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성장의 열쇠는 시민이다
민주주의 성장의 열쇠는 시민이다
글 박한나 자유기고가 hanna_p@naver.com
글 성지훈 <워커스> 기자 acesjh@gmail.com
대한민국의 역사가, 한국의 정치사가 날마다 새롭게 쓰이고 있다. 유례없는 인원이 광장으로 나와 촛불을 들었고, 정치권은 눈치 싸움에 여념이 없다. 언론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의혹과 이슈가 등장하고, 상황은 매번 급변한다.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고, 도무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가 없다. 내일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몇 주 뒤 이 글을 읽을 독자에게 이야기를 건네려니 한 글자, 한 문장을 쓸 때마다 곱절로 망설여진다. 그때의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역설적으로 30년 전과 비교하면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정치권은 자신들이 가진 힘을 놓치지 않으려 나라의 안정을 앞세워 반민주적 행태를 일삼고,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거리로 나왔다. 차이가 있다면 현재 광장으로 나온 사람들 손에는 촛불이 들려있다는 정도일 뿐, 또 다른 점을 찾는 것은 난이도가 높은 숨은그림찾기 같다.
1987년 6월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수호를 부르짖었고, 직선제 개헌이라는 분명한 성과도 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었던 걸까? 그 이후로 30년 동안 한국 사회는 전혀 변하지 않았나? 1987년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않았단 말인가? 시민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무력한 것인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렇게 사람들을 만났다. 시민으로서 정치에 참여하고 광장에 나온 사람들과 시민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방법을 찾고 도구와 사례를 만드는 사람들을. 그들은 이야기했다. 변하지 않은 것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성을 쌓고 벽을 만드는 저들뿐이라고. 시민들은 각자의 개성대로 생각과 힘을 키우고 있었노라고. 실패한 것처럼 보였던 순간들이 실은 저들의 성에 상처를 냈다고. 상처에 균열이 생기고 이윽고 무너져버리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그렇다.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어떤 뉴스가 전해지더라도 그것은 과정일 뿐이다. 그것이 시민들의 생각에 반하는 것일지라도 한국 사회의 후퇴는 아닐 테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시민들에 의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므로. 대한민국은 지금, 언젠가 시민 스스로 쟁취할, 시민이 온전히 주권을 누리는 민주주의 사회로 가는 길 위에 있다.
듣도 보도 못한 정치를 만드는 사람들
“전 정알못(정치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에요. 저 같은 사람을 포함한 누구나 자기 목소리를 내고, 하나의 옳음만 인정하는 효율성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서로 각자의 입장에서 여러 옳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결론을 만들고 합의해내는 과정. 그게 민주주의라 생각해요.”
★ 언제나 시민이 주인공인 정치
선거 때면 도와달라고 연신 굽실거리던 정치인들의 고개는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뻣뻣해진다. 헌법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데, 선거 때만 그런 건 아닌지 의문이다. 와글은 이렇게 늘 정치인들의 지지자로 조연에 머물러야 했던 시민이 정치의 주인공이 되는 세상을 꿈꾸는 정치 스타트업이다. 와글와글한 군중의 아우성으로 책임을 지고(Accountable), 시민의 목소리에 반응하고(Responsive), 투명한(Transparent) A.R.T. 정치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와글 창업부터 함께한 천영환 시니어 매니저는 모든 프로젝트를 기획·관리하고 조율하는 와글의 살림꾼이다. 이전까지는 공무원으로서 시민 활동을 지원했던 천 매니저는 정치에 민의가 잘 반영되지 않는 모습을 직접 마주하면서 무력감을 느꼈다. “시민들의 의견은 반영이 안 되고 몇몇 이해 당사자들의 언어는 쉽게 반영이 되는 걸 보면서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을까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정치에 관심이 생겼고 시민들이 행정과 정치에 참여할 수는 없을까 고민하던 중에 이진순 대표님을 만났죠.”
