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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 세계가 부처다. 지선 스님 1

중생 세계가 부처다. 지선 스님 1

눈이 내리는 겨울밤이다. 소쿠리며 덕석, 멍석을 만드느라 새끼를 꼬는 동네 노인들로 사랑방이 그득하다. 호롱불 밑에서는 까까머리 소년이 각설이 떼 타령조로 노래하듯이 옛날 이야기책을 읽는다. 소죽을 끓이느라 방구들이 쩔쩔 끓는지라 엉덩이를 들썩인다. 소년은 어른들이 시킨 대로 유충열전, 전우치전, 춘향전을 입으로 중얼대지만 몹시 졸린다. 하지만 뎅그렁 뎅그렁 방울 소리를 내면서 소죽을 맛나게 먹는 소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편편한 이로 짚을 갈아먹는 싸그륵싸그락 소리는 무를 땅에서 뽑을 때 나는 소리처럼 정겹다.

"아버지가 장에서 사온 이야기책에 홍길동, 사명대사, 암행어사, 임금님, 장군들이 주인공으로 나와요. 하나같이 영웅호걸들이야. 도술 부리는 환상적인 얘기에 푹 빠지다보니 영웅의식에 사로잡혔지. 게다가 윤봉길, 안중근 애국지사나 열사들 얘기를 들으면서 항일독립운동에 매료됐고, 그 탓인지 불의를 보면 못 참았어요. 어려서부터 일이야 참 징글징글하게 했지만 출가하기 전에 몸서리치도록 싫었던 게 밤낮으로 가마니를 짜는 일이었어. 쉬는 시간도 없는 중노동이지. 입으로 코로 먼지를 많이 마시는 데다 잠을 못 자니 어린 나로서는 죽도록 싫었어요. 내 가슴속에 깊이 못 박힌 저항심의 뿌리는 어릴 적 하기 싫은 일에 대한 반항심이었는지도 몰라요."


6.10항쟁, 승목 입고 성당 종탑에 올라가다

1987년 6월 10일 오전 10시. `박종철군 고문살인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날, 서울 성공회 대성당 꼭대기에 잿빛 승복을 입은 승려 지선이 올라갔다. 그리고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여기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입니다. 지금 이 시간, 민정당은 잠실체육관에서 노태우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태우는 대통령 후보 자격이 없으므로 국민의 이름으로 무효임을 선언합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통령직선제로 헌법을 개헌해야 합니다!"

피를 토하듯 세 번이나 되풀이해서 방송을 해대기 무섭게 경찰은 최루탄을 엄청나게 퍼부어댔다. 사방에서 시민들의 함성이 터졌다. 성당과 시청 주변은 삽시간에 뿌연 연기가 자욱했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지선은 여기가 내가 죽을 자리로구나, 하는 생각을 언뜻 했다.

경찰의 감시망을 뚫고 들어온 국민운동본부 의장단들과 함께 지선은 남대문 경찰서로 끌려갔다. 거기서 신상조사를 받고 다시 동대문 경찰서에서 사진을 찍은 다음 한 사람씩 차에 실려 사라졌다. 검은 치프차에 오르자 눈이 가려진 지선은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차는 쉬지 않고 이리 저리로 달렸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몰랐다. 속으로 어디로 끌고 가서 감쪽같이 죽이려는구나,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어디를 얼마나 헤매다 온 것일까. 한참을 가다가 수사관이 내리라고 했다. 그러더니 허리춤을 붙잡고 이리 가라, 저리로 가라고 인형을 조종하듯이 명령했다. 철제 계단을 올라가서, 내처 걷다가 복도를 지나자 철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등짝을 후려치는 바람에 떠밀려 들어간 그 방에서 지선은 눈가리개를 풀었고, 깜짝 놀랐다.

온 사람이 빨갰다. 바닥이고 천장이고 방음장치를 한 벽도 빨간 색이었다. 기다랗고 사방이 시뻘건 방이었다. 눈에 작은 욕조가 들어왔다. 그 옆에는 칠성판이 보였고,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감시 장치가 구석에 있었다. 남영동 대공분실임을 직감했다. 순간 공포가 엄습했다. 아, 박종철이 여기서 죽었구나! 소름이 끼쳤다. 그 와중에 죽음이 퍼뜩 스쳤다. 나도 여기서 고문을 당하고 죽겠구나. 지선은 자신의 운명이 눈앞의 발등에 떨어졌음을 알아챘다. 그와 더불어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왜 불안해하지? 신도들 앞에서는 생사를 초월한 것처럼 마구 떠들어대지 않았나. 내 생명이 여기서 떨어지는구나 생각하니까 그게 아니었어요. 공포감에 어쩔 줄을 모르는 나 자신을 본거야. 아, 내가 사기꾼이었구나, 신도들에게 거짓말만 늘어놨구나,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앵무새노릇만 했다고 생각하니까 몹시 죄책감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래서는 안되겠다, 기왕 죽는 거, 이 나라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한 목숨 바치자, 지금까지 잘 먹고 잘 살면서 승려의 의무를 못한 죄를 참회하자, 민족종교인 불교의 승려들이 중생을 위해 제 역할을 못 했으니 그 죄가 크다, 크게 죽는 것이 진짜 사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바닥에 앉아서 참선에 들어갔어요. 다시 중노릇하자, 다시 공부하자고 결심을 굳혔지요. 그제야 마음이 평온해졌어요."


