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영기동지 11주기 추모제
○ 일 시: 2015년 8월 2일(금) 오전 11시
○ 장 소: 대구 현대공원묘역
1966년 출생
1988년 대구새로운청년회 준비위원
1992년~1994년 대구새로운청년회 회장, 대구경북청년단체대표자협의회 회장
1993년 한국청년단체대표자협의회 조국통일위원장, 통일선봉대 동군 총대장
1994년 구국전위사건으로 구속, 4년 선고
1998년 출감
1999년~2002년 민주주의민족통일 대구경북연합 집행위원장
2002년 대구경북통일연대(준) 집행위원장
2003년 대경연합 의장, 범민련 대경연합 감사
2004년 민주주의민족통일대구경북연합 의장, 대구경북민중연대 공동대표 겸
상임집행위원장, 대구경북통일연대 상임공동대표
2004년 8월 3일 밤 11시 57분 운명
동지의 삶과 죽음
’66년 대구에서 출생한 동지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 과자나 실컷 먹어보자며 과자공장 노동자가 되었다. 채이고 얻어맞으며
굴러다니다 제법 대우받는 기술자가 된 동지가 식민지 땅 군사독재의 슬픈 노동시장에서 마침내 터득한 진리는 노동해방 민중해방은 자주 민주
통일세상이라야 성취할 수 있다는 신념이었다. 이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을 부활코자 투쟁의 선두에 선 동지는 구국전위사건으로 4년의 옥고를
치르고 나서 갓 출옥한 처지였음에도 민주주의민족통일대구경북연합에서 횃불을 들었다. 그리고 6.15시대를 맞이하여 전국연합의 최대현안 사업인
통일연대와 민중연대의 지역조직을 꾸리는데 그 누구보다 천신만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동지는 복잡한 정세를 명쾌하게 읊어내는 달변가는
아니었어도, 정치적 입장의 첨예한 대립을 정리하고 이끌어가는 논리정연한 사람은 아니었어도 해야 할 일과 방향이 정해지면 불같이 자신을 던져
뚫어내는 개척자, 선두자였다. 대구경북지역의 민족민주운동은 동지가 움직이는 만큼 만들어진 역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