이제야 정치에 대해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는 그는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다양성 인정을 꼽았다. “저희가 주최한 컨퍼런스 때 신기했던 게 다른 나라 친구들은 당적에 제한이 없다는 거였어요. 투표는 여기에 하고, 후원금은 저기에 내고, 캠페인은 또 다른 곳에 참여한대요. 한 개인에게도 여러 이해관계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진보 아니면 보수뿐이니,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시작인 것 같아요.”
★ 와글와글 군중의 목소리가 힘이 있는 정치
2015년 8월 와글이 생긴 이후, 공교롭게도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정치 이슈가 끊이지 않고 등장했다. 그때마다 와글에서는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주체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발 빠르게 움직였다. 지난 20대 총선 때 인기를 모았던 ‘나와 어울리는 정당 찾기’와 최근 화제가 된 ‘박근혜게이트닷컴’ 모두 와글의 작품이다. 그중에서도 시민들이 테러방지법 표결 반대 목소리를 이어갔던 ‘필리버스터닷미’는 천 매니저에게 인상 깊은 프로젝트였다.
작년 2월 천 매니저는 기차 안에서 버니 샌더스 자서전에 실린 그의 필리버스터 발언 요약본을 읽고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필리버스터를 검색했더니 김광진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신기한 마음에 유튜브 생중계 창을 열었고, 200명이었던 시청자가 잠깐 눈을 붙였던 사이 3만 명으로 늘어난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렇게 필리버스터닷미가 만들어졌고 이후 시민들의 모습은 더욱 놀라웠다. 11일 동안 30만 명이 접속해서 남긴 3만 8천여 건의 글에는 테러방지법을 반대하는 저마다의 이유가 논리정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국회의원 응원 멘트라든가 댓글 수준의 짧은 글이 거의 없어 800자로 제한했던 글자 수를 2000자로 늘렸을 정도다. “시민들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큰 힘을 낼 수 있겠구나 실제로 깨닫는 계기가 됐죠.”
그러나 아직까지는 와글의 시민이 주인공이 되는 정치 이야기를 듣고 그게 되겠느냐며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고. “그런 경험이 없으니까 상상하실 수 없는 거죠. 그야말로 ‘듣도 보도 못한 정치’니까요. 하지만 와글 홈페이지나 블로그만 살펴보셔도 이미 많은 사례들이 있어요. 그리고 그것들이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도 알 수 있죠. 이러한 사회적 상상력을 키워가는 데 저희 와글이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광장에 모인 우리의 힘을 믿어요
2018년, 성남시에는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는 공공 의료원이 생긴다. 2003년 본시가지의 종합병원 2개가 동시에 사라진 이후 꼭 15년 만이다. 전국 최초로 주민이 직접 발의해 짓는 공공 의료시설이다. 성남 참여자치시민연대에서 활동하는 임철수 씨는 2003년 성남의 종합병원 폐업 반대 활동부터 시립병원 설립 조례제정 운동까지 성남시 의료공공성 확보 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왔다. 1만 8천여 명 주민들의 뜻을 모아 공공 의료원 설립 조례를 만들기까지의 길었던 과정에 대해 임철수 씨는 “결국 주민들 스스로 자기에게 주어진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말했다.
★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2003년에 성남 본시가지에 있던 종합병원 두 곳이 적자를 이유로 거의 동시에 폐업했어요. 50만에 가까운 인구가 있는 구(舊)도심에 종합병원이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 됐어요. 당시 폐업하는 병원의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폐업 반대 운동이 시작됐는데, 이 운동이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방향이 달라지더니 지역의 의료 공백에 대한 문제로 바뀌었죠.”
‘인하병원 폐업 반대 시민대책위원회’는 6개월 만에 ‘성남 시립병원 설립 추진위원회’로 이름을 바꾸고 주민들의 조례안 발의 서명을 받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1만 3천여 명의 주민 동의를 받아내는 성과를 냈다. 주민들 스스로 신(新)시가지인 분당과의 의료 격차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폐업하는 병원의 인근 주민이었기 때문에 관심이 생겼고, 폐업 반대 집회에 가끔 얼굴을 내미는 정도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러다 누가 시키거나 알려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넓어지고 커지는 논의를 발견했죠. 수많은 사람들이 그 논의에 참여하고 서로를 설득하며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참 놀라웠어요.”
