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범영동지 23주기 추모제
○ 일 시: 2017년 8월 12일(토) 12:00
○ 장 소: 마석 민족민주열사묘역
행사 정보
토요일
2017-08-12
마석 민족민주열사묘역
지도에서 보기
인물 정보
이범영(당시 39세)
1955년 강원도 원성군 출생
서울중학교 졸업
서울고등학교 졸업
1973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입학
1976년 12월 유신반대 시위주도로 구속
항소심에서 2년6개월 선고받음
1979년 7월 형집행 정지로 출감
‘전국 병역대책위원회’를 조직, 위원장으로 활동
1984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집행국장
1988년 민청련 의장
1990년 전국 청년단체대표자협의회 의장
1992년 한국민주청년단체협의회 의장
1994년 8월 12일 담도암으로 운명
서울중학교 졸업
서울고등학교 졸업
1973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입학
1976년 12월 유신반대 시위주도로 구속
항소심에서 2년6개월 선고받음
1979년 7월 형집행 정지로 출감
‘전국 병역대책위원회’를 조직, 위원장으로 활동
1984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집행국장
1988년 민청련 의장
1990년 전국 청년단체대표자협의회 의장
1992년 한국민주청년단체협의회 의장
1994년 8월 12일 담도암으로 운명
이범영. 그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위대한 사상가도, 뛰어난 경세가도, 불세출의 지략가도 아니었다.
더더구나 천재의 광휘가 번뜩이는 타고난 글쟁이도 아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 그는 마흔 해를 살다간 사람의 자연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많은 장점과 동시에 많은 단점을 내보이며 열심히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던 수다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흔치 않는 삶을 산 사람이라는 사실 또한 부정하지 못한다. 그는 개인의 안일과 욕망을 뒷전으로 밀쳐 놓고, 이 사회와 세계를 뒤바뀌고자 했던 혁명가, 운동가, 활동가였다.
그렇다. 그는 혁명가였다. 우리는 성장기를 제외한 그의 스무 해의 삶에 주저하지 않고 ‘혁명가’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다. 혁명이란 말에 조소를 날리거나 적당히 제 먹을 궁리만 하며 똥물의 날파리처럼 설쳐대는 숱한 소인배들 앞에, 우리는 그의 순수했던 삶을 ‘혁명가’라고 자랑스럽게 명명하고자 한다.
<추모문집 中에서>
동지를 생각하며
다시 살아오는 너를 보고 싶구나.
부모 앞지른 불효막심한 놈 이제 그만 잊으라고들 한다. 모르는 소리들이다.
내 속으로 난 자식이 불효를 했으면 얼마나 했겠으며 효를 몰라 불효를 저질렀겠는가?
모르는 소리들이다.
이승의 삶을 고스란히 두고 가는 놈의 속은 오죽했겠는가?
정 주고 살았던 이승의 식구들이 눈에 밟혀 제 갈 길인들 제대로 가기나 했겠는가?
모르는 소리들이다.
가고 오지 못할 길을 떠난 자식 앞에 울음도 사치요 호사인 줄 알기는 할까?
대학 졸업도 팽개치고 유신 반대 시위를 할 때 알아봤지. 펄펄 끓는 기개와 용기 허튼 데 쓰질 않겠구나 짐작은 했지.
쫒겨다니면서도 한청협 만든다고 제 한 몸 돌보지 않을 때 그 때 알아봤지.
내 자식이 아닌 겨레의 청년들 벗이요,
내 아들 아닌 역사가 낳은 아들이란 걸,
그 놈 가고 나면 서운하고 섭섭해서 빈 자리 쓰다듬고 울고 있을 더 많은 자식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 놈 떠난 빈 자리는 채워지질 않는다.
에미는 자식 놈 이름 석자만 들어도 목이 메고 범영이 친구라는 소리에 울음을 쏟아낸다.
애비 대신 실컷 울고 또 운다.
그렇게 일년을 보냈으니 이젠 놓아도 좋겠지.
한청협 어린 청년들 속에 자라나는 범영이의 기개를 보고 장년의 친구들에게서 범영이의 만개하는 꿈을 보아도 좋겠지.
그 낙으로 남은 평생을 누리며 살라는 게 자식 놈 소원일테지.
어느날인가는 그리도 사랑했던 조국에도 미움 없고 폭력 없고 편을 가르는 싸움도 없는 그런 날이 와 더 많은 범영이와 먼저 간 범영이를 자랑스럽게 그리는 날은 올텐데.
