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송광영 열사 38주기 및 이오순 선생 추모제
○ 일 시: 2023년 10월 22일(일) 오전 11시
○ 장 소: 민주화운동기념공원
행사 정보
일요일
2023-10-22
민주화운동기념공원
지도에서 보기
인물 정보
송광영(당시 27세)
1958년 10월 3일 전남 광주 출생
1974년 2월 서울 경신중학교 졸업
1975년~76년 청계노조 활동
1976~1979년 인천에서 신문팔이 및 Y셔츠장사 등에 종사
1979년 방위병 입대
1982년 8월 고등학교 검정고시 합격
1984년 경원대학 법학과 입학
1984년 2학기 실존주의 철학연구회 창설
1985년 1학기 경제문제연구회 창설
1985년 9월 17일 군사독재에 항거 분신
1985년 10월 21일 새벽 1시45분경 운명
1974년 2월 서울 경신중학교 졸업
1975년~76년 청계노조 활동
1976~1979년 인천에서 신문팔이 및 Y셔츠장사 등에 종사
1979년 방위병 입대
1982년 8월 고등학교 검정고시 합격
1984년 경원대학 법학과 입학
1984년 2학기 실존주의 철학연구회 창설
1985년 1학기 경제문제연구회 창설
1985년 9월 17일 군사독재에 항거 분신
1985년 10월 21일 새벽 1시45분경 운명
1985년 9월17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분신을 한 그는 “학원악법 철폐하고 독재정권 물러가라!”, “광주학살 책임지고 전두환은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질주하다 쓰러졌다. 9월18일 병상에 찾아온 민주인사와 학생에게 “왜 오셨습니까 오시지 말고 밖에서 싸워 주십시오”라며 투쟁을 독려하였다. 10월21일 새벽에 운명하였고, 학교에서는 분향소를 설치하려고 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분향소를 설치하지 못하고 장례식 또한 경찰의 방해로 영결식 없이 매장하였다.
동지를 생각하며
<한없이 보고 싶은 광영아!>
내가 어떻게 하면 너를 잊을는지....
눈만 감아도 너의 모습이 나를 찾아오는구나.
먹을 것, 입힐 것이 제대로 없어
너를 고생시키며 키운 일이 어미를 아프게 하고,
병상에서 그토록 아픔을 참으면서 투병하던
너의 모습을 생각하면 눈물이 절로 나는구나.
너의 죽음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알지 못하는 어미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싹이 나듯이
너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좋은 결과를 낳는 씨앗이 되었으면
바라는 마음, 믿는 마음으로 보고 싶음을 위로하고 싶구나
배운 것 없는 이 어미는 네가 죽었을 당시는 많은 고생으로
너를 키운 어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어미를 두고 간 네가
밉기만 하였지만 너의 장례식 때 경찰들과 싸우면서
네가 왜 죽어야 했는지 어렴풋이나 알 것 같구나
과연 어떤 사람이 민족을 위해 죽을 수 있을까?
없는 자를 보면 돕고 싶어하고,
교통사고를 당한 친구를 위해 10일동안 몸을 돌보지 않고
뛰어 다니던 모습,
학원 다닐 때 장학금을 타서 신문팔이 소년을 주고 왔다 말하던 모습,
어미의 팔, 다리를 주무르면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면 꼭 효도할게요
하던 네 모습
너의 육체는 비록 어미 곁을 떠났지만
영혼 만큼은 진정한 민주주의 이 나라를 만들고 싶어하는 너의 뜻을
이루어 주기 바라는 마음이다.
보고 싶구나 광영아.
<송광영 동지의 어머니 이오순 여사가 쓴 글>
당시 유인물
아! 송광영 동지여! 우리의 투사여!
-송광영 동지의 뜻을 받들어 학원 안정법 제정을 온몸으로 분쇄하자-
9월17일 오후 2시30분경 경원대학 법학과 2학년인 송광영군이 온몸에 석유를 뿌리고 분신 자살을 기도했다. 그는 몸에 불을 붙인 채 시커먼 연기를 뒤로 하고 달려나가며 “학원안정법 철회하고 학원 탄압 중지하라” “민중생존권 수호하고 독재정권 타도하자”고 외쳤으며 학교 직원이 소화기로 불을 진압한 뒤에 온몸이 처절하리 만큼 불타 쓰려져서도 “학원 안정법 철회하라!”, “학원 탄압 중지하라!”, “군부독재 물러가라!”고 목이 터져라 외쳐댔다. 주위에 모인 사람들에게 애국가를 불러 달라고 요청하여 주위에 모인 학우들이 혹은 울며 혹은 무릎을 꿇은 채 어깨를 걸고 쏟아지는 빗속을 뛰면서 그의 유언일지도 모르는 “학원 안정법 철폐하라, 민중 생존권 수호하라, 군부독재 물러가라”라는 시위를 벌였다.
그는 전남 광주에서 1958년에 태어났다. 그는 검정고시 출신이었으며, 중졸 후 평화시장 통일사등에서 재단사로 일했다. 회사 재직시에도 민중 생존권 수호를 위해 활발한 노조 활동을 했다. 그는 동지들과 모인 자리이면 언제나 광주 학살에 대한 현 정권의 책임을 묻고 즉각 퇴진을 요구했었다. 그의 분신은 민중의 모든 삶에 기생하는 매판 세력과 그들에 의해 조정되는 매판관료들과 잔악한 현 군부 독재정권에 대한 처절한 항거였으며, 어용 언론에 눈먼 대중과 학우들에 대한 피맺힌 절규였다. 그는 지금 독재정권의 하수인들에 의해 성남병원에서 서울대병원을 거쳐 기독병원에 감금되어 있다. 저들은 그의 빛나는 투쟁이 알려지는게 두려운 것이다. 저들의 저지를 뚫고 그를 방문한 친지 동료들에 의하면 그는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붓고 생사의 기로에 서 있으면서도 “독재정권 물러가라”, “학원 안정법 철회하라!”, “민중생존권 보장하라!”고 외쳐대고 있다 한다.
