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소선 어머니 4주기 추모제
○ 일 시: 2015년 9월 3일(목) 오전 11시
○ 장 소: 마석 민족민주열사묘역
행사 정보
목요일
2015-09-03
마석 민족민주열사묘역
지도에서 보기
인물 정보
이소선
1929년 11월 9일(음력) 경북 달성군 성서면 감천리에서 아버지 이성조 씨와 어머니 김분이 씨 사이에서 1남2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남
1933년 대구에서 농민운동과 항일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 이성조씨가 일제에 의해 학살
1945년 봄 근로정신대로 대구 칠성동 방직공장으로 끌려가 강제노역 중 해방직전 공장을 탈출하여 칠곡 고모댁에서 숨어 있다가 해방을 맞음
1947년 여름 대구 남산동에서 봉제 공장을 하던 전상수씨와 결혼
1948년 8월 26일(음력) 장남 전태일을 출산했고, 이후 태삼, 순옥, 순덕을 낳아 슬하에 2남2녀 둠
1950년 전쟁 직전 부산으로 이사, 남편 미군부대에서 옷 수선
1954년 남편의 사업 실패로 서울로 이사. 염천교 주변에 살며 팥죽장사, 채소장사 등을 함
1960년 남대문 대도시장에서 옷 공장을 하던 남편이 브로커에 속아 사업 망함. 이후 용두동 천막촌에서 생활을 하다 대구로 감
1964년 생계를 위해 이소선 홀로 서울로 와서 식당에서 일하다 병을 얻어 요양한 뒤, 중앙시장에서 우거지 장사를 하며 주변 거지 아이들을 자식처럼 돌봄
1965년 장사를 해서 번 돈으로 남산동 판자촌에 셋집을 얻어 떨어져 있던 가족들과 함께 살게 됨. 남산 판자촌 화재로 이재민이 되어 도봉동을 거쳐 쌍문동 208번지에 정착
1969년 남편 전상수가 뇌출혈로 사망
1970년께 아들 전태일에게 근로기준법을 배움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이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진행하며 분신 항거
1970년 11월 27일 <청계피복노동조합> 결성
1971년 동화시장 후생식당에서 노동자를 위해 국수 삶아 주는 일을 함
1974년께 일제 강점기에 헤어져 연락이 끊긴 오빠가 일본에서 찾아옴
1975년 근로 시간 단축 농성, 1976년 시다 임금 직불제 농성 등 숱한 투쟁에 참여
1976년 4월 16일 노동교실 실장
1976년 7월 25일 동일방직 노동조합 탄압에 맞서 연대 투쟁
1977년 7월 22일 민청학련 수배자 장기표 재판과 관련하여 법정모독죄로 구속되어 실형 1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름
1979년 8월 11일 YH노동자 신민당사 농성투쟁에 연대
1980년 봄 청계노조 임금인상 투쟁을 하며 대학교에 초청되어 반독재 민주화 투쟁 강연
1980년 5월 17일 계엄령으로 수배
1980년 10월 30일 포고령 위반으로 구속 수감되어 징역 1년을 선고 받고, 그해 12월 12일 형 집행면체로 석방
1981년 1월 30일 계엄당국에 의해 해산된 청계피복노동조합의 복구를 위해 벌인 아프리 사무실 점거노성 사건으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계엄법 위반으로 2월 9일 구속 수감되어 징역 10월을 선고받아 옥고 치름
1983년 6월 20일 <전태일 평전><돌베개 펴냄> 출판
1984년 4월 8일 청계피복노동조합 복구 후, 노동조합 고문을 맡음. 이후 1985년 9월부터 청계노조 합법성 쟁취 대회를 학생들과 연대하여 동대문 일대에서 거리시위 등 전개
1985년 12월 12일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공동의장
1986년 3월 17일 구로공단 신흥정밀 박영진이 분신 항거하자 병원으로 달려가 유언을 들음
1986년 8월 12일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현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유가협)를 건설하고 초대 회장을 맡아 1993년까지 역임
1987년 8월 27일 거제도 대우조선 이석규 장례투쟁에 참석하여 장례위원장을 맡았다는 이유로 내사를 받아 수배.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 이후 쌍문동 집에서 연행되었다가 석방
1988년 6월 26일 <선한 마리아인상>을 받음
1988년 11월 17일 기독교회관에서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농성을 135일간 전개
1989년 1월 5일 대통령 선거 부정을 폭로한 이동균 대위 양심선언 투쟁을 조직
1989년 1월 20일 <전국민족민주연합>이 발족, 고문으로 추대
1989년 3월 범민족대회 판문점 예비회담 남측대표로 참가하려다 불구속 입건
1989년 12월 시화전을 열어 유가협의 보금자리인 ‘한울삶(창신동 소재)’을 마련함
1990년 4월 18일 제1회 <사월혁명상>을 받음
1993년 5월 <전국해고자협의회 지원대책위원회> 상임의장
1994년 5월 1일 <영화 전태일 제작위원회> 결성
1996년 2월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베를린영화제 출품으로 독일을 방문하여 교민 상대로 강연회 등을 진행
1998년 11월 4일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과 민주화명예회복법 제정’을 위해 국회 앞에서 422일간 천막농성
