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래전열사 32주기 추모제
○ 일 시: 2020년 6월 6일(토) 12:00
○ 장 소: 마석 민족민주열사묘역
행사 정보
인물 정보
박래전(당시 25세)
1982년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입학
1987년 12월 민중후보 선거대책위 선전국장 역임
1988년 3월 민중정당결성 학생 추진위 선전국장 역임
1988년 3월 숭실대학교 제20대 인문대학 학생회장 당선
1988년 6월 4일 숭실대학교 학생회관 옥상에서 “광주는 살아있다”, “청년학도여 역사가 부른다. 군사파쇼 타도하
자”라고 외친 후 온몸에 신나를 뿌리고 불을 붙인 후 분신
1988년 6월 5일 전신80% 3도 화상으로 한강성심병원에서 몹시 고통스러워 함
1988년 6월 6일 12시 23분 운명
80년, 누이의 가슴팍을 도려내고 죄없는 막내동생을 난자한 학살원흉이 대통령으로, 국회의원으로 권좌에 앉아, 그 피묻은 손으로 ‘민주’를 떠드는 비극적인 땅! ‘명예회복-보상’ 운운하며 또다시 광주민중항쟁을 능욕하는 학살원흉 노태우와 ‘진상조사는 하되 처벌은 원치 않는다’는 보수야당이 피의 광주를 놓고 벌이는 정치야합.
88올림픽의 휘황찬란한 빵빠레 속에 “환경미화”란 미명으로 이땅 민중들의 생존권은 무참히 짓밟히고 있었다.
민중해방의 신새벽을 앞당기기 위해 싸웠던 박래전동지는 제 한몸 불살라 학살원흉에게 민주의 불벼락을 내렸던 것이다.
“저의 뒤로 저와 같은 죽음이 뒤따라서는 안됩니다.”라는 절규는 우리 모두의 투쟁을 촉구하며 88년 6월의 불꽃으로 타올랐다.
성명서
박래전 열사의 위대한 투쟁앞에서
우리는 또다시 박래전 열사의 장엄한 죽음, 그 위대한 투쟁 앞에 서서 고개를 떨굽니다.
지난달에는 조성만 열사와 최덕수 열사의 참혹한 울부짖음 앞에서 몸둘 바를 몰랐었는데 이제 또다시
박 열사의 벅찬 죽음의 채찍앞에 서다니...... 그러나, 이들 열사들의 희생은 그분들이 울부짖은대로
광주학살 원흉의 색출처단과 군정을 끝장내지 않고서는 결코 꺼질 수 없는 불길입니다.
왜냐하면 이분 열사들은 자기 한몸에 불을 지른 것이 아니라 바로 광주학살 원흉과 노태우 군사독재에 대고 지른 불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이들 열사들의 위대한 죽음앞에서 슬퍼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분들의 뜻을 받들어 광주는 살아있으니 끝까지 싸워야하며 그 싸움은 곧 민중이 주도하는 해방투쟁으로 이어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이제 박래전 열사의 끄실린 몸은 비록 땅에 묻을수 밖에 없지만 그러나 그뜻은 결코 땅에 묻을 수는 없습니다.
광주의 투쟁을 오늘에 이어 학살원흉을 처단하고 외세를 몰아내고 군정을 끝장내야 합니다.
분단올림픽을 반대하고 공동올림픽을 쟁취해야하며 6.10남북학생회담을 성취해야 하며 모든 양심적 민족세력은 이 위대한 박래전 열사의 죽음을 계기로 올바른 민중운동으로 단합통일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민족의 해방통일을 하루 빨리 쟁취하여야 합니다.
아, 박래전 열사 꽂다운 젊은 나이에 먼저 가시다니.... 그러나 우리들은 그와 함께 일어서야 합니다.
참다운 나라사랑, 인간답게 사는 길은 과연 무엇이던가.
박래전 열사에게 묻고 물으며 우리들도 따라 나서야 합니다.
그분이 밝힌 그 불길, 그 발길 따라 브르트며 엎어지며 다시 서는 자만이 굽이치는 해방통일의 역사와 일치되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 박래전열사! <백기완 장례위원장>
민중의 새나라로 돌아오소서
그대, 목숨불로 타오르던 곳에서 떠나 지금은 어디에 계십니까
피절은 반도의 산천 깊숙히 서러운 혼들이 떠도는 맨 끝자리.
그 이상 아무도 서지 않아야 될 그곳에 서 계시더이까
고향땅 때골산 너머 가득한 어둠 걷워내고
이 땅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눈 못감고 남아있는 순결한 님이시여
단 한 번도 무릎 꺽이지 않은 한결같은 열정으로 살아온
스물 여섯해 당신의 젊은 하루 하루 남모르는 고통 속에서
너무나 외롭게 걸어온 투쟁의 끝길에 한 송이 꽃보다는 우리의 투쟁을 바치렵니다.
당신의 비통한 죽음 앞에서 통곡으로 풀어내는 설움을 애써 삼키며 이제 눈을 들어 전진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매번 “광주는 살아 있다 끝까지 투쟁하라” “물러서지마라 우리는 승리한다”고
비겁과 안일과 무감각의 늪에서 아집과 독선의 분열선상에 주저앉은 우리에게
언제나 매서운 채찍질을 내리소서 머지않는 날 민중들 총칼들고 일어나
파쇼와 미제의 폭압을 뚫고 노동해방·농민해방·인간해방 만세 소리에 묻히는 그때는
더덩실 춤추며 돌아오소서 사무친 원한으로 서 계신 그 자리에서 민중의 새나라로 돌아오소서
유고시
冬 花
당신들이 제게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아는 까닭에 저는 당신들의 코끝이나 간지르는 가을꽃일 수 없습니다
제게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아는 까닭에 저는 풍성한 가을에도 뜨거운 여름에도 따사로운 봄에도 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떠나지 못하는 건 그래도 꽃을 피워야 하는 건 내 발의 사슬 때문이지요
겨울꽃이 되어버린 지금 피기도 전에 시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한 향기를 위해 내 이름은 冬花라 합니다
세찬 눈보라만이 몰아치는 당신들의 나라에서 그래도 몸을 비틀며 피어나는 꽃입니다
<冬花는 생전 박래전 열사의 필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