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손석용동지 27주기 추모제
○ 일 시: 2018년 8월 18일(토) 18:00
○ 장 소: 대구대 대명동켐퍼스 추모비 앞
행사 정보
토요일
2018-08-18
대구대 대명동켐퍼스 추모비 앞
지도에서 보기
인물 정보
손석용(당시 22세)
1970년 6월 26일 경북 영덕 출생
1989년 대구 대륜고 졸업
1989년 대구대 사범대 초등특수교육과 입학.
‘우리뿌리’ 시동인 활동
‘우리마당’ 문화패 활동
1990년 12월 ‘해방터’ 사범대 동아리 창립1기
1991년 3월 군입대
1991년 8월 18일 밤 11시40분경 대구대 대명동 캠퍼스 야간강좌 옥상에서 분신 후 투신.
1991년 8월 19일 새벽 5시경 대구 동산 병원에서 운명.
1989년 대구 대륜고 졸업
1989년 대구대 사범대 초등특수교육과 입학.
‘우리뿌리’ 시동인 활동
‘우리마당’ 문화패 활동
1990년 12월 ‘해방터’ 사범대 동아리 창립1기
1991년 3월 군입대
1991년 8월 18일 밤 11시40분경 대구대 대명동 캠퍼스 야간강좌 옥상에서 분신 후 투신.
1991년 8월 19일 새벽 5시경 대구 동산 병원에서 운명.
특수교육학과 학도로서 장애자들과 함께 할 꿈을 소중히 키워왔던 손석용 동지는 민족민주운동에도 뜻을 같이 하다가 3학년 초에 군에 입대하였다.
평소 미제와 미제의 용병 역할을 하는 군을 혐오해 왔던 동지는 군에서도 동료들을 항해 총을 겨누고 있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느껴 고민하였다. 동지는 범민족대회가 열리던 기간인 8월14일 첫 휴가를 나와서 8월18일 장문의 유서를 남기고 모교인 대구대학교 대명동 캠퍼스 야간강좌 옥상에서 분신한 후 투신하여 끝내 마지막 길을 택했다.
그 후 동료 학생들과 수위에 의해 발견되었고, 19일 새벽 5시 운명하였다. 운명 즉시 대경총련 산하의 학생들과 지역 민주인사들이 영안실에 집결하여 대책마련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12시 15분경 국군 기무사의 지휘를 받는 백골단과 전경 2개 중대의 침탈에 의해 시신을 탈취당하여 국군통합병원으로 옮겨졌고, 놈들은 유가족을 회유하여 화장하고 구미에 있는 비산 나루터에 유골을 뿌렸다.
<동지가 남긴 글>
‘저 산들은 어디까지 이어졌을까?’ 생각은 끝내 백두(白頭)에서 멈추고 잠시 숙연하게 상념에 잠겼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나의 뇌리에서 막 시작되던 소원어린 절규는 이미 다른이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난 말할 수 없는 억울함과 동지애 속에 눈물을 되씹었다.
내 사랑하는 후배들아! 그리고 동지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네크라소프 일게다 아마)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우리 결코 불의에 굽히지 말고, 진실을 주장하며 살아가자. 지금 내리는 비는 우리의 더러운 교만과 위선을 씻을 수 있을까? 썩어빠진 조국의 위상, 빌붙어 민중(民衆)임을 망각하는 저 자본가 더러운 미제국주의의 하수인 그리고 노태우정권 처단하리라. 결단코 조국이 하나된 이날. 기뻐울며 춤출 수 있는 이땅의 民主主義, 진정한 자유, 민족통일을 위해 이 한목숨 기꺼이 바칠 수 있는 이날. 나를 뒤돌아보며 얼어붙은 우리 동지들의 두손을 감싸쥐고 싶은 이날 해방의 기쁨보다는, 식민지 조국의 진정한 혁명수행을 위해 총진군 하리라.