 세상에 눈뜨다

영광 불갑사 주지로 있을 무렵 지선은 영광, 장성, 함평, 담양의 가난한 아이들을 모아 가르쳤다. 그 절집 학교는 이내 새마을운동 모범사례로 뽑혔다. 그리고 조계종 사서실장으로 있던 70년대 말에는 조계종 23교구 본사 제주도 관음사 주지로 내려갔다. 제주도정 자문위원을 지낸 승려 지선을 광주민중을 학살한 전두환 쿠데타군은 내버려두지 않았다.

1980년 10월 27일 새벽 4시, `불교정화`라는 미명하에 신군부는 착검한 채 전국의 주요 사찰을 기습했다.  이른바 불교를 탄압한 `X45작전`이었다. 그들은 군홧발로 법당을 짓밟고 스님들을 마구잡이로 두들겨 패고 잡아갔다. 그리고 갖은 고문 끝에 스님 18명을 구속하고 32명을 제명했다.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온 1600여 년 세월 동안 일찍이 겪어보지 않았던 만행이었다. 간첩이 숨어있다. 부정축재자를 색출한다. 군 기피자와 범법자를 찾아낸다. 불교 시비를 가린다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신군부는 쿠데타를 합리화하고, 광주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법란을 서슴지 않았다. 종단의 총무원장과 종정까지 다 잡혀갔고 불교는 그날부터 법죄집단으로 내몰렸다.

제주시 포교당에서 자고 있던 지선은 새벽 3시에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문을 열자, 새까만 잠바 차림의 사내들이  서 있었다. 누구냐고 묻자, 그들은 어디로인가 가자고 했고, 왜 가야하는지를 물었던 지선은 그들이 권총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다. 5.18을 떠올리고 심상치 않게 여겼던 그의 염려는 보안대로 가자마자 맞아떨어졌다. 그곳에서 4,5일 동안 밤낮을 안 가리고 승려 지선은 갖은 고문을 당했다. 말로 그릴 수 없는 모욕과 수모를 당했다. 수사관들은 불교 내부 비리를 고발하라고 윽박질렀고, 서울에서 싸우고 있는 종단 지도자들의 비리를 폭로하라고 매질을 가했다. 이것저것 증거랍시고 닥치는 대로 서류를 들이대면서 폭력을 휘둘렀다.

법란을 겪고, 광주 문빈정사에 머문 그에게 시민들은, "중놈들이 썩었다. 군인들 위해 조찬기도회나 하고 말이지."라고 욕을 퍼부었다. 지선은 절집에 똥오줌을 싸지르는 시민들을 만나 불교가 전두환 쿠데타군에게 당한 사정을 설명했다. 그리고 대학생불교연합회 학생들과 청년회 신도들, 시민운동단체 사람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노릇을 제대로 할 것인가, 이대로 집어치울 것인가! 지선은 왜 불교가 권력의 희생양이 되었는지를 심각하게 물었다. 호국불교라면서 왜 늘 당하기만 하는지. 이 따위 세상에서 승려생활을 해야 되는지 의문을 풀어야 했다.

세상을 알아야겠다고 작심한 지선은 그날부터 사회과학 서적을 손수레로 한 그득 사다 날랐다. 몇 달 동안 책에 푹 파묻혔다. 아울러 일제하 광주에서 학생운동을 했던 독립운동가들을 만나면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생생하게 공부했다. 1984년 `무등민족문화회`를 만든 지선은 회보 `무등`을 발간했다.

불교도 이론과 조직이 있어야 함을 절감한 그는 민족과 함께, 민중과 함께, 역사와 함께 즉 사회적 실천을 바탕으로 삼기에 이르렀다. 김지하, 문병란, 송기숙, 홍남순, 백기완, 고은, 신용하 등 재야인사를 초청해서 강연회를 열었고, 시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 뒤로 지선은 정토회 상임지도위원과 민불련 그리고 민통련 부의장을 지내면서, 절집에 머물기보다는 민족민주운동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밑바닥 힘은 신앙심

1987년 3월 초 박종철이 고문으로 죽은 지 49일째. 불교의식으로 억울하게 죽은 영혼을 위로해주리라 마음먹은 지선은 조계사 건너편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나 재를 올리기는커녕 절집으로 들어가는 길조차 막혀 있었다. 조계사 정문은 굳게 닫혔지, 경찰은 겹겹이 에워쌌지. 도무지 틈이 안 보였다. 가사와 장삼만 걸친 채 아무도 없는 길을 걷덛 지선은 갑자기 냅다 뛰기 시작했다. 조계사 앞 그 큰 도로가 텅 비어 있었다. 막아서는 전경을 밀치고 무작정 뛰어 들어갔다. 그러자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청년학생들 2,3백 명이 함성을 지르며 우루루 따라 붙었다.