1999년 11월 30일 이소선 구술, 민종덕이 정리한 <어머니의 길>(돌베개 펴냄) 출판
2000년 11월 12일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노동조건 개악 저지를 위한 2000 전국 노동자대회’에 참석하여 노동자 단결을 촉구하는 연설
2001년 10월 27일 ‘근로기준법 개악 저지와 노동기본권 쟁취 결의대회’에 참석하여 격려사
2003년 10월 17일 한진 중공업 김주익, 곽재규 장례 투쟁에 참여하여 파업을 이유로 노동자의 임금을 가압류하는 기업주와 정부를 규탄하는 발언
2005년 6월 18일 구로동맹파업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연대사
2005년 9월 30일 청계천 버들다리에 전태일 동상 건립
2006년 4월 11일 ‘칠팔십년대 노동탄압규명 진실 규명 기자회견’ 참석하여 성명 발표
2006년 5월 14일 평택에서 열린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집회 참석하여 격려 연설
2007년 5월 1일 창원에서 열린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에 참관하여 이북 노동자들 만남
2007년 8월 20일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성명 발표
2007년 11월 15일 삼성 해고자 김성환에게 영등포 교도소에서 전태일 노동상 수여
2007년 11월 23일 이랜드 뉴코아 노동자 농성중인 명동성당 지지 방문
2008년 3월 26일 참여연대 강당에서 열린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기자회견에 참석하여 성명 발표
2008년 6월 기륭 노동자 단식 농성장 방문. 기륭문제 해결을 위한 집회 및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노동정책 규탄과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단결을 촉구하는 연설
2008년 12월 5일 팔순기념 헌정문집 <조선 질경이>(아름다운 전태일 펴냄) 및 이소선 구술, 오도엽이 쓴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후마니타스 펴냄) 출판 기념회
2008년 2월 4일 한나라당을 항의방문하여 이명박 정권의 과거사 위원회 통폐합을 규탄
2008년 12월 6일 이소선 어머니 팔순 맞이함
2009년 2월 28일 유가협 고문으로 추대
2009년 5월 8일 용산참사 현장을 찾아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이명박 정권을 규탄
2010년 11월 13일 전태일 40주기
2011년 9월 3일 오전 11시 45분경, 양대노총 위원장과 가족, 지인들이 함께하는 가운데 82세를 일기로 운명하심.
2020년 제33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모란장 수여
1933년 대구에서 농민운동과 항일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 이성조씨가 일제에 의해 학살
1945년 봄 근로정신대로 대구 칠성동 방직공장으로 끌려가 강제노역 중 해방직전 공장을 탈출하여 칠곡 고모댁에서 숨어 있다가 해방을 맞음
1947년 여름 대구 남산동에서 봉제 공장을 하던 전상수씨와 결혼
1948년 8월 26일(음력) 장남 전태일을 출산했고, 이후 태삼, 순옥, 순덕을 낳아 슬하에 2남2녀 둠
1950년 전쟁 직전 부산으로 이사, 남편 미군부대에서 옷 수선
1954년 남편의 사업 실패로 서울로 이사. 염천교 주변에 살며 팥죽장사, 채소장사 등을 함
1960년 남대문 대도시장에서 옷 공장을 하던 남편이 브로커에 속아 사업 망함. 이후 용두동 천막촌에서 생활을 하다 대구로 감
1964년 생계를 위해 이소선 홀로 서울로 와서 식당에서 일하다 병을 얻어 요양한 뒤, 중앙시장에서 우거지 장사를 하며 주변 거지 아이들을 자식처럼 돌봄
1965년 장사를 해서 번 돈으로 남산동 판자촌에 셋집을 얻어 떨어져 있던 가족들과 함께 살게 됨. 남산 판자촌 화재로 이재민이 되어 도봉동을 거쳐 쌍문동 208번지에 정착
1969년 남편 전상수가 뇌출혈로 사망
1970년께 아들 전태일에게 근로기준법을 배움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이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진행하며 분신 항거
1970년 11월 27일 <청계피복노동조합> 결성
1971년 동화시장 후생식당에서 노동자를 위해 국수 삶아 주는 일을 함
1974년께 일제 강점기에 헤어져 연락이 끊긴 오빠가 일본에서 찾아옴
1975년 근로 시간 단축 농성, 1976년 시다 임금 직불제 농성 등 숱한 투쟁에 참여
1976년 4월 16일 노동교실 실장
1976년 7월 25일 동일방직 노동조합 탄압에 맞서 연대 투쟁
1977년 7월 22일 민청학련 수배자 장기표 재판과 관련하여 법정모독죄로 구속되어 실형 1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름
1979년 8월 11일 YH노동자 신민당사 농성투쟁에 연대
1980년 봄 청계노조 임금인상 투쟁을 하며 대학교에 초청되어 반독재 민주화 투쟁 강연
1980년 5월 17일 계엄령으로 수배
1980년 10월 30일 포고령 위반으로 구속 수감되어 징역 1년을 선고 받고, 그해 12월 12일 형 집행면체로 석방
