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원태조 동지 25주기 추모제
○ 일 시: 2015년 9월 16일(수) 오후 6시 30분
○ 장 소: 안산시청 건너편 세월호 열린공간(세월호 천막농성장 앞)
행사 정보
인물 정보
원태조(당시 39세)
1989년 금강공업 (주)에 입사
1990년 8월 10일 노조결성시 후생복지부장으로 추대. 회사측이 경영부실을 이유로 무기한 휴업을 공고하자
노조 농성에 돌입.
1990년 8월 30일 경찰의 폭압적 진압에 의해 전신 80% 화상
- 1990년 9월 18일 오전 6시 30분경 운명
- 제 109차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 인정자
동지는 ’89년 안산 반월공단내의 판넬과 건축용승강기를 만드는 금강공업에 입사하였다. ’90년 8월 10일 동지를 중심으로 민주노조가 결성되었고, 동지는 노조 후생복지부장으로 선출되었다. 사측은 교섭이 끝난 8월 29일 오후 6시반경 본사와 안산공장 관리직 영업직 직원 200여명을 동원,화물트럭에 자재를 실어 나르며 공장을 빠져나갔다. 이 소식을 들은 노조 집행부와 조합원들은 회사 정문 앞에서 가족들과 함께 항의 농성을 시작하였다. 경찰이 농성참가 조합원들을 포위하자 동지는 신나를 온 몸에 붓고 더 가까이 오면 죽겠다고 외쳤으나 경찰은 무책임하게 동지에게 다가와 무리한 해산작전을 펴며 신나를 주변 조합원들에게 흩뿌렸다. 경찰 책임자가 라이터를 쥐고 있던 박성호 동지의 오른손을 비틀며 실랑이가 벌어지던 순간 불길이 일어나 순식간에 번졌고 함께있던 동지에게도 불길이 번졌다. 불길을 끄려는 동료 조합원들을 경찰은 무차별 구타, 연행하였고사측은 원자재를 회사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등 경찰과 회사는 반인륜적 행태를 보이며, 화상입은농성 조합원들의 구조는 뒷전이었다.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진 동지는 화상으로 인해 9월 18일운명하였다.
사건 직후 ‘금강공업노동자집단살상 경찰폭력분쇄 전국공동대책위가 구성되어 진상규명, 안산경찰서 항의 시위, 공권력투입규탄대회 등을 개최하였다.
90년 8월30일 회사측이 경영부실을 이유로 무기한 휴업공고에 금강공업 노동조합은 농성에 돌입하였다. 이후 안산 경찰서 정보과장이 농성장에 와서 협박을 하고 돌아갔으며 오후 4시경 조합원 60여명은 정문에서 연좌 농성중이었고, 15명의 조합원들은 회사측이 물건을 빼돌리려고 만들어 놓은 비상문을 지키고 있었다. 이때 공권력이 투입되어 경찰들이 조합원들을 에워싸고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조합원 앞으로 경찰이 계속 포위망을 좁혀오자 부위원장(박성호)이 생수통에 담겨있는 신나를 몸에 붓고 “더이상 가까이 오면 분신하겠다.”고 하자 경찰 현장 책임자가 신나통을 손으로 치면서 주변에 있던 조합원들의 몸에 뿌려졌다. 그러자 사태의 심각함을 느낀 후생복지부장 원태조 동지도 이때 온몸에 신나를 끼얹었다. 이때 라이터를 들고 있던 부위원장의 손을 낚아채면서 순식간에 원태조 동지, 박성호 동지, 정만교 동지가 불덩이로 변했고(정만교 동지는 생존), 경찰은 소화기를 뿌리며 조합원들을 무차별 연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