지선은 조계사 정문에서 문을 열라고 외쳤다. 함께 한 스님들도 여럿이었다. 그러나 굳게 닫힌 절집 문은 열리지 않았다. 신도들은 문을 열어주기는커녕 물과 모래, 그리고 갖가지 오물을 던졌다. 마냥 문을 붙들고 있을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조계사 문 앞에서, 그야말로 노상에서 약식으로 5분 만에 천도재를 후딱 해치웠다. 그러자 최루탄이 그 비좁은 골목으로 쏟아졌다. 하늘을 가릴 만큼 퍼붓는 바람에 천도재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모두 그 자리에서 쓰러져버렸다. 가사와 장삼으로 얼굴을 감쌌지만 지선이라고 해서 버틸 재간이 없었다.

정신을 읽고 쓰러졌다가 한참 나중에야 깨어나 눈을 뜨자, 경찰들이 빙 둘러서서 지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쓰러진 꼴이 불쌍했던지 전경들이 어깨를 부축해주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지휘관인 듯한 경찰이, "왜 스님들이 길바닥에서 이러냐고(지선의 눈에 그 경찰 간부는 신도로 보였다.), 이렇게 개죽음을 하면 무엇하냐고." 고래고래 악을 써댔다. 전경들이 "경찰서에 데려갈까요?" 하고 묻자, 그 간부 경찰은 "데려갈 것 없어! 여기서 놔 줘!"라고 단호하게 명령했다. 그 자리에는 최루탄에 범벅이 된 지선 혼자뿐 아무도 없었다.

"쓰러졌다가 죽는 줄 알았지. 겨우 숨을 쉬고 깨어났어요. 그 순간 선방에서 참선하는 것하고 이렇게 민주화운동 하는 것하고 무엇이 다른가 하는 생각이 퍼뜩 스쳤어요. 아, 이것이 진짜로 살아있는 `활구선(活句禪)`이로구나, 공의 실현, 무의 실현이 바로 이 자리로구나. 생사가 없는 경지가 이렇게 실현되는 것이로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신앙심이 나를 받쳐주었음을 나중에야 깨달았지요."
 

길에서 낳고 길에서 실천하다

불교란 무엇인가? 물음을 던진 지선은 불교유신론에서 만해 스님께서 하신 말씀 한 구절을 떠올린다.

"옛사람들은 그 마음을 고요하게 가졌는데 요즘 사람들은 그 처소를 고요하게 가지고 있다. 옛사람들은 그 마음을 움직 않았는데 요즘 사람들은 그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염세 은둔적이고 독선 기신하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

마을, 공장, 학교, 어느 도시에나 인간이 사는 한 모순이 있다. 그것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이다. 그 모순들은 오욕칠정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생길 수밖에 없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업이라고 한다. 그 업(모순)은 인간이 만들기 때문에 인간의 노력(힘)으로 반드시 해결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불교다. 그러므로 역사 안에서 받는 온갖 고통과 소외는 대자유 대해탈로 반드시 전환될 수 있다고 믿고 가르치는 것이 불교다. 승려 지선은 한국 불교가 나아갈 방향을 이렇게 말한다.

"어느 시대나 가진자, 아는 자가 봉사를 하면 민족과 국가의 장래가 밝지만, 가진 자가 부패하면 사회가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니 권력, 지식, 재물, 돈 ..... 골고루 나눠야지요. 무소유라는 말도 그래요. 뭘 갖고 싶은 욕심이지요. 그러나 억만금을 가지고 있어도 나는 관리자일뿐이라는 생각으로 좋은 데 쓰는 것이 진정한 무소유이지요. 모순을 타파하는 것은 업을 참회하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 입에 오르는 생명사상이니, 인드라망, 연기론은 우리가 8,90년대에 벌써 다 꺼냈던 얘기들이지요. 싯다르타로 돌아가서 모든 기득권을 포기한 그를 보면 문제가 풀리지요. 옛날에는 날마다 전쟁을 했고 살아남은 자들은 괴로웠지요. 싯다르타는 인간의 총체적인 고민거리를 짊어진 셈이었어요. 요즘 말로 하면 약소국가의 민족문제, 계급계층문제, 민중생존권문제, 전쟁과 사회문제 따위 온갖 반인간적인 모순을 깨달았지요. 나를 믿으라고 강요하지도 않았고, 신처럼 군림하지도 않았지요. 위대한 화합성이지요. 다만 천민인 민중으로 내려갔어요. 길에서 실천하다 길에서 죽었지요. 부처님은 인간의 업을 타파했어요. 그 옛날에!"

 

글 / 윤 동 수
1960년생
1990년 사상문예운동 겨울호에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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