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성호열사 28주기 추모제
○ 일 시: 2018년 9월 19일(수) 19:00 (노동열사합동추모문화제로 진행)
○ 장 소: 안산 중앙동 건너편 월드코아 광장앞
행사 정보
인물 정보
박성호(당시 29세)
1980년 태백 철암고등학교 졸업
1989년 7월 1일 안산 금강공업 (주)에 입사
1990년 8월 10일 노조결성시 노조부위원장으로 선출됨
1990년 8월 30일 경찰의 진압에 의해 전신 70% 화상
1990년 9월 11일 오후 7시 45분경 운명
- 제 109차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 인정자
동지는 강원도 태백 고향에서 탄광노동자로 일하며 광산노동운동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89년 안
산 반월공단내의 판넬과 건축용승강기를 만드는 금강공업에 입사하였다. ’90년 8월 10일 동지를
중심으로 민주노조가 결성되었고, 동지는 노조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노조는 신고필증이 교
부되자마자 회사에 임금교섭과 단체교섭을 요구하였다.사측은 교섭이 끝난 8월 29일 오후 6시반
경 본사와 안산공장 관리직 영업직 직원 200여명을 동원, 화물트럭에 자재를 실어 나르며 공장을
빠져나갔다. 이 소식을 들은 노조 집행부와 조합원들은 회사 정문 앞에서 가족들과 함께 항의 농
성을 시작하였다. 다음날인 30일 오전 6시경 회사측은 경영부실을 이유로 무기한 휴업 공고를 냈
다. 경찰이 농성참가 조합원들을 포위하자 동지는 신나를 온 몸에 붓고 더 가까이 오면 죽겠다고
외쳤으나 경찰은 무책임하게 동지에게 다가와 무리한 해산작전을 펴며 신나를 주변 조합원들에게
흩뿌렸다. 경찰 책임자가 라이터를 쥐고 있던 동지의 오른손을 비틀며 실랑이가 벌어지던 순간 불
길이 일어나 순식간에 번졌고 함께 있던 원태조 동지에게도 불길이 번졌다. 불길을 끄려는 동료
조합원들을 경찰은 무차별 구타, 연행하였고 사측은 원자재를 회사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등 경찰
과 회사는 반인륜적 행태를 보이며, 화상입은 농성 조합원들의 구조는 뒷전이었다. 한강성심병원
으로 옮겨진 동지는 화상으로 인해 9월 11일 운명하였다.
90년 8월30일 회사측이 경영부실을 이유로 무기한 휴업공고에 금강공업 노동조합은 농성에 돌입하였다. 이후 안산 경찰서 정보과장이 농성장에 와서 협박을 하고 돌아갔으며 오후 4시경 조합원 60여명은 정문에서 연좌 농성중이었고, 15명의 조합원들은 회사측이 물건을 빼돌리려고 만들어 놓은 비상문을 지키고 있었다. 이때 공권력이 투입되어 경찰들이 조합원들을 에워싸고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조합원 앞으로 경찰이 계속 포위망을 좁혀오자 부위원장(박성호)이 생수통에 담겨있는 신나를 몸에 붓고 “더이상 가까이 오면 분신하겠다.”고 하자 경찰 현장 책임자가 신나통을 손으로 치면서 주변에 있던 조합원들의 몸에 뿌려졌다. 그러자 사태의 심각함을 느낀 후생복지부장 원태조 동지도 이때 온몸에 신나를 끼얹었다. 이때 라이터를 들고 있던 부위원장의 손을 낚아채면서 순식간에 원태조 동지, 박성호 동지, 정만교 동지가 불덩이로 변했고(정만교 동지는 생존), 경찰은 소화기를 뿌리며 조합원들을 무차별 연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