
<편지 1>
아무리 되돌아보아도 저는 아직 아버님께 못난 아들입니다. 집안의 장남이면서도 아버님을 그 머나먼 땅에서 고생하시도록 만들고 가족들에게 본의 아니지만 온갖 슬픔과 고통을 주었던 점에서 저는 못난 아들입니다. 그렇다고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제가 걷고자 하는 길을 훌륭하게 걷고 있지도 못하다는 점에서 저는 더욱 못난 아들입니다. 부모님의 헌신적인 희생과 노력에도 최고학부의 교육을 받아 머릿속에 든 것은 많지만 실제 사회생활 속에서 제가 가장 훌륭하고 떳떳하다고 믿는 길을 헤쳐나가고 있지 못한 것이 부끄러운 현실입니다.
역사를 살펴보아도 저 보다도 훨씬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나라를 위해 힘써 일함으로써 후대의 귀감이 된 사람도 많건만 저는 아직 너무나 부족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불의에 굽히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그 어떤 시련과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도탄에 빠진 이 나라, 이 민족을 구하기 위해 굽히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만일 언젠가 제가 나라를 위해 조그마한 업적이라도 남긴다면 그것은 오직 아버님의 헌신적인 사랑과 희생의 결과라는 것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이야기 할 겁니다.
아버님 저는 제가 걷는 이 길이 아무리 옳고 떳떳한 길이라 할지라도 수많은 슬픔과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는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만이 겪어야 할 고통이라면 저는 아무리 커다란 고통이라 할지라도 기쁘게 맞을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 때문에 아버님, 어머님, 동생들이 겪는 고통 때문에 저는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더구나 미제국주의의 하수인격인 저 가증스러운 군사독재놈들이 의도적으로 가족들에게 귀찮게 하고 감시와 탄압의 마수를 뻗으면서 “당신 아들 때문에 그렇다”고 지껄여 댈 때는 저는 나라의 현실이 슬프기에 앞서 가족들이 어쨌든 저 때문에 고통스럽다는 데는 마음이 아픕니다.
그렇지만 아버님, 제 주위에만도 아들을 민주화의 성전에 바친 어머님, 아버님이 많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은 모두 다 아들의 원수를 갚고 한을 풀기 위해서 애국 민주화투쟁에 적극 참여하고 계십니다. 저는 고문당하다 죽은 제 선배, 후배들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아니 일본과 미국의 식민지 지배 아래서 조국의 자주독립,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숨져 간 수많은 애국지사들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그분 덕에 오늘의 이 나라가 있다고,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나라 위한 한길로 꿋꿋하게 나아가고 싶습니다.
1989. 4. 25. 서울에서
<‘반제동맹사건’으로 구속되어 재판에서 행한 모두 진술>
나는 어릴 때부터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고 배웠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내가 초등학교 6학년때 교실 앞에 걸린 청산리 전투의 그림을 보면서 거기에 그려져 있는 독립투사와 같이 나도 나라를 위해서 훌륭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는 애국자가 되기가 너무 쉽다. 독립기념관 건설이니 평화의 댐 건설이니 하는 데에 돈을 좀 낸다던가 해서 마치 자기가 애국자인양 설치고 있고, 심지어는 대공분실에서 나를 고문하던 놈도 자기가 애국자라고 했다. 내가 아니라고 했더니 그놈은 자꾸 애국자라고 우겼다. 이야말로 진짜 애국자, 애국 선열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독이다. 진짜 애국자는 누구인가? 진짜 애국하는 사람은 돈과 권력으로 애국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문제점이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이 고통받는가를 알고 이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걸 알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부분은 하루하루 고통스런 삶을 살고 있다. 그렇지만 한편에는 잘 사는 놈들도 있다. 지주, 매판자본가, 반동관료배 이런 자들이다.
내 생각은 이런 정도였다. 그런데 나는 작년에 진도라는 회사에 다니면서 좀 의식이 발전하였다. 지금까지 내가 알지 못했던 숨겨진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다녔던 진도라는 회사는 종업원이 600명이나 되고 일 많이 시키기로 유명한 회사였다. 그런데 1년에 한번씩은 일은 안하고 청소하는 날이 있다. 그날은 진도의 목숨을 떼었다, 붙였다 하는 미국 굴지의 외국인사가 오는 날이었던 것이다. 내가 진도에서 분명히 깨달았던 바, 그것은 지금까지 노동자를 착취하는 사람은 사장이라 생각했었는데 그 위에서 사장을 지배하는 놈이 또 있다는 것이었다. 미제국주의가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을 억압, 착취하는 원흉이다. 그래서 나는 애국하는 길이 바로 이렇게 나라를 망치는 미제와 그에 빌붙은 극소수의 매판 자본가놈들을 없애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애국투쟁을 했고 노동자와 함께 하려고 했다.
동지를 생각하며
당신은 진짜 노동자였습니다.