그대 동지여 그대 동지여
눈물을 보았는가 쓰러진 조국을 잡고서 피로 통곡하던
그 이름없는 전사의 눈물을 쓰라린 고통을 이겨내고서 하염없이 기뻐하던 그 이름없는 수인의 눈물을 자식 새끼 위해 소팔아 등록시키고 컴바인 빌어 쓴 빚지고도 몰래 몰래 훔치던 우리 어메 두눈에 어린 그 눈물을 보았는가 그대 동지여,
함성을 들었는가 조각난 조국의 꺾인 허리 부여잡고 엮어 엮어 하나되길 소리질러 발악하던 그 이름없는 전사의 함성을 최루탄 지랄탄 퍼부어 대던 가두에서 적들의, 시퍼런 적들의 칼창 위로 던져대던 파편, 불꽃, 그리고 청춘의 아리따운 함성
그 함성을 들었는가.
<유서>
조국통일과 진정한 해방을 염원하며, 자주가 마지막으로 드리는 글
통일염원 47년 8월 18일
-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 -
이젠 더이상의 죄악은 싫다
이젠 삶에 대한 애착도 없다 그러나, 죽는 순간까지 조국을 생각하고 있고, 죽어서도 조국의 통일과 해방을 염원할 뿐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그날
이 땅 갈라진 남과 북이 하나되는 그날을 위해 나의 모든 친구들이 일어나길 바랄뿐…… 이젠 더이상 이곳이 싫다
다시 태어나고 싶진 않지만, 그렇게 된다면 작은 민들레로 태어나고 싶다. 앉은뱅이 민들레로…… *백두에서 한라까지 하나되는 그날 장애인과 더불어 참 자유·평등·평화가 이루어 지는 그날 그날을 위해서 진정 참 특수교육은 우리의 철학이어야 합니다 이젠 떠남을 기다리며 나의 가슴 한구석에 응어리진 한을 달랠 때가 된것 같습니다. 수 많았던 기쁨이 또 기다림에 익숙했던 고민이 나를 둘러쌌던 모든 삶이 잊혀집니다. 갈라져서 외로웠던 사랑한 조국이 서러웠습니다. 미제의 시퍼런 침략의 총칼이 미웠으며 독재의 억압과 착취가 또한 미웠습니다.
아니, 무엇보다도 서러웠던건, 양키 용병을 거부하며 장렬하게 죽어갔던 어느 선배 열사의 다짐이 나를 부끄럽게 했으며, 그를 동조했으면서도 양키용병에 응했던 나 자신이 미웠습니다. 하나되길 원하는 한반도의 서러운 분단이 더욱 서러운 오늘 난 이어져 진정 자유로운 통일조국의 첫 아침을 생각해 봅니다. 늘, 꿈속에서나마 볼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을 것 같았던 내 조국의 통일을 볼 수 없음이 많이 애닳습니다. 어느 날인가, 아마 추운 겨울이었나 봅니다. 통일조국의 새아침을 다짐하며 진정한 미제축출의 그날을 다짐하며 공책 한 구석에 휘갈긴 부끄러운 ‘나의 다짐’이란 글이 생각 납니다.
<나의 다짐>
나는 식민지 반도 남녘 청년학도로서 독재의 억압과 착취를 분쇄하고 미제의 시퍼런 침략의 총칼을 뚫고 조국의 자주·민주·통일의 그날까지 민족해방 전선의 투사로 살아갈 것을 7천만 민중앞에 엄숙히 다짐합니다. 진정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다짐에 다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한줌의 재로밖에 변할 수 없음이 죄송할 따름입니다.
허나, 결코 헛된 다짐은 아니었다 생각합니다. 이러한 다짐이 있었기에 비록 여러분이 이글을 읽고 있을때 전 한줌의 재로 변해 있다 할지라도, 도망치듯 내 삶의 종지부를 찍었다 할지라도 그 기쁨을 표현하기 조차 벅찹니다.
