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최윤범동지 33주기 추모제
○ 일 시: 2021년 4월 30일(금) 12:00
○ 장 소: 충북 음성군 대지공원묘
행사 정보
금요일
2021-04-30
충북 음성군 대지공원묘
지도에서 보기
인물 정보
최윤범(당시 28세)
1960년 서울 출생
1976년 9월 서울 장충중학교 졸업. 잉글랜드사, 에펠사, 시엔나사 입사
1988년 2월 26일 고려 피혁 노조위원장 선출
1988년 4월 24일 해고 징계에 맞서 작업거부 철야농성
1988년 4월 25일 관리자들과 몸싸움 중 분신
1988년 4월 30일 한강성심병원에서 1시경 운명
1976년 9월 서울 장충중학교 졸업. 잉글랜드사, 에펠사, 시엔나사 입사
1988년 2월 26일 고려 피혁 노조위원장 선출
1988년 4월 24일 해고 징계에 맞서 작업거부 철야농성
1988년 4월 25일 관리자들과 몸싸움 중 분신
1988년 4월 30일 한강성심병원에서 1시경 운명
고려피혁 성남공장은 200여 노동자가 슈발리에 구두를 생산하는 대우계열 중소기업으로 고려로 상호를 변경하였으며,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더 이상 자본가의 노예일 수 없다고 생각한 최윤범 동지를 중심으로 민주노조가 건설됐다. 그러나 본조의 공작에 의해 성남공장은 지부가 되었고, 지부장 선거과정에서 회사측과 어용노조측에 의해 민주노조측이 패배하자 회사는 민주노조에 대해 탄압을 시작했다.
부서이동과 해고, 이에 반대하며 농성에 들어가자 회사측과 어용노조측은 민주노조측을 회사밖으로 밀어냈고 민주노조측은 회사밖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다. 농성 3일째 노동부가 중재를 한답시고 회사측과 협상에 들어갔으나 회사측은 그사이 물품을 빼돌리려 했고, 이에 항의하며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동지는 온몸에 신나를 붓고 분신, 산화하였다.
동지를 생각하며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아름이와 다운이의 아빠이고 다운이 엄마의 남편으로서 행복한 가정을 이끌어 나가던 젊고 미남인 아저씨였다.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고 자기 맡은바 책임을 다하고 성실한 생활을 하시며 운동을 좋아하셨다. 최윤범동지는 민주노조를 건설하기 위해 처음 태동부터 많은 애를 써오셨다. 그러나 같은 동료인 2명이 배신을 하여 민주노조 만드는 일을 패배로 돌리고 말았다.
최윤범 동지는 모든 힘든 일을 자기가 맡아서 하려 하고 모든 일을 책임감있게 해왔다. 언제나 우리에게 이르길 웃음을 잃지말고 항상 재미있게 생각을 하라고 하셨다. 최윤범 동지는 조합원들과 싸울 필요도 없고, 관리자와 싸워야 하고 어용노조측 위원장과 싸워야 한다고 하셨다. 단결된 힘만이 우리의 살길이다라고 하셨다.
분향소에 들어가 아저씨의 사진을 보고 있자면 지금도 우리의 옆에 살아서 우리에게 장난을 걸고 웃으시며 우리들을 재미있게 해주시는 것 같다. 사진을 보기가 지금은 너무나도 힘이 들다. 최윤범 동지의 모든 행동 하나 하나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추모시
이 식인종들아, 흡혈귀에 개만도 못한 놈들아!
이제 돈도 노조도 다 소용없다.
우리 최윤범 형제를 살려내라.
살려내라, 살려내라, 살려내라,
산다는 것이 무섭기만 하다.
이런 세상에서는 정말 살기 싫다.
형제들이 얼마나 더 죽어가야 하고
언제까지 노예처럼 착취당할 것이냐
보아라, 이제 우리가 일어선다.
일꾼들의 억센 어깨를 걸고 함께 나아간다.
이 땅의 모든 어용과 독재와
악덕자본가를 응징하고 우리들의 손으로
법과 자유와 평등을 쟁취하여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되는 세상,
노동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해방세상에서 살고 싶다.
이대로는 절대로 살아갈 수 없다.
최윤범 형제를 두 번 죽이지 말라.
처절하게 아름답고 깨끗한 동지의 넋을
다시는 더럽힐 수 없다.
최윤범을 살려내라!
부서이동과 해고, 이에 반대하며 농성에 들어가자 회사측과 어용노조측은 민주노조측을 회사밖으로 밀어냈고 민주노조측은 회사밖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다. 농성 3일째 노동부가 중재를 한답시고 회사측과 협상에 들어갔으나 회사측은 그사이 물품을 빼돌리려 했고, 이에 항의하며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동지는 온몸에 신나를 붓고 분신, 산화하였다.
동지를 생각하며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아름이와 다운이의 아빠이고 다운이 엄마의 남편으로서 행복한 가정을 이끌어 나가던 젊고 미남인 아저씨였다.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고 자기 맡은바 책임을 다하고 성실한 생활을 하시며 운동을 좋아하셨다. 최윤범동지는 민주노조를 건설하기 위해 처음 태동부터 많은 애를 써오셨다. 그러나 같은 동료인 2명이 배신을 하여 민주노조 만드는 일을 패배로 돌리고 말았다.
최윤범 동지는 모든 힘든 일을 자기가 맡아서 하려 하고 모든 일을 책임감있게 해왔다. 언제나 우리에게 이르길 웃음을 잃지말고 항상 재미있게 생각을 하라고 하셨다. 최윤범 동지는 조합원들과 싸울 필요도 없고, 관리자와 싸워야 하고 어용노조측 위원장과 싸워야 한다고 하셨다. 단결된 힘만이 우리의 살길이다라고 하셨다.
분향소에 들어가 아저씨의 사진을 보고 있자면 지금도 우리의 옆에 살아서 우리에게 장난을 걸고 웃으시며 우리들을 재미있게 해주시는 것 같다. 사진을 보기가 지금은 너무나도 힘이 들다. 최윤범 동지의 모든 행동 하나 하나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추모시
이 식인종들아, 흡혈귀에 개만도 못한 놈들아!
이제 돈도 노조도 다 소용없다.
우리 최윤범 형제를 살려내라.
살려내라, 살려내라, 살려내라,
산다는 것이 무섭기만 하다.
이런 세상에서는 정말 살기 싫다.
형제들이 얼마나 더 죽어가야 하고
언제까지 노예처럼 착취당할 것이냐
보아라, 이제 우리가 일어선다.
일꾼들의 억센 어깨를 걸고 함께 나아간다.
이 땅의 모든 어용과 독재와
악덕자본가를 응징하고 우리들의 손으로
법과 자유와 평등을 쟁취하여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되는 세상,
노동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해방세상에서 살고 싶다.
이대로는 절대로 살아갈 수 없다.
최윤범 형제를 두 번 죽이지 말라.
처절하게 아름답고 깨끗한 동지의 넋을
다시는 더럽힐 수 없다.
최윤범을 살려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