문재환(서울 동부지역 금속노조위원장)
동지는 어찌하여 한 많고 설움 많은 한 모퉁이에 이렇게 싸늘하게 누워 있습니까?
채 피지도 못한 스물 여섯의 젊음을 누가, 누가 이렇게 무참히도 꺾어버렸단 말입니까?
· · · · · · · · · ·
도대체 나라의 자주와 민주, 통일이 무엇이길래, 공장 노동자가 되는 길이 뭐가 그리 중요하길래 당신은 목숨까지도 송두리째 바친단 말입니까?
아! 어리석은 우리는 이제야 깨닫습니다. 동지가 이 세상에 태어나 사랑했던 수많은 것들 중에 당신이 가장 사랑했던 것이 바로 공장 노동자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들이면서 가장 천대받는 이 나라 노동자들.
허울좋은 고도성장과 알량한 선진조국의 환상 속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월세방 값에 한숨지으며, 먼지조차 빠져나갈 수 없는 캄캄한 작업장에서 기계에 손가락이 짤리고 언제 산업재해로 죽을지도 모르는 생지옥 같은 공장에서 한 시간을 뼈빠져라 일해도 돼지고기 한근 값도 안되며, 딸네미가 그렇게도 입고 싶어하는 꼬까옷 하나 마음놓고 못 사주고 천원짜리 싸구려 옷도 큰맘먹고 떨리는 손으로 겨우 사는 이땅의 일천만 노동자를 사랑하셨군요.
· · · · · · · · · ·
아! 위대하신 당신, 그래서 당신은 진짜 노동자입니다. 당신은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일천만 노동자의 동지인 것입니다.
동지여! 진짜 노동자, 영원한 노동자 조정식 동지여!
당신은 지금 죽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죽을 수는 있어도 물러설 수는 없다.
조정식 동지여!
이제 살아남은 우리 맹세하나니 동지의 뜻을 이어받아 살아있는 우리 목숨이 내것이 아니고 저임금, 장시간 노동, 산업재해가 추방되고 땀흘려 일하는 사람이 대우받고 이천오백만 노동자 모두가 모여서 함께 사는 참된 세상, 노동해방을 위하여 목숨 바칠 것을 맹세합니다.
88년 석방 후 89년에 영전기계에 선반공으로 취업한 동지는 힘들지만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생활을 더없이 좋아했다. 그러나 5월 24일 드릴링 작업중인 조정식 동지 뒤에서 선반공이 시간에 쫓겨 선반의 속도를 높이는 순간 공작물 균형을 위해 고정시켜 두었던 추(약 30㎏)가 튕겨나와 동지의 뒷머리를 강타, 병원으로 옮기던 중 운명하였다.
동지가 남긴 글
<편지 1>
아무리 되돌아보아도 저는 아직 아버님께 못난 아들입니다. 집안의 장남이면서도 아버님을 그 머나먼 땅에서 고생하시도록 만들고 가족들에게 본의 아니지만 온갖 슬픔과 고통을 주었던 점에서 저는 못난 아들입니다. 그렇다고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제가 걷고자 하는 길을 훌륭하게 걷고 있지도 못하다는 점에서 저는 더욱 못난 아들입니다. 부모님의 헌신적인 희생과 노력에도 최고학부의 교육을 받아 머릿속에 든 것은 많지만 실제 사회생활 속에서 제가 가장 훌륭하고 떳떳하다고 믿는 길을 헤쳐나가고 있지 못한 것이 부끄러운 현실입니다.
역사를 살펴보아도 저 보다도 훨씬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나라를 위해 힘써 일함으로써 후대의 귀감이 된 사람도 많건만 저는 아직 너무나 부족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불의에 굽히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그 어떤 시련과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도탄에 빠진 이 나라, 이 민족을 구하기 위해 굽히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만일 언젠가 제가 나라를 위해 조그마한 업적이라도 남긴다면 그것은 오직 아버님의 헌신적인 사랑과 희생의 결과라는 것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이야기 할 겁니다.
아버님 저는 제가 걷는 이 길이 아무리 옳고 떳떳한 길이라 할지라도 수많은 슬픔과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는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만이 겪어야 할 고통이라면 저는 아무리 커다란 고통이라 할지라도 기쁘게 맞을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 때문에 아버님, 어머님, 동생들이 겪는 고통 때문에 저는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더구나 미제국주의의 하수인격인 저 가증스러운 군사독재놈들이 의도적으로 가족들에게 귀찮게 하고 감시와 탄압의 마수를 뻗으면서 “당신 아들 때문에 그렇다”고 지껄여 댈 때는 저는 나라의 현실이 슬프기에 앞서 가족들이 어쨌든 저 때문에 고통스럽다는 데는 마음이 아픕니다.
