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준배열사 21주기 추모제
○ 일 시: 2018년 9월 15일(토) 14:00
○ 장 소: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
행사 정보
토요일
2018-09-15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
지도에서 보기
인물 정보
김준배(당시 27세)
1970년 전남 장흥 출생
1989년 광주대학교 금융학과 입학
1992년 광주대학교 투쟁국장
1993년 남총련 투쟁국원
1994년 광주총협 투쟁국장
1995년 남총련 투쟁국장
1997년 한총련 투쟁국장
1997년 9월 16일 운명
제 97차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 인정자
1989년 광주대학교 금융학과 입학
1992년 광주대학교 투쟁국장
1993년 남총련 투쟁국원
1994년 광주총협 투쟁국장
1995년 남총련 투쟁국장
1997년 한총련 투쟁국장
1997년 9월 16일 운명
제 97차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 인정자
동지는 ’89년 광주대학교 금융학과에 입학한 후 학생운동을 시작하여, ’95년에는 한총련 투쟁국원
으로 활동하면서 ‘5.18 특별법 제정을 위한 광주학살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투쟁을 주도하였다.
’97년에는 제5기 한총련 투쟁국장으로 활동하면서 노동악법철폐, 김영삼 정권의 대선자금 공개,
교육재정 확보를 위한 100만 학도 총투표를 통한 총궐기, 한보비리 사건에 대한 책임자 처벌, 노
동법과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 규탄 등의 투쟁을 기획하고 주도하였다. ’97년 한총련 투쟁국장으로
지명수배를 받아 은신 중, 9월 15일 전남도경 형사기동대의 검거를 피하다가 경찰검거작전 중 광
주 소재 아파트 화단 앞에서 운명하였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전남지방경찰청 형사기동대 소속 경장 ○○○는 경사 특진을 위
해 동지의 후배 ○○○를 프락치로 고용, 1,500만원 상당의 금액과 향응을 제공하였고, 이에 후배
○○○는 자신의 집으로 동지를 유인하였다. 또한 ○○○검사는 ○○○의 프락치 활동을 보호하
기 위하여 범인은닉죄로 구속하는 등 법원을 기망한 직권남용 행위와, 경비실 부근에 있던 전남경
찰청 형사기동대 ○○○은 화단에 떨어진 동지를 발견하고 “여기 있다”고 외치면서 넘어져 있는
동지를 여러 차례 발로 밟고 소지하고 있던 몽둥이로 가격하여 죽였음을 밝혀냈다.
경찰은 이후 목격자를 확인하고서도 사건을 은폐, 축소하기 위해 조사하지 않았고, 또한 동지가 3
층까지 내려온 흔적을 발견하고도 허위로 기재, 서류를 조작하였다. 당시의 한총련에 대한 마녀사
냥이 동지를 죽음으로 내 몬 것이다.
광주대 재학시절인 93년부터 수배를 받아오던 한총련 투쟁국장 김준배 동지가 경찰의 과잉검저 작전으로 인해 97년 9월 15일 밤에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발표에 따르면 김동지는 학교 후배 집인 광주시 청암아파트 1308호에서 은신해 있던 도중, 15일 밤 11시 50분경 김동지를 연행하기 위해 전남도경찰청 보안수사대와 경찰청 기동수사대 형사 24여명이 들이닥치자 13층 높이에서 케이블선을 타고 탈출하다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아파트 주민의 신고로 119구급차에 실려 전남대 병원으로 후송돼 심장심폐 소생수술을 받았으나 다음날인 16일 새벽에 끝내 사망했다. 이에 검찰은 사건의 조기종결 방침에 따라 16일 오전 10시경 경황이 없을 부모님에게서 부검 합의서를 받아내고 바로 부검을 실시했다. 경찰은 눈부위의 멍자국과 발가락 3개 골절, 간과 폐 등의 파열로 인한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고 부검 결과를 발표했다. 한편 사망한 장소와 검찰의 부검 결과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으며 경찰의 과잉진압이 사건을 불러일으켰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우선 추락한 지점에는 13층 높이에서 떨어졌다는 별다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고, 높은 곳에서 추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부검에서 나타난 것처럼 외상이 경미한 상처 밖에 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욱이 경찰은 13층 높이에서 수배학생을 잡기위해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하는 경찰의 기본수칙마저 지키지 못해 김동지의 사망을 방조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김동지의 구타에 의한 사망이냐, 추락사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김군의 죽음은 지난 몇달동안 사회분위기를 휩쓸며 진행되어온 한총련 와해, 말살 책동으로 대변되는 공안탄압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인권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합법적인 절차과정을 무시한 경찰의 폭력적인 과잉검거작전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의 정권은 학생들이 직접선거에 의해 꼽은 한총련을 이적단체라 규정짓고 각 대학의 총학생회장, 단대회장, 간부들에게 탈퇴할 것을 강요하고 했다. 특히 형사기동대와 보안수사대, 국군기무사까지 동원한 시국사범의 무자비한 연행과 오로지 특진과 포상만을 올리기에 혈안돼 있는 경찰의 태도도 비판받음이 마땅하다. 또한 경찰은 사람을 돈으로 매수하여 프락치 활동을 강요해 왔고, 총기까지 동원하여 학생들을 연행해 가는 등 상식을 벗어난 무분별한 검거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김군의 죽음을 부른 책임자의 엄중한 처벌과 사인에 대한 진상규명은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에서 무고하게 희생당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바로 잡힐 수 있을 것이다.