범영아, 이승의 짐은 벗어던지고 편히 쉬거라.
못잔 잠 한숨 푹자거라.
눈에 밟히는 건혜, 승민이마저도 잊어버리고 깊은 잠 실컷 자거라.
범영아, 편히 자거라.
사랑한다.
죽지 않으면 부활의 역사도 없다고 했으니 너를 가슴에 묻은 숱한 청년들로 다시 살아오는 너를 보고 싶구나.
1995년 8월 아버지가
유고글
편 지
예쁜 건혜와 귀여운 승민에게 잘들 있었니?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고 부르는데, 모든 산과 들이 푸르게 빛나고,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까치 종달새, 뻐구기 등 새소리가 들려오는게 정말 모든 계절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생기있는 때인 것 같다.
지난 어린이날에 너희들과 소풍갔던 곳도 참 멋있는 계곡이었지? 이곳에도 멋있는 계곡들이 곳곳에 있다. 먼 산에서 뻐꾸기가 뻐꾹뻐꾹 하고 울기도 한다. 나는 우리 나라를 이곳 저곳 돌아다녀 보면서 우리나라가 작지만 아름다운 곳이라고 감탄한다.
우리 나라 애국가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정말 화려한 강산이다.
또 우리 나라를 금수 강산이라고도 하는데 그 말은 비단으로 수를 놓은 듯 그렇게 아름다운 강산이라는 뜻이다.
너희들은 우리 선조들이 화려 강산, 금수 강산을 지키고 가꾸어 우리에게 물려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큰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서 화려 강산, 금수강산을 빛내는 꽃으로 피어나거라. 요즈음 우리 사회를 보면 이렇게 좋은 국토와 자연을 잘 보호하고 제대로 가꾸지 않아서 문제이다.
가꾸기는 커녕 망가뜨리고 더럽히고 있다.
정부도 자연 보호를 말로만 떠들고 있지 실제로는 산에다 막 길을 뚫고 해서 산의 모습을 망가뜨리고 있다.
자연은 한 번 망가지면 다시 제 모습을 찾기 어려운데 왜들 이러는지 모르겠다.
건혜는 경쟁심과 승부욕이 너무 강해서 다른 애들에게 잘난 척하는 듯이 보여서는 안된다.
남에게 양보도 하고 다른 애들이 어려워하는 일을 도와주는 일을 많이 해라. 아는 것이 많다고 잘난 척하는 어린이보다 남에게 양보하고 도와줄 줄 아는 어린이를 하느님은 더 사랑하신다.
승민이는 책을 더 열심히 읽도록 하여라. 참 너희들이 어버이날 나에게 준 카네이션과 행운의 클로바는 정말 좋은 선물이었다. 아빠에게 하느님이 내려준 복 중에 가장 큰 복이 무어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건혜와 승민이와 같은 예쁘고 착한 딸들을 하느님에게 받은 것이 가장 큰 복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정말 너희들과 같은 딸을 가진 것을 아빠는 가장 큰 행복과 긍지(자랑)로 여기고 있다. 착하고 예절 바르며 튼튼한 어린이가 되어라. 안녕! 1994.5.19. 지리산 기슭에서 아빠 씀.
추모의 글
사랑하는 이범영 의장!
무엇보다 모든 동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할 일이 많고 유능한 일꾼을 필요로 하는 이 때에 젊은 나이에, 한창 일할 나이에, 지혜와 경륜을 운동에 쏟아 넣을 수 있는 인생의 황금기에 우리 곁을 떠났기에 더욱 우리는 이 의장을 잊지 못하며 안타까워 하는 겁니다.
무엇이 이 의장을 일찍 가게 했는지요. 그것은 다름 아니라 70년도 유신 독재로부터 시작된 저항의 시절로부터 쌓이고 쌓인 울분과 정의롭고 깨끗한 심성을 지키기에 한계를 느낀 것들이 병소로 발전했다고 생각하니 더욱 원통하고 분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늘에 있는 이범영 의장! 이 땅에 살아계신 부모님, 부인, 딸들의 생활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시오. 이 의장의 동료들이 이 의장 대신 잘 돌보아 드릴 겁니다.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갑니다.
이 의장의 주변에 좋은 동료가 많이 있습니다.
이 의장이 좋았기에 주변의 동료들도 좋습니다.