<직녀에게>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말라 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에 노둣돌을 놓아 그대 손짓하는 여인아 은하수 건너 오작교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딛고 다시 만날 우리들 여인아 여인아
이별은 끝나야 한다
슬픔은 끝나야 한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그대 손짓하는 동포여
휴전선 넘어
민자당이 있어도 미국놈들 있어도
가슴딛고 다시 만날 우리들 동포여 동포여
분단은 끝나야 한다 단절은 끝나야 한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통일은 이뤄야 한다)” 비록 지금 여러분들의 곁을 떠나지만 통일되는 그날. 해방되는 그날 수많은 선배 열사들과 여러분과 함께 통일의 해방의 기쁨을 나눌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맑은 아이들의 천진한 웃음이 메아리 칠 수 있는 그날, 백두에서 한라까지 하나되어 통일의 노래 울려 퍼지는 그날, 모든 이들의 가슴에 진정한 Shalom이 숨쉬는 그날을 위해 “나의 다짐”을 되뇌어 주십시오 그리고, 직녀에게를 힘차게 불러주십시오 여러분을 사랑했기에 여러분들이 부르짓던 조국의 자주·민주·통일을 그리고 해방을 사랑했습니다. 이젠 더이상 미제의 마름일 수 없음을 이 글을 통해 다시 부르짖어 보며 확인해 봅니다. 그렇기에 노예로 사느니 죽음을 택했으며 더이상 민족의 겨레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룰수 없기에 이 길을 택했습니다. 이젠 더이상 저와 같은 어리석음이 이 땅위에 존재하지 않길 바랄뿐입니다. 죄악과 배신이란 단어로 표현될 뿐이니까요 슬픔이요, 곧 죽음입니다. 진정 여러분의 가슴에 참 조국 사랑의 아름다움이 넘쳐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슴에 조국이 있고, 그 조국의 통일과 완전한 해방을 원하신다면 자! 이제 일어나십시오 조국의 통일은, 해방은 누가 가져다 주는게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가 찾아내고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민족의 참다운 하나됨과 해방됨은 바라만 보고 있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순결한 어머니의 땅을 보듬고 어루만질 때 비로서 우리곁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나의 죽음이 이땅 한반도의 통일과 해방에 작은 밑거름이 되길 바랍니다. 헛된 죽음이 아니길…… 하느님께선 진정 여러분의 편입니다. 열심히들 투쟁하십시오 여러분과 이땅 한반도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죽어서도 내 조국 한반도의 통일과 진정한 해방을 염원할 겁니다.
통일염원 47년 8월 18일 民自主 드림 (손석용)
* 덧붙임 : 어머니! 자식이 먼저 간 것을 슬퍼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결코 노여워도 마십시오 아버지! 당신의 자식은 굳건히 조국을 위해 살았으며, 조국을 위해 죽어갔으며, 끝까지 조국의 아들이 되길 원했습니다. 정말 사랑합니다. 기어이 우리대에 조국을 사랑하자 !!!
평소 미제와 미제의 용병 역할을 하는 군을 혐오해 왔던 동지는 군에서도 동료들을 항해 총을 겨누고 있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느껴 고민하였다. 동지는 범민족대회가 열리던 기간인 8월14일 첫 휴가를 나와서 8월18일 장문의 유서를 남기고 모교인 대구대학교 대명동 캠퍼스 야간강좌 옥상에서 분신한 후 투신하여 끝내 마지막 길을 택했다.
그 후 동료 학생들과 수위에 의해 발견되었고, 19일 새벽 5시 운명하였다. 운명 즉시 대경총련 산하의 학생들과 지역 민주인사들이 영안실에 집결하여 대책마련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12시 15분경 국군 기무사의 지휘를 받는 백골단과 전경 2개 중대의 침탈에 의해 시신을 탈취당하여 국군통합병원으로 옮겨졌고, 놈들은 유가족을 회유하여 화장하고 구미에 있는 비산 나루터에 유골을 뿌렸다.
<동지가 남긴 글>
‘저 산들은 어디까지 이어졌을까?’ 생각은 끝내 백두(白頭)에서 멈추고 잠시 숙연하게 상념에 잠겼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나의 뇌리에서 막 시작되던 소원어린 절규는 이미 다른이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난 말할 수 없는 억울함과 동지애 속에 눈물을 되씹었다.