1981년 1월 30일 계엄당국에 의해 해산된 청계피복노동조합의 복구를 위해 벌인 아프리 사무실 점거노성 사건으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계엄법 위반으로 2월 9일 구속 수감되어 징역 10월을 선고받아 옥고 치름
1983년 6월 20일 <전태일 평전><돌베개 펴냄> 출판
1984년 4월 8일 청계피복노동조합 복구 후, 노동조합 고문을 맡음. 이후 1985년 9월부터 청계노조 합법성 쟁취 대회를 학생들과 연대하여 동대문 일대에서 거리시위 등 전개
1985년 12월 12일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공동의장
1986년 3월 17일 구로공단 신흥정밀 박영진이 분신 항거하자 병원으로 달려가 유언을 들음
1986년 8월 12일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현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유가협)를 건설하고 초대 회장을 맡아 1993년까지 역임
1987년 8월 27일 거제도 대우조선 이석규 장례투쟁에 참석하여 장례위원장을 맡았다는 이유로 내사를 받아 수배.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 이후 쌍문동 집에서 연행되었다가 석방
1988년 6월 26일 <선한 마리아인상>을 받음
1988년 11월 17일 기독교회관에서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농성을 135일간 전개
1989년 1월 5일 대통령 선거 부정을 폭로한 이동균 대위 양심선언 투쟁을 조직
1989년 1월 20일 <전국민족민주연합>이 발족, 고문으로 추대
1989년 3월 범민족대회 판문점 예비회담 남측대표로 참가하려다 불구속 입건
1989년 12월 시화전을 열어 유가협의 보금자리인 ‘한울삶(창신동 소재)’을 마련함
1990년 4월 18일 제1회 <사월혁명상>을 받음
1993년 5월 <전국해고자협의회 지원대책위원회> 상임의장
1994년 5월 1일 <영화 전태일 제작위원회> 결성
1996년 2월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베를린영화제 출품으로 독일을 방문하여 교민 상대로 강연회 등을 진행
1998년 11월 4일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과 민주화명예회복법 제정’을 위해 국회 앞에서 422일간 천막농성
1999년 11월 30일 이소선 구술, 민종덕이 정리한 <어머니의 길>(돌베개 펴냄) 출판
2000년 11월 12일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노동조건 개악 저지를 위한 2000 전국 노동자대회’에 참석하여 노동자 단결을 촉구하는 연설
2001년 10월 27일 ‘근로기준법 개악 저지와 노동기본권 쟁취 결의대회’에 참석하여 격려사
2003년 10월 17일 한진 중공업 김주익, 곽재규 장례 투쟁에 참여하여 파업을 이유로 노동자의 임금을 가압류하는 기업주와 정부를 규탄하는 발언
2005년 6월 18일 구로동맹파업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연대사
2005년 9월 30일 청계천 버들다리에 전태일 동상 건립
2006년 4월 11일 ‘칠팔십년대 노동탄압규명 진실 규명 기자회견’ 참석하여 성명 발표
2006년 5월 14일 평택에서 열린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집회 참석하여 격려 연설
2007년 5월 1일 창원에서 열린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에 참관하여 이북 노동자들 만남
2007년 8월 20일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성명 발표
2007년 11월 15일 삼성 해고자 김성환에게 영등포 교도소에서 전태일 노동상 수여
2007년 11월 23일 이랜드 뉴코아 노동자 농성중인 명동성당 지지 방문
2008년 3월 26일 참여연대 강당에서 열린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기자회견에 참석하여 성명 발표
2008년 6월 기륭 노동자 단식 농성장 방문. 기륭문제 해결을 위한 집회 및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노동정책 규탄과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단결을 촉구하는 연설
2008년 12월 5일 팔순기념 헌정문집 <조선 질경이>(아름다운 전태일 펴냄) 및 이소선 구술, 오도엽이 쓴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후마니타스 펴냄) 출판 기념회
2008년 2월 4일 한나라당을 항의방문하여 이명박 정권의 과거사 위원회 통폐합을 규탄
2008년 12월 6일 이소선 어머니 팔순 맞이함
2009년 2월 28일 유가협 고문으로 추대
2009년 5월 8일 용산참사 현장을 찾아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이명박 정권을 규탄
2010년 11월 13일 전태일 40주기
2011년 9월 3일 오전 11시 45분경, 양대노총 위원장과 가족, 지인들이 함께하는 가운데 82세를 일기로 운명하심.
2020년 제33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모란장 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