유고글
일 기
93년 1월21일 새벽 2시까지 책을 읽었다. 설연휴를 잘 계획하고 실행해야 겠다는 다짐을 했다. 다른 동지들은 모두 집으로 갔다. 나는 금년 설에도 집에 가지 못할 것 같다. 집안에 난리가 난 것 같다. 큰아버지께서는 전화를 받고 끝내 눈물을 흘리셨다. 왠지 죄스러운 마음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사면복권 수배자 해제 문제를 들고 이리저리 소식을 알아봤나 보다. 부모님들이 얼마나 걱정하실까? 금년 설은 아버지에게 가슴아픈, 적적하실 설이 될 것 같다. 죄송스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큰 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식들이 없는 설을 보내며, 부모님께선 지금쯤 눈물을 흘리고 계시지 않을까? 그럴 것이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야 할 길이기에 저는 죽어도 갈 것입니다. 집에서는 군대문제 수배문제로 자식 걱정을 너무 많이 하고 계실텐데. 그런만큼 나 준배는 내 하루하루의 삶에 부합되는 모든 문제를 한별전사의 투혼으로 해쳐 나갈 것이다. 하루하루의 삶에 내 모든 청춘을 걸고 하루하루의 일상 생활속에서 계획하고 실천하는 한별전사가 되리라. 부모님의 고통이 이땅 기층 민중의 피지배계층들의 고통이오. 부모님의 삶이 처절하고 슬플지라도 거기에 위안을 주며 견결한 혁명가로 자식으로 4천만 애국민중의 자식된 삶을 살아가리라. 부모님 오늘 하루도 자식은 수배자로서의 몸이지만 아버지 어머니 누나들 동생 모든 민중을 생각하며 열심히 살았던 하루였습니다. 올해에도 몸건강하시고 새해 복많이 쟁취하십시오! 항상 부모님의 아들 준배는 열심히 살겠습니다. 너무 심려 마시고 꼭 건강하십시오. 그날은 꼭 올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존경합니다. 선희누나 미희누나 정배 모든 식구들을 사랑합니다. 설, 신년 연휴 잘보내고 1년동안 모든 일에 열심히.정배야! 군대 생활 잘하고 우리 열심히 살아가자.
추모글
편 지
형 하늘이 너무나 푸르는 날 휴가라는 설레임보다 서글픈 마음이 드는 이유는 뭘까 형 처음보았을 때. 처음 중앙에 올라와 제자리 찾지 못하고 겉도는 모습에 약간의 실망감도 있었지만 투쟁속에서 보여준 모습이 너무나 당당해 보기 좋았어요. 93년 전.노 체포결사대를이끌고 연희동 진격투쟁속에서 보여준 형의 모습을 대선패배후 좌절해있던 우리에게 승리의 신심을 심어주었어요. 형 올해 초에 휴가나왔을 때 가을에 다시 만나서 술한잔 하자는 말이 영원히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되고 말았어요. 형 막상왔지만 용기가없어 형 얼굴을 아직까지 볼수 없소. 하지만 언젠가 당당한 모습으로 볼 수있을꺼야. 바라만 보아도 힘이 생겼는데 하지만 언제까지나 내가슴속에 함께 할꺼라 믿어 얼마남지 않은 군대생활 다시 처음처럼 투쟁할 수 있는 멋진놈이 될게 형 나 믿지 나도 형 믿어 날씨가 너무 쌀쌀해 가을 분위기가 너무 멋있는 형 첫눈이 내리면 볼 수있겠지...