내 사랑하는 후배들아! 그리고 동지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네크라소프 일게다 아마)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우리 결코 불의에 굽히지 말고, 진실을 주장하며 살아가자. 지금 내리는 비는 우리의 더러운 교만과 위선을 씻을 수 있을까? 썩어빠진 조국의 위상, 빌붙어 민중(民衆)임을 망각하는 저 자본가 더러운 미제국주의의 하수인 그리고 노태우정권 처단하리라. 결단코 조국이 하나된 이날. 기뻐울며 춤출 수 있는 이땅의 民主主義, 진정한 자유, 민족통일을 위해 이 한목숨 기꺼이 바칠 수 있는 이날. 나를 뒤돌아보며 얼어붙은 우리 동지들의 두손을 감싸쥐고 싶은 이날 해방의 기쁨보다는, 식민지 조국의 진정한 혁명수행을 위해 총진군 하리라.
그대 동지여 그대 동지여
눈물을 보았는가 쓰러진 조국을 잡고서 피로 통곡하던
그 이름없는 전사의 눈물을 쓰라린 고통을 이겨내고서 하염없이 기뻐하던 그 이름없는 수인의 눈물을 자식 새끼 위해 소팔아 등록시키고 컴바인 빌어 쓴 빚지고도 몰래 몰래 훔치던 우리 어메 두눈에 어린 그 눈물을 보았는가 그대 동지여,
함성을 들었는가 조각난 조국의 꺾인 허리 부여잡고 엮어 엮어 하나되길 소리질러 발악하던 그 이름없는 전사의 함성을 최루탄 지랄탄 퍼부어 대던 가두에서 적들의, 시퍼런 적들의 칼창 위로 던져대던 파편, 불꽃, 그리고 청춘의 아리따운 함성
그 함성을 들었는가.
<유서>
조국통일과 진정한 해방을 염원하며, 자주가 마지막으로 드리는 글
통일염원 47년 8월 18일
-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 -
이젠 더이상의 죄악은 싫다
이젠 삶에 대한 애착도 없다 그러나, 죽는 순간까지 조국을 생각하고 있고, 죽어서도 조국의 통일과 해방을 염원할 뿐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그날
이 땅 갈라진 남과 북이 하나되는 그날을 위해 나의 모든 친구들이 일어나길 바랄뿐…… 이젠 더이상 이곳이 싫다
다시 태어나고 싶진 않지만, 그렇게 된다면 작은 민들레로 태어나고 싶다. 앉은뱅이 민들레로…… *백두에서 한라까지 하나되는 그날 장애인과 더불어 참 자유·평등·평화가 이루어 지는 그날 그날을 위해서 진정 참 특수교육은 우리의 철학이어야 합니다 이젠 떠남을 기다리며 나의 가슴 한구석에 응어리진 한을 달랠 때가 된것 같습니다. 수 많았던 기쁨이 또 기다림에 익숙했던 고민이 나를 둘러쌌던 모든 삶이 잊혀집니다. 갈라져서 외로웠던 사랑한 조국이 서러웠습니다. 미제의 시퍼런 침략의 총칼이 미웠으며 독재의 억압과 착취가 또한 미웠습니다.
아니, 무엇보다도 서러웠던건, 양키 용병을 거부하며 장렬하게 죽어갔던 어느 선배 열사의 다짐이 나를 부끄럽게 했으며, 그를 동조했으면서도 양키용병에 응했던 나 자신이 미웠습니다. 하나되길 원하는 한반도의 서러운 분단이 더욱 서러운 오늘 난 이어져 진정 자유로운 통일조국의 첫 아침을 생각해 봅니다. 늘, 꿈속에서나마 볼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을 것 같았던 내 조국의 통일을 볼 수 없음이 많이 애닳습니다. 어느 날인가, 아마 추운 겨울이었나 봅니다. 통일조국의 새아침을 다짐하며 진정한 미제축출의 그날을 다짐하며 공책 한 구석에 휘갈긴 부끄러운 ‘나의 다짐’이란 글이 생각 납니다.