아! 송광영 동지여 우리의 투사여!
우리는 당신의 투쟁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뜻에 따라 저 간악한 전두환 독재정권의 타도를 위해 온몸을 불사를 것이다.
이 땅의 모든 학생, 노동자, 민주 인사들이여 송광영 동지의 뜻을 받들어 “학원 안정법 제정”을 온몸으로 분쇄하자.
송광영 동지 만세!!
1985년 9월20일
경원대 민주학우 일동
동지를 생각하며
<한없이 보고 싶은 광영아!>
내가 어떻게 하면 너를 잊을는지....
눈만 감아도 너의 모습이 나를 찾아오는구나.
먹을 것, 입힐 것이 제대로 없어
너를 고생시키며 키운 일이 어미를 아프게 하고,
병상에서 그토록 아픔을 참으면서 투병하던
너의 모습을 생각하면 눈물이 절로 나는구나.
너의 죽음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알지 못하는 어미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싹이 나듯이
너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좋은 결과를 낳는 씨앗이 되었으면
바라는 마음, 믿는 마음으로 보고 싶음을 위로하고 싶구나
배운 것 없는 이 어미는 네가 죽었을 당시는 많은 고생으로
너를 키운 어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어미를 두고 간 네가
밉기만 하였지만 너의 장례식 때 경찰들과 싸우면서
네가 왜 죽어야 했는지 어렴풋이나 알 것 같구나
과연 어떤 사람이 민족을 위해 죽을 수 있을까?
없는 자를 보면 돕고 싶어하고,
교통사고를 당한 친구를 위해 10일동안 몸을 돌보지 않고
뛰어 다니던 모습,
학원 다닐 때 장학금을 타서 신문팔이 소년을 주고 왔다 말하던 모습,
어미의 팔, 다리를 주무르면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면 꼭 효도할게요
하던 네 모습
너의 육체는 비록 어미 곁을 떠났지만
영혼 만큼은 진정한 민주주의 이 나라를 만들고 싶어하는 너의 뜻을
이루어 주기 바라는 마음이다.
보고 싶구나 광영아.
<송광영 동지의 어머니 이오순 여사가 쓴 글>
당시 유인물
아! 송광영 동지여! 우리의 투사여!
-송광영 동지의 뜻을 받들어 학원 안정법 제정을 온몸으로 분쇄하자-
9월17일 오후 2시30분경 경원대학 법학과 2학년인 송광영군이 온몸에 석유를 뿌리고 분신 자살을 기도했다. 그는 몸에 불을 붙인 채 시커먼 연기를 뒤로 하고 달려나가며 “학원안정법 철회하고 학원 탄압 중지하라” “민중생존권 수호하고 독재정권 타도하자”고 외쳤으며 학교 직원이 소화기로 불을 진압한 뒤에 온몸이 처절하리 만큼 불타 쓰려져서도 “학원 안정법 철회하라!”, “학원 탄압 중지하라!”, “군부독재 물러가라!”고 목이 터져라 외쳐댔다. 주위에 모인 사람들에게 애국가를 불러 달라고 요청하여 주위에 모인 학우들이 혹은 울며 혹은 무릎을 꿇은 채 어깨를 걸고 쏟아지는 빗속을 뛰면서 그의 유언일지도 모르는 “학원 안정법 철폐하라, 민중 생존권 수호하라, 군부독재 물러가라”라는 시위를 벌였다.
그는 전남 광주에서 1958년에 태어났다. 그는 검정고시 출신이었으며, 중졸 후 평화시장 통일사등에서 재단사로 일했다. 회사 재직시에도 민중 생존권 수호를 위해 활발한 노조 활동을 했다. 그는 동지들과 모인 자리이면 언제나 광주 학살에 대한 현 정권의 책임을 묻고 즉각 퇴진을 요구했었다. 그의 분신은 민중의 모든 삶에 기생하는 매판 세력과 그들에 의해 조정되는 매판관료들과 잔악한 현 군부 독재정권에 대한 처절한 항거였으며, 어용 언론에 눈먼 대중과 학우들에 대한 피맺힌 절규였다. 그는 지금 독재정권의 하수인들에 의해 성남병원에서 서울대병원을 거쳐 기독병원에 감금되어 있다. 저들은 그의 빛나는 투쟁이 알려지는게 두려운 것이다. 저들의 저지를 뚫고 그를 방문한 친지 동료들에 의하면 그는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붓고 생사의 기로에 서 있으면서도 “독재정권 물러가라”, “학원 안정법 철회하라!”, “민중생존권 보장하라!”고 외쳐대고 있다 한다.
아! 송광영 동지여 우리의 투사여!
우리는 당신의 투쟁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뜻에 따라 저 간악한 전두환 독재정권의 타도를 위해 온몸을 불사를 것이다.
이 땅의 모든 학생, 노동자, 민주 인사들이여 송광영 동지의 뜻을 받들어 “학원 안정법 제정”을 온몸으로 분쇄하자.
송광영 동지 만세!!
1985년 9월20일
경원대 민주학우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