으로 활동하면서 ‘5.18 특별법 제정을 위한 광주학살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투쟁을 주도하였다.
’97년에는 제5기 한총련 투쟁국장으로 활동하면서 노동악법철폐, 김영삼 정권의 대선자금 공개,
교육재정 확보를 위한 100만 학도 총투표를 통한 총궐기, 한보비리 사건에 대한 책임자 처벌, 노
동법과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 규탄 등의 투쟁을 기획하고 주도하였다. ’97년 한총련 투쟁국장으로
지명수배를 받아 은신 중, 9월 15일 전남도경 형사기동대의 검거를 피하다가 경찰검거작전 중 광
주 소재 아파트 화단 앞에서 운명하였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전남지방경찰청 형사기동대 소속 경장 ○○○는 경사 특진을 위
해 동지의 후배 ○○○를 프락치로 고용, 1,500만원 상당의 금액과 향응을 제공하였고, 이에 후배
○○○는 자신의 집으로 동지를 유인하였다. 또한 ○○○검사는 ○○○의 프락치 활동을 보호하
기 위하여 범인은닉죄로 구속하는 등 법원을 기망한 직권남용 행위와, 경비실 부근에 있던 전남경
찰청 형사기동대 ○○○은 화단에 떨어진 동지를 발견하고 “여기 있다”고 외치면서 넘어져 있는
동지를 여러 차례 발로 밟고 소지하고 있던 몽둥이로 가격하여 죽였음을 밝혀냈다.
경찰은 이후 목격자를 확인하고서도 사건을 은폐, 축소하기 위해 조사하지 않았고, 또한 동지가 3
층까지 내려온 흔적을 발견하고도 허위로 기재, 서류를 조작하였다. 당시의 한총련에 대한 마녀사
냥이 동지를 죽음으로 내 몬 것이다.
광주대 재학시절인 93년부터 수배를 받아오던 한총련 투쟁국장 김준배 동지가 경찰의 과잉검저 작전으로 인해 97년 9월 15일 밤에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발표에 따르면 김동지는 학교 후배 집인 광주시 청암아파트 1308호에서 은신해 있던 도중, 15일 밤 11시 50분경 김동지를 연행하기 위해 전남도경찰청 보안수사대와 경찰청 기동수사대 형사 24여명이 들이닥치자 13층 높이에서 케이블선을 타고 탈출하다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아파트 주민의 신고로 119구급차에 실려 전남대 병원으로 후송돼 심장심폐 소생수술을 받았으나 다음날인 16일 새벽에 끝내 사망했다. 이에 검찰은 사건의 조기종결 방침에 따라 16일 오전 10시경 경황이 없을 부모님에게서 부검 합의서를 받아내고 바로 부검을 실시했다. 경찰은 눈부위의 멍자국과 발가락 3개 골절, 간과 폐 등의 파열로 인한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고 부검 결과를 발표했다. 한편 사망한 장소와 검찰의 부검 결과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으며 경찰의 과잉진압이 사건을 불러일으켰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우선 추락한 지점에는 13층 높이에서 떨어졌다는 별다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고, 높은 곳에서 추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부검에서 나타난 것처럼 외상이 경미한 상처 밖에 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욱이 경찰은 13층 높이에서 수배학생을 잡기위해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하는 경찰의 기본수칙마저 지키지 못해 김동지의 사망을 방조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김동지의 구타에 의한 사망이냐, 추락사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김군의 죽음은 지난 몇달동안 사회분위기를 휩쓸며 진행되어온 한총련 와해, 말살 책동으로 대변되는 공안탄압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인권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합법적인 절차과정을 무시한 경찰의 폭력적인 과잉검거작전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의 정권은 학생들이 직접선거에 의해 꼽은 한총련을 이적단체라 규정짓고 각 대학의 총학생회장, 단대회장, 간부들에게 탈퇴할 것을 강요하고 했다. 특히 형사기동대와 보안수사대, 국군기무사까지 동원한 시국사범의 무자비한 연행과 오로지 특진과 포상만을 올리기에 혈안돼 있는 경찰의 태도도 비판받음이 마땅하다. 또한 경찰은 사람을 돈으로 매수하여 프락치 활동을 강요해 왔고, 총기까지 동원하여 학생들을 연행해 가는 등 상식을 벗어난 무분별한 검거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김군의 죽음을 부른 책임자의 엄중한 처벌과 사인에 대한 진상규명은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에서 무고하게 희생당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바로 잡힐 수 있을 것이다.
