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기설열사 30주기 추모제
○ 일 시: 2021년 5월 9일(일) 12:00
○ 장 소: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
행사 정보
일요일
2021-05-09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
지도에서 보기
인물 정보
김기설(당시 26세)
1965년 경기도 파주 출생
1983년 인천 수도전기통신고 중퇴
1984년 대입검정고시 합격
1988년 성남 민주화청년운동연합 가입
1989년 성남 노동자의 집에서 상담간사로 활동
1991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본부 사회부장으로 활동
1991년 5월 8일 서강대 본관 옥상에서 “폭력살인 만행 노태우 정권 타도하자”고 외치며 분신한 후 투신
1983년 인천 수도전기통신고 중퇴
1984년 대입검정고시 합격
1988년 성남 민주화청년운동연합 가입
1989년 성남 노동자의 집에서 상담간사로 활동
1991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본부 사회부장으로 활동
1991년 5월 8일 서강대 본관 옥상에서 “폭력살인 만행 노태우 정권 타도하자”고 외치며 분신한 후 투신
동지가 운동에 접하게 된 것은 1988년 9월 성남민청련 창립대회에서 김근태씨의 강연을 듣고서부터이다. 동지는 즉석에서 성남민청련에 가입하여 활동을 시작하였고 성남민청련 노동분과 소속, 지역 노동운동 단체들을 지원 연대하는 사업에 열의를 갖고 참여하다 민청련이 역량부족으로 해체되면서 성남노동자의 집에서 교육상담 간사로 일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동지는 노동자의 생활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조광피혁 등에 입사했으나 성남 민청련에서의 활동이 드러나 쫓겨나곤 하였다. 항상 쾌활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으로 성실하고 힘있는 활동을 하던 동지는 동료들간에 인기있고 신뢰받던 동지였다고 한다.
91년 1월부터 전민련에서 사회부장으로 일하게 된 동지는 ‘속초 동우전문대사건’과 ‘원진레이온 사건’에 대한 조사활동을 열심히 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노태우정권의 반민주적, 반민중적, 반민족적 폭압을 새삼 인식하였다고 한다. 동지는 강경대 동지의 죽음 이후 범국민 대책회의에 참가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던 중 분신을 결행하였다. 그러나 노태우 정권은 동지의 여자친구와 여러 사람을 불법연행하여 밀실 강압수사를 통해 유서대필이라는 상식이하의 조작으로 그를 두 번 죽이는 파렴치한 짓을 서슴치 않았다. 또한 검찰의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희생자인 강기훈 당시 전민련 총무부장은 4년간의 실형을 살았다.
동지를 생각하며
동창생들 기억 속의 김기설 동지는 확실한 성격, 원만한 친구관계를 가진 모범생으로 남아있다. 어머니를 4살 때 여의었지만 새어머니를 친어머니처럼 따르며 그늘 없는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러나 친구들은 문득문득 그와의 대화속에서 사회의 모순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그의 시각을 감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스스로 그만둔 뒤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중 동지는 군대에 입대한다.
동지는 88년 9월 3일 성남 민청련 창립대회에 나붙은 김근태씨 강연 포스터를 보고 그곳에 참석, 바로 그날 민청련 회원이 되었다. 89년 성남 노동자의 집 상담간사로 들어가면서 그는 새롭게 이 땅의 노동현실에 시선을 돌리게 된다. 90년 조광피혁에 입사, 동료들간에 인기있고 신뢰받던 동지였다. 외아들이라 장가를 일찍 가야 한다며 여자친구 소개해 달라고 익살을 떨던 모습, 태어나서 부모님께 효도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눈물이 고이던 그때의 그를 기억하며 동지들은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90년 11월부터 동지는 전민련에서 일하게 된다. 궂은 일, 드러나지 않는 일을 도맡아 했던 동지는 속초 동우전문대 사건이 터지자 누구보다 먼저 현장에 달려가 외롭게 투쟁하던 학생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노동자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신뢰를 갖고 있던 동지는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곁에서 그들의 아픔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며 헌신적으로 그 일에 뛰어들어 원진레이온 사태가 사회쟁점화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원진 피해 노동자들은 분신하기 하루전인 7일 노조를 방문하여 걱정을 함께하던 김기설 동지를 떠올리며 갑자기 접한 비보가 믿어지지 않는다고 고개를 떨구었다.
동지가 남긴 글
<유 서 1>
단순하게 변혁운동의 도화선이 되고자 함이 아닙니다.
동지의 이정표가 되고자 함은 더욱이 아닙니다.
아름답고 맑은 현실과는 다르게 슬프게 아프게 살아가는
이땅의 민중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하는 고민속에서 얻은 결론이겠지요.
노태우정권은 퇴진해야 합니다.
