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현준동지 11주기 추모제
○ 일 시: 2018년 9월 15일(토) 12:00
○ 장 소: 마석 민족민주열사묘역
행사 정보
토요일
2018-09-15
마석 민족민주열사묘역
지도에서 보기
인물 정보
김현준
- 1966년 광주 중앙초등학교 졸업
- 1969년 광주 북중학교 졸업
- 1973년 광주 제일고등학교 졸업
- 1974년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 입학
- 1975년 유신반대 시위로 제적
- 1980년 서울대학교 복학
- 1983년 3월 서울 신월중 발령. 영어교사로서 교단에 선 김 전 부위원장
- 1984년~1987년 강서남부지역교사모임, 5.10교육민주화선언, 4.13호헌철폐선언 및 서울교사협의회, 전
국교사협의회 창립 주도
- 1989년 전교조 창립 주도, 서울지부 부지부장, 서울 반포고 해직.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에 힘썼다.
- 1990년 전교조 본부 연대사업국장(미국과 일본 방문, 전교조 홍보 및 국제연대 활동)
- 1991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사무처장
- 1992년 8월 국가보안법으로 구속(8.15범민족대회 관련 등)
- 1993년~1994년 전교조 본부 연대사업위원장, 정책위원장 역임
- 1996년~1997년 영국 워릭대학교 경영대학 석사학위 취득(노사관계론)
- 1997년~1998년 영국 퀼대학교 경영대학 박사과정 수료(노사관계론)
- 1999년 3월 서울 영신고 복직. 전교조 합법1기 사무처장
- 2000년 전교조 부위원장, 10월 대장암 발병 1차 수술, 서울 영신고 휴직 2003년 간암 발병, 2차 수술
- 2004년~2005년 전북 남원, 전남 보성, 지리산 백무동계곡 등지에서 요양
- 2006년 3월 충주농고 복직, 3개월만에 폐암 발병, 휴직 후 수술하지 않고 자연치유 시도
- 2007년 2월 (사)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 이사
- 2007년 9월 16일 18시 10분 서울대병원에서 별세
- 1969년 광주 북중학교 졸업
- 1973년 광주 제일고등학교 졸업
- 1974년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 입학
- 1975년 유신반대 시위로 제적
- 1980년 서울대학교 복학
- 1983년 3월 서울 신월중 발령. 영어교사로서 교단에 선 김 전 부위원장
- 1984년~1987년 강서남부지역교사모임, 5.10교육민주화선언, 4.13호헌철폐선언 및 서울교사협의회, 전
국교사협의회 창립 주도
- 1989년 전교조 창립 주도, 서울지부 부지부장, 서울 반포고 해직.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에 힘썼다.
- 1990년 전교조 본부 연대사업국장(미국과 일본 방문, 전교조 홍보 및 국제연대 활동)
- 1991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사무처장
- 1992년 8월 국가보안법으로 구속(8.15범민족대회 관련 등)
- 1993년~1994년 전교조 본부 연대사업위원장, 정책위원장 역임
- 1996년~1997년 영국 워릭대학교 경영대학 석사학위 취득(노사관계론)
- 1997년~1998년 영국 퀼대학교 경영대학 박사과정 수료(노사관계론)
- 1999년 3월 서울 영신고 복직. 전교조 합법1기 사무처장
- 2000년 전교조 부위원장, 10월 대장암 발병 1차 수술, 서울 영신고 휴직 2003년 간암 발병, 2차 수술
- 2004년~2005년 전북 남원, 전남 보성, 지리산 백무동계곡 등지에서 요양
- 2006년 3월 충주농고 복직, 3개월만에 폐암 발병, 휴직 후 수술하지 않고 자연치유 시도
- 2007년 2월 (사)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 이사
- 2007년 9월 16일 18시 10분 서울대병원에서 별세
선생님은 광주제일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사회현실의 모순에 눈뜨기 시작하여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는 데 일조할 결심을 했다. 1974년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에 입학했으나 이듬해 유신반대 시위에 참여하여 제적을 당했다. 1980년 복학하여 졸업을 하고 1982년 서울 신월중에서 교직의 첫발을 내딛은 뒤 여러 교사모임을 만들어가며 교육운동의 싹을 키웠다. 5.10 교육민주화선언, 4.13호헌철폐 교사선언을 주도하면서 드디어 1989년 역사적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초대 전교조 서울지부 부지부장으로 활동하다 해직된 뒤 10여년에 이르는 해직의 기간 동안 치열하게 교육운동에 헌신했다. 1992년에는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의 사무처장으로 사회운동과 교육운동의 가교 역할을 하다가 구속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 전교조 연대사업위원장, 정책위원장을 맡아 전교조 합법화의 기틀을 닦았으며, 1999년 전교조 합법화와 더불어 초대 사무처장과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던 중 2000년 발병했다. 고통스러운 투병의 시간에도 꾸준히참교육 참세상의 열망으로 노동운동과 조합활동에 관한 고민을 계속하며 여러 논문과 연구서를 집필했고,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의 민주노동연구소 이사로 활동했으나 2007년 폐로 전이된 암의 치료 중 9월 16일 운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