유고글
일 기
93년 1월21일 새벽 2시까지 책을 읽었다. 설연휴를 잘 계획하고 실행해야 겠다는 다짐을 했다. 다른 동지들은 모두 집으로 갔다. 나는 금년 설에도 집에 가지 못할 것 같다. 집안에 난리가 난 것 같다. 큰아버지께서는 전화를 받고 끝내 눈물을 흘리셨다. 왠지 죄스러운 마음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사면복권 수배자 해제 문제를 들고 이리저리 소식을 알아봤나 보다. 부모님들이 얼마나 걱정하실까? 금년 설은 아버지에게 가슴아픈, 적적하실 설이 될 것 같다. 죄송스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큰 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식들이 없는 설을 보내며, 부모님께선 지금쯤 눈물을 흘리고 계시지 않을까? 그럴 것이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야 할 길이기에 저는 죽어도 갈 것입니다. 집에서는 군대문제 수배문제로 자식 걱정을 너무 많이 하고 계실텐데. 그런만큼 나 준배는 내 하루하루의 삶에 부합되는 모든 문제를 한별전사의 투혼으로 해쳐 나갈 것이다. 하루하루의 삶에 내 모든 청춘을 걸고 하루하루의 일상 생활속에서 계획하고 실천하는 한별전사가 되리라. 부모님의 고통이 이땅 기층 민중의 피지배계층들의 고통이오. 부모님의 삶이 처절하고 슬플지라도 거기에 위안을 주며 견결한 혁명가로 자식으로 4천만 애국민중의 자식된 삶을 살아가리라. 부모님 오늘 하루도 자식은 수배자로서의 몸이지만 아버지 어머니 누나들 동생 모든 민중을 생각하며 열심히 살았던 하루였습니다. 올해에도 몸건강하시고 새해 복많이 쟁취하십시오! 항상 부모님의 아들 준배는 열심히 살겠습니다. 너무 심려 마시고 꼭 건강하십시오. 그날은 꼭 올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존경합니다. 선희누나 미희누나 정배 모든 식구들을 사랑합니다. 설, 신년 연휴 잘보내고 1년동안 모든 일에 열심히.정배야! 군대 생활 잘하고 우리 열심히 살아가자.
추모글
편 지
형 하늘이 너무나 푸르는 날 휴가라는 설레임보다 서글픈 마음이 드는 이유는 뭘까 형 처음보았을 때. 처음 중앙에 올라와 제자리 찾지 못하고 겉도는 모습에 약간의 실망감도 있었지만 투쟁속에서 보여준 모습이 너무나 당당해 보기 좋았어요. 93년 전.노 체포결사대를이끌고 연희동 진격투쟁속에서 보여준 형의 모습을 대선패배후 좌절해있던 우리에게 승리의 신심을 심어주었어요. 형 올해 초에 휴가나왔을 때 가을에 다시 만나서 술한잔 하자는 말이 영원히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되고 말았어요. 형 막상왔지만 용기가없어 형 얼굴을 아직까지 볼수 없소. 하지만 언젠가 당당한 모습으로 볼 수있을꺼야. 바라만 보아도 힘이 생겼는데 하지만 언제까지나 내가슴속에 함께 할꺼라 믿어 얼마남지 않은 군대생활 다시 처음처럼 투쟁할 수 있는 멋진놈이 될게 형 나 믿지 나도 형 믿어 날씨가 너무 쌀쌀해 가을 분위기가 너무 멋있는 형 첫눈이 내리면 볼 수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