민자당은 해체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슬픔과 아픔만을 안겨주는 지금의 정권은 꼭 타도하여야 합니다.
더 이상 우리에게 죽음과 아픔을 안겨주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죄악스러운 행위만을 일삼아온 노태우정권을 향해 전면전을 선포하고 민중 권력 쟁취를 위한 행진을 위해 모두가 하나 되어야 합니다.
<유 서 2>
아버지, 어머니-
어버이날입니다.
오늘 이 행위를 일삼겠다는 생각을 하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지껏 한 번도 아버지 어머니에게 효도라는 것을 해보지 못했지요.
하지만 이제 기설이가 아버지, 어머니의 아들이 아닌 조국의 아들이 됨을 선포하면서
마지막 효도를 하려 합니다.
모든 문제는 대책위 사무실에 위임하세요.
전민련, 선택이형, 서준석 인천위원장님께 위임하세요.
제 목숨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선배님들입니다.
기 설
91년 1월부터 전민련에서 사회부장으로 일하게 된 동지는 ‘속초 동우전문대사건’과 ‘원진레이온 사건’에 대한 조사활동을 열심히 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노태우정권의 반민주적, 반민중적, 반민족적 폭압을 새삼 인식하였다고 한다. 동지는 강경대 동지의 죽음 이후 범국민 대책회의에 참가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던 중 분신을 결행하였다. 그러나 노태우 정권은 동지의 여자친구와 여러 사람을 불법연행하여 밀실 강압수사를 통해 유서대필이라는 상식이하의 조작으로 그를 두 번 죽이는 파렴치한 짓을 서슴치 않았다. 또한 검찰의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희생자인 강기훈 당시 전민련 총무부장은 4년간의 실형을 살았다.
동지를 생각하며
동창생들 기억 속의 김기설 동지는 확실한 성격, 원만한 친구관계를 가진 모범생으로 남아있다. 어머니를 4살 때 여의었지만 새어머니를 친어머니처럼 따르며 그늘 없는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러나 친구들은 문득문득 그와의 대화속에서 사회의 모순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그의 시각을 감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스스로 그만둔 뒤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중 동지는 군대에 입대한다.
동지는 88년 9월 3일 성남 민청련 창립대회에 나붙은 김근태씨 강연 포스터를 보고 그곳에 참석, 바로 그날 민청련 회원이 되었다. 89년 성남 노동자의 집 상담간사로 들어가면서 그는 새롭게 이 땅의 노동현실에 시선을 돌리게 된다. 90년 조광피혁에 입사, 동료들간에 인기있고 신뢰받던 동지였다. 외아들이라 장가를 일찍 가야 한다며 여자친구 소개해 달라고 익살을 떨던 모습, 태어나서 부모님께 효도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눈물이 고이던 그때의 그를 기억하며 동지들은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90년 11월부터 동지는 전민련에서 일하게 된다. 궂은 일, 드러나지 않는 일을 도맡아 했던 동지는 속초 동우전문대 사건이 터지자 누구보다 먼저 현장에 달려가 외롭게 투쟁하던 학생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노동자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신뢰를 갖고 있던 동지는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곁에서 그들의 아픔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며 헌신적으로 그 일에 뛰어들어 원진레이온 사태가 사회쟁점화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원진 피해 노동자들은 분신하기 하루전인 7일 노조를 방문하여 걱정을 함께하던 김기설 동지를 떠올리며 갑자기 접한 비보가 믿어지지 않는다고 고개를 떨구었다.
동지가 남긴 글
<유 서 1>
단순하게 변혁운동의 도화선이 되고자 함이 아닙니다.
동지의 이정표가 되고자 함은 더욱이 아닙니다.
아름답고 맑은 현실과는 다르게 슬프게 아프게 살아가는
이땅의 민중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하는 고민속에서 얻은 결론이겠지요.
노태우정권은 퇴진해야 합니다.
민자당은 해체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슬픔과 아픔만을 안겨주는 지금의 정권은 꼭 타도하여야 합니다.
더 이상 우리에게 죽음과 아픔을 안겨주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죄악스러운 행위만을 일삼아온 노태우정권을 향해 전면전을 선포하고 민중 권력 쟁취를 위한 행진을 위해 모두가 하나 되어야 합니다.
<유 서 2>
아버지, 어머니-
어버이날입니다.
오늘 이 행위를 일삼겠다는 생각을 하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지껏 한 번도 아버지 어머니에게 효도라는 것을 해보지 못했지요.
하지만 이제 기설이가 아버지, 어머니의 아들이 아닌 조국의 아들이 됨을 선포하면서
마지막 효도를 하려 합니다.
모든 문제는 대책위 사무실에 위임하세요.
전민련, 선택이형, 서준석 인천위원장님께 위임하세요.
제 목숨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선배님들입니다.
기 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