<나의 다짐>
나는 식민지 반도 남녘 청년학도로서 독재의 억압과 착취를 분쇄하고 미제의 시퍼런 침략의 총칼을 뚫고 조국의 자주·민주·통일의 그날까지 민족해방 전선의 투사로 살아갈 것을 7천만 민중앞에 엄숙히 다짐합니다. 진정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다짐에 다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한줌의 재로밖에 변할 수 없음이 죄송할 따름입니다.
허나, 결코 헛된 다짐은 아니었다 생각합니다. 이러한 다짐이 있었기에 비록 여러분이 이글을 읽고 있을때 전 한줌의 재로 변해 있다 할지라도, 도망치듯 내 삶의 종지부를 찍었다 할지라도 그 기쁨을 표현하기 조차 벅찹니다.
<직녀에게>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말라 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에 노둣돌을 놓아 그대 손짓하는 여인아 은하수 건너 오작교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딛고 다시 만날 우리들 여인아 여인아
이별은 끝나야 한다
슬픔은 끝나야 한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그대 손짓하는 동포여
휴전선 넘어
민자당이 있어도 미국놈들 있어도
가슴딛고 다시 만날 우리들 동포여 동포여
분단은 끝나야 한다 단절은 끝나야 한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통일은 이뤄야 한다)” 비록 지금 여러분들의 곁을 떠나지만 통일되는 그날. 해방되는 그날 수많은 선배 열사들과 여러분과 함께 통일의 해방의 기쁨을 나눌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맑은 아이들의 천진한 웃음이 메아리 칠 수 있는 그날, 백두에서 한라까지 하나되어 통일의 노래 울려 퍼지는 그날, 모든 이들의 가슴에 진정한 Shalom이 숨쉬는 그날을 위해 “나의 다짐”을 되뇌어 주십시오 그리고, 직녀에게를 힘차게 불러주십시오 여러분을 사랑했기에 여러분들이 부르짓던 조국의 자주·민주·통일을 그리고 해방을 사랑했습니다. 이젠 더이상 미제의 마름일 수 없음을 이 글을 통해 다시 부르짖어 보며 확인해 봅니다. 그렇기에 노예로 사느니 죽음을 택했으며 더이상 민족의 겨레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룰수 없기에 이 길을 택했습니다. 이젠 더이상 저와 같은 어리석음이 이 땅위에 존재하지 않길 바랄뿐입니다. 죄악과 배신이란 단어로 표현될 뿐이니까요 슬픔이요, 곧 죽음입니다. 진정 여러분의 가슴에 참 조국 사랑의 아름다움이 넘쳐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슴에 조국이 있고, 그 조국의 통일과 완전한 해방을 원하신다면 자! 이제 일어나십시오 조국의 통일은, 해방은 누가 가져다 주는게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가 찾아내고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민족의 참다운 하나됨과 해방됨은 바라만 보고 있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순결한 어머니의 땅을 보듬고 어루만질 때 비로서 우리곁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나의 죽음이 이땅 한반도의 통일과 해방에 작은 밑거름이 되길 바랍니다. 헛된 죽음이 아니길…… 하느님께선 진정 여러분의 편입니다. 열심히들 투쟁하십시오 여러분과 이땅 한반도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죽어서도 내 조국 한반도의 통일과 진정한 해방을 염원할 겁니다.
통일염원 47년 8월 18일 民自主 드림 (손석용)
* 덧붙임 : 어머니! 자식이 먼저 간 것을 슬퍼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결코 노여워도 마십시오 아버지! 당신의 자식은 굳건히 조국을 위해 살았으며, 조국을 위해 죽어갔으며, 끝까지 조국의 아들이 되길 원했습니다. 정말 사랑합니다. 기어이 우리대에 조국을 사랑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