이 의장이 열심히 일구어 놓은 한청협도 이 시대에 가장 강력한 청년 단체로서 큰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부탁은 우리가 게으르고 무책임한 행동을 할 때 크게 진노하여 가르쳐 주셔야 합니다.
우리의 분열을 막아주셔야 합니다.
우리의 타락을 막아 주셔야 합니다.
하늘에서 편히 쉴 수도 없게 졸라대는 우리를 너무 나무라지 마시고 받아주시오.
헐떡이며 숨조여 사는 이 땅의 민중들, 언제나 가슴 펴고 살아갈 수 있겠오. 부디 도와 주시오.
사랑하는 이범영 의장, 우리의 믿음직한 동지, 부디 하늘에서 편히 쉬시오.
삼가 명복을 빕니다.
더더구나 천재의 광휘가 번뜩이는 타고난 글쟁이도 아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 그는 마흔 해를 살다간 사람의 자연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많은 장점과 동시에 많은 단점을 내보이며 열심히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던 수다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흔치 않는 삶을 산 사람이라는 사실 또한 부정하지 못한다. 그는 개인의 안일과 욕망을 뒷전으로 밀쳐 놓고, 이 사회와 세계를 뒤바뀌고자 했던 혁명가, 운동가, 활동가였다.
그렇다. 그는 혁명가였다. 우리는 성장기를 제외한 그의 스무 해의 삶에 주저하지 않고 ‘혁명가’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다. 혁명이란 말에 조소를 날리거나 적당히 제 먹을 궁리만 하며 똥물의 날파리처럼 설쳐대는 숱한 소인배들 앞에, 우리는 그의 순수했던 삶을 ‘혁명가’라고 자랑스럽게 명명하고자 한다.
<추모문집 中에서>
동지를 생각하며
다시 살아오는 너를 보고 싶구나.
부모 앞지른 불효막심한 놈 이제 그만 잊으라고들 한다. 모르는 소리들이다.
내 속으로 난 자식이 불효를 했으면 얼마나 했겠으며 효를 몰라 불효를 저질렀겠는가?
모르는 소리들이다.
이승의 삶을 고스란히 두고 가는 놈의 속은 오죽했겠는가?
정 주고 살았던 이승의 식구들이 눈에 밟혀 제 갈 길인들 제대로 가기나 했겠는가?
모르는 소리들이다.
가고 오지 못할 길을 떠난 자식 앞에 울음도 사치요 호사인 줄 알기는 할까?
대학 졸업도 팽개치고 유신 반대 시위를 할 때 알아봤지. 펄펄 끓는 기개와 용기 허튼 데 쓰질 않겠구나 짐작은 했지.
쫒겨다니면서도 한청협 만든다고 제 한 몸 돌보지 않을 때 그 때 알아봤지.
내 자식이 아닌 겨레의 청년들 벗이요,
내 아들 아닌 역사가 낳은 아들이란 걸,
그 놈 가고 나면 서운하고 섭섭해서 빈 자리 쓰다듬고 울고 있을 더 많은 자식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 놈 떠난 빈 자리는 채워지질 않는다.
에미는 자식 놈 이름 석자만 들어도 목이 메고 범영이 친구라는 소리에 울음을 쏟아낸다.
애비 대신 실컷 울고 또 운다.
그렇게 일년을 보냈으니 이젠 놓아도 좋겠지.
한청협 어린 청년들 속에 자라나는 범영이의 기개를 보고 장년의 친구들에게서 범영이의 만개하는 꿈을 보아도 좋겠지.
그 낙으로 남은 평생을 누리며 살라는 게 자식 놈 소원일테지.
어느날인가는 그리도 사랑했던 조국에도 미움 없고 폭력 없고 편을 가르는 싸움도 없는 그런 날이 와 더 많은 범영이와 먼저 간 범영이를 자랑스럽게 그리는 날은 올텐데.
범영아, 이승의 짐은 벗어던지고 편히 쉬거라.
못잔 잠 한숨 푹자거라.
눈에 밟히는 건혜, 승민이마저도 잊어버리고 깊은 잠 실컷 자거라.
범영아, 편히 자거라.
사랑한다.
죽지 않으면 부활의 역사도 없다고 했으니 너를 가슴에 묻은 숱한 청년들로 다시 살아오는 너를 보고 싶구나.
1995년 8월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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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지
예쁜 건혜와 귀여운 승민에게 잘들 있었니?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고 부르는데, 모든 산과 들이 푸르게 빛나고,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까치 종달새, 뻐구기 등 새소리가 들려오는게 정말 모든 계절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생기있는 때인 것 같다.