그렇지만 아버님, 제 주위에만도 아들을 민주화의 성전에 바친 어머님, 아버님이 많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은 모두 다 아들의 원수를 갚고 한을 풀기 위해서 애국 민주화투쟁에 적극 참여하고 계십니다. 저는 고문당하다 죽은 제 선배, 후배들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아니 일본과 미국의 식민지 지배 아래서 조국의 자주독립,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숨져 간 수많은 애국지사들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그분 덕에 오늘의 이 나라가 있다고,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나라 위한 한길로 꿋꿋하게 나아가고 싶습니다.
1989. 4. 25. 서울에서
<‘반제동맹사건’으로 구속되어 재판에서 행한 모두 진술>
나는 어릴 때부터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고 배웠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내가 초등학교 6학년때 교실 앞에 걸린 청산리 전투의 그림을 보면서 거기에 그려져 있는 독립투사와 같이 나도 나라를 위해서 훌륭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는 애국자가 되기가 너무 쉽다. 독립기념관 건설이니 평화의 댐 건설이니 하는 데에 돈을 좀 낸다던가 해서 마치 자기가 애국자인양 설치고 있고, 심지어는 대공분실에서 나를 고문하던 놈도 자기가 애국자라고 했다. 내가 아니라고 했더니 그놈은 자꾸 애국자라고 우겼다. 이야말로 진짜 애국자, 애국 선열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독이다. 진짜 애국자는 누구인가? 진짜 애국하는 사람은 돈과 권력으로 애국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문제점이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이 고통받는가를 알고 이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걸 알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부분은 하루하루 고통스런 삶을 살고 있다. 그렇지만 한편에는 잘 사는 놈들도 있다. 지주, 매판자본가, 반동관료배 이런 자들이다.
내 생각은 이런 정도였다. 그런데 나는 작년에 진도라는 회사에 다니면서 좀 의식이 발전하였다. 지금까지 내가 알지 못했던 숨겨진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다녔던 진도라는 회사는 종업원이 600명이나 되고 일 많이 시키기로 유명한 회사였다. 그런데 1년에 한번씩은 일은 안하고 청소하는 날이 있다. 그날은 진도의 목숨을 떼었다, 붙였다 하는 미국 굴지의 외국인사가 오는 날이었던 것이다. 내가 진도에서 분명히 깨달았던 바, 그것은 지금까지 노동자를 착취하는 사람은 사장이라 생각했었는데 그 위에서 사장을 지배하는 놈이 또 있다는 것이었다. 미제국주의가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을 억압, 착취하는 원흉이다. 그래서 나는 애국하는 길이 바로 이렇게 나라를 망치는 미제와 그에 빌붙은 극소수의 매판 자본가놈들을 없애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애국투쟁을 했고 노동자와 함께 하려고 했다.
동지를 생각하며
당신은 진짜 노동자였습니다.
문재환(서울 동부지역 금속노조위원장)
동지는 어찌하여 한 많고 설움 많은 한 모퉁이에 이렇게 싸늘하게 누워 있습니까?
채 피지도 못한 스물 여섯의 젊음을 누가, 누가 이렇게 무참히도 꺾어버렸단 말입니까?
· · · · · · · · · ·
도대체 나라의 자주와 민주, 통일이 무엇이길래, 공장 노동자가 되는 길이 뭐가 그리 중요하길래 당신은 목숨까지도 송두리째 바친단 말입니까?
아! 어리석은 우리는 이제야 깨닫습니다. 동지가 이 세상에 태어나 사랑했던 수많은 것들 중에 당신이 가장 사랑했던 것이 바로 공장 노동자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들이면서 가장 천대받는 이 나라 노동자들.
허울좋은 고도성장과 알량한 선진조국의 환상 속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월세방 값에 한숨지으며, 먼지조차 빠져나갈 수 없는 캄캄한 작업장에서 기계에 손가락이 짤리고 언제 산업재해로 죽을지도 모르는 생지옥 같은 공장에서 한 시간을 뼈빠져라 일해도 돼지고기 한근 값도 안되며, 딸네미가 그렇게도 입고 싶어하는 꼬까옷 하나 마음놓고 못 사주고 천원짜리 싸구려 옷도 큰맘먹고 떨리는 손으로 겨우 사는 이땅의 일천만 노동자를 사랑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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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위대하신 당신, 그래서 당신은 진짜 노동자입니다. 당신은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일천만 노동자의 동지인 것입니다.
동지여! 진짜 노동자, 영원한 노동자 조정식 동지여!
당신은 지금 죽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죽을 수는 있어도 물러설 수는 없다.
조정식 동지여!
이제 살아남은 우리 맹세하나니 동지의 뜻을 이어받아 살아있는 우리 목숨이 내것이 아니고 저임금, 장시간 노동, 산업재해가 추방되고 땀흘려 일하는 사람이 대우받고 이천오백만 노동자 모두가 모여서 함께 사는 참된 세상, 노동해방을 위하여 목숨 바칠 것을 맹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