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지학순주교 25주기 추모제
○ 일 시: 2018년 3월 12일(월) 14:00
○ 장 소: 원주 베론성지
행사 정보
월요일
2018-03-12
원주 베론성지
지도에서 보기
인물 정보
지학순
- 1921년 9월 9일 평남 중화군에서 태어남
- 1950년 2월 서울 성신대학(현 가톨릭대 신학대) 편입
- 1952년 12월 15일 사제 서품
- 1965년 3월 22일 원주교구 초대 교구장
- 1969년 10월 5일 가톨릭노동청년회 총재 주교
- 1971년 10월 국제사면위원회 한국위원회 이사장. 원주시 원동 주교좌성당에서 한국 천주교회 최초로 주교의 지도 아래 사회악과 부정부패에 저항한 `사회정의 구현과 부정부패 규탄대회`를 염. 가톨릭 노동청년회, 가톨릭 평신도사도직 전국협의회, 가톨릭정의평화위원회, 가톨릭여성연합회 총재주교 등 역임하며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다 구속되기도 함. 이는 한국 천주교가 집단적으로 정의구현에 나서게 하는 도화선이 되었고, 이를 계기로 천주교정의구현 사제단이 결성됨
- 1972년 4월 10일 국제 앰네스티 한국위원회 명예회장
- 1973년 6월 한국노동교육협의회 회장이 됨. 70년대 노동운동 지원
- 1974년 7월 6일 중앙정보부에 강제 연행
- 1974년 7월 23일 양심선언 발표
- 1974년 8월 12일 긴급조치 1, 4호 위반, 민청학련사건 관련 협의로 구속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형 선고
- 1975년 2월 17일 226일만에 구속집행정지로 출감
- 1985년 9월 20~23일 이산가족 고향방문단일원으로 평양 방문, 동생 만남
- 1993년 3월 12일 가톨릭 인권운동 활동 중 강남성모병원에서 운명
- 1950년 2월 서울 성신대학(현 가톨릭대 신학대) 편입
- 1952년 12월 15일 사제 서품
- 1965년 3월 22일 원주교구 초대 교구장
- 1969년 10월 5일 가톨릭노동청년회 총재 주교
- 1971년 10월 국제사면위원회 한국위원회 이사장. 원주시 원동 주교좌성당에서 한국 천주교회 최초로 주교의 지도 아래 사회악과 부정부패에 저항한 `사회정의 구현과 부정부패 규탄대회`를 염. 가톨릭 노동청년회, 가톨릭 평신도사도직 전국협의회, 가톨릭정의평화위원회, 가톨릭여성연합회 총재주교 등 역임하며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다 구속되기도 함. 이는 한국 천주교가 집단적으로 정의구현에 나서게 하는 도화선이 되었고, 이를 계기로 천주교정의구현 사제단이 결성됨
- 1972년 4월 10일 국제 앰네스티 한국위원회 명예회장
- 1973년 6월 한국노동교육협의회 회장이 됨. 70년대 노동운동 지원
- 1974년 7월 6일 중앙정보부에 강제 연행
- 1974년 7월 23일 양심선언 발표
- 1974년 8월 12일 긴급조치 1, 4호 위반, 민청학련사건 관련 협의로 구속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형 선고
- 1975년 2월 17일 226일만에 구속집행정지로 출감
- 1985년 9월 20~23일 이산가족 고향방문단일원으로 평양 방문, 동생 만남
- 1993년 3월 12일 가톨릭 인권운동 활동 중 강남성모병원에서 운명
강원도 원주의 초대 교구장으로서 취임하게 된다. 동지는 노동회관을 만들고 가톨릭노동청년회와 가톨릭 농민회를 조직하여 노동자와 농민들이 권리를 스스로 찾을수 있도록 지원했다. 김지하의 구속과 전태일 동지의 분신은 동지로 하여금 사목활동 뿐 아니라 사회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71년 원주문화방송의 부정이 드러난 후 민중들의 어려운 삶이 정권의 가공할 부정부패와 부조리에 있음을 지적하며 10월 5일 원주를 중심으로 부정부패 규탄대회를 개최한다. 이러한 운동은 전국 천주교와 종교단체 시민단체에까지 번져 나가게 된다. 동지의 이러한 활동은 당시 박정희정권에게는 눈에 가시였다. ’74년 7월 6일, 중앙정부 요원에 강제 연행되어 민청학련사건과 관련하여 조사를 받고 구속된다. 이를 계기로 천주교에서는 정의평화와 지주교를 위한 미사가 열린다. 건강 때문에 연금 상태로 풀려난 이후에도 ‘민청학련사건에 대한 나의 입장’이라는 양심선언 성명서를 발표하며 박정희 정권을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동지의 구속이후 사제들을 중심으로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만들어져 이후 시국선언 등 독재정권에 맞선 활동들을 하게 된다. 박정희 암살 이후 동지는 군사정권에 대한 투쟁방식을 변화시켜 민중의 삶의 질을 돌보는 사목활동을 하다가 ’93년 72세로 강남성모병원에서 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