지난 어린이날에 너희들과 소풍갔던 곳도 참 멋있는 계곡이었지? 이곳에도 멋있는 계곡들이 곳곳에 있다. 먼 산에서 뻐꾸기가 뻐꾹뻐꾹 하고 울기도 한다. 나는 우리 나라를 이곳 저곳 돌아다녀 보면서 우리나라가 작지만 아름다운 곳이라고 감탄한다.
우리 나라 애국가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정말 화려한 강산이다.
또 우리 나라를 금수 강산이라고도 하는데 그 말은 비단으로 수를 놓은 듯 그렇게 아름다운 강산이라는 뜻이다.
너희들은 우리 선조들이 화려 강산, 금수 강산을 지키고 가꾸어 우리에게 물려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큰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서 화려 강산, 금수강산을 빛내는 꽃으로 피어나거라. 요즈음 우리 사회를 보면 이렇게 좋은 국토와 자연을 잘 보호하고 제대로 가꾸지 않아서 문제이다.
가꾸기는 커녕 망가뜨리고 더럽히고 있다.
정부도 자연 보호를 말로만 떠들고 있지 실제로는 산에다 막 길을 뚫고 해서 산의 모습을 망가뜨리고 있다.
자연은 한 번 망가지면 다시 제 모습을 찾기 어려운데 왜들 이러는지 모르겠다.
건혜는 경쟁심과 승부욕이 너무 강해서 다른 애들에게 잘난 척하는 듯이 보여서는 안된다.
남에게 양보도 하고 다른 애들이 어려워하는 일을 도와주는 일을 많이 해라. 아는 것이 많다고 잘난 척하는 어린이보다 남에게 양보하고 도와줄 줄 아는 어린이를 하느님은 더 사랑하신다.
승민이는 책을 더 열심히 읽도록 하여라. 참 너희들이 어버이날 나에게 준 카네이션과 행운의 클로바는 정말 좋은 선물이었다. 아빠에게 하느님이 내려준 복 중에 가장 큰 복이 무어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건혜와 승민이와 같은 예쁘고 착한 딸들을 하느님에게 받은 것이 가장 큰 복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정말 너희들과 같은 딸을 가진 것을 아빠는 가장 큰 행복과 긍지(자랑)로 여기고 있다. 착하고 예절 바르며 튼튼한 어린이가 되어라. 안녕! 1994.5.19. 지리산 기슭에서 아빠 씀.
추모의 글
사랑하는 이범영 의장!
무엇보다 모든 동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할 일이 많고 유능한 일꾼을 필요로 하는 이 때에 젊은 나이에, 한창 일할 나이에, 지혜와 경륜을 운동에 쏟아 넣을 수 있는 인생의 황금기에 우리 곁을 떠났기에 더욱 우리는 이 의장을 잊지 못하며 안타까워 하는 겁니다.
무엇이 이 의장을 일찍 가게 했는지요. 그것은 다름 아니라 70년도 유신 독재로부터 시작된 저항의 시절로부터 쌓이고 쌓인 울분과 정의롭고 깨끗한 심성을 지키기에 한계를 느낀 것들이 병소로 발전했다고 생각하니 더욱 원통하고 분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늘에 있는 이범영 의장! 이 땅에 살아계신 부모님, 부인, 딸들의 생활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시오. 이 의장의 동료들이 이 의장 대신 잘 돌보아 드릴 겁니다.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갑니다.
이 의장의 주변에 좋은 동료가 많이 있습니다.
이 의장이 좋았기에 주변의 동료들도 좋습니다.
이 의장이 열심히 일구어 놓은 한청협도 이 시대에 가장 강력한 청년 단체로서 큰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부탁은 우리가 게으르고 무책임한 행동을 할 때 크게 진노하여 가르쳐 주셔야 합니다.
우리의 분열을 막아주셔야 합니다.
우리의 타락을 막아 주셔야 합니다.
하늘에서 편히 쉴 수도 없게 졸라대는 우리를 너무 나무라지 마시고 받아주시오.
헐떡이며 숨조여 사는 이 땅의 민중들, 언제나 가슴 펴고 살아갈 수 있겠오. 부디 도와 주시오.
사랑하는 이범영 의장, 우리의 믿음직한 동지, 부디 하늘에서 편히 쉬시오.
삼가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