그러나 공공 의료원을 설립하는 데는 여전히 많은 난관이 남아있었다. 시의회는 조례안을 부결했고 시 행정부는 병원 설립을 하염없이 연기했다. 병원 설립이 확정된 이후에는 운영 방식에 따른 이견으로 몸살을 앓았다. 결국 이를 해결해 낸 것도 주민들이 ‘직접’ 나서면서였다.
★ 바꿀 수 있다는 믿음
“성남시의회만 봐도 답답한 경우가 많아요. 주민들의 요구와 바람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고, 당파 싸움만 하고 있거든요. 숫자 싸움에서 유리해지기 위해 시의회 의장직을 안 하려고 몸을 사리거나 당적을 옮겨 다니는 일도 있고요. 중앙정치로 진출하기 위한 당 공천이 걸려 있기 때문에, 시의회 의원들이 지역 국회의원의 수하처럼 구는 경우도 있어요.”
임철수 씨는 진정한 의미에서 지방자치, 주민자치가 이뤄지려면 현행의 지방자치제도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지자체를 중앙정치로의 진출을 위한 교두보쯤으로 여기는 풍토에선 주민들의 의견을 받드는 ‘대의정치’가 이뤄질 수 없다는 지적이다. 그는 결국 주민들이 직접 정치에 관심을 갖고 나서서 행동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상상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정치 참여의 가장 어려운 지점은 먹고사는 문제예요. 특히 성남 같은 도시는 공장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가 인구의 대부분인데 지금 같은 세상에 정치에 참여하라고 말하기가 어렵죠. 그렇지만 평범한 서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하면 달라져도 뭔가 분명히 달라질 겁니다. 병원 노동자들의 복직 투쟁에서 시작해 마침내는 공공 의료원을 만든 것처럼요.”
거리와 광장에 모인 장삼이사의 힘, 그는 어쩔 수 없이 그 힘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87년엔 거리에 나선 우리가 정치인 몇몇에게 힘을 위탁했죠. 결국 30년 후 우리는 다시 광장에 서게 됐어요. 이제는 그런 실수를 다시 하지 말아야겠죠. 광장에 모인 우리의 힘을 믿으면서, 꾸준히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개발합니다
인터넷은 등장과 동시에 우리 삶을 빠르게 파고들어 소통하고 생활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 놓았다. 하지만 시민이 뽑은 대리자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된 정치 문화만큼은 바꾸지 못했다. 인터넷이 등장할 때만 해도 공론장이 만들어지면서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가 보완될 거라는 기대가 컸는데 말이다. 물론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모든 이들의 발언이 의견으로써 기능하는지, 민주적인 의견 교환이 일어나는지 의문도 함께 늘어났다. 인터넷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이 구체적인 의사를 밝히고 보다 의미 있는 합의를 이뤄내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전자 민주주의의 이상은 정말 실현될 수 없는 것일까.
★ 인터넷은 민주주의의 유용한 도구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인정하는 것은 선거라는 규칙을 인정하기 때문이잖아요. 어떤 것을 공신력 있다고 인정할지, 어떤 것을 함께 결정한 것으로 인정할지 논의가 이루어졌고, 그것이 헌법과 법률로 만들어졌죠. 온라인에선 그 작업이 시작되지 않았을 뿐이에요.” 인터넷을 통한 직접 민주주의 실현 가능성을 묻자 ‘빠흐띠’ 권오현 대표는 주저 않고 이렇게 답했다. 온라인상에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규칙과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시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란 이야기다.
이러한 과정에서 현재 문제로 인식되는 인터넷의 부작용도 점차 자정될 것이라고 권 대표는 말한다. “인터넷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단 이야기에 인터넷을 빼고 다른 걸 넣어도 똑같아요. 심지어 칼을 넣어도 똑같죠. 칼은 위험하지만 유용한 도구예요. 인터넷도 마찬가지거든요. 인터넷은 민주주의 발전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어요.”
빠흐띠는 이러한 믿음 아래 더 나은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개발자 조합이다.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조직과 사회가 민주적으로 운영되도록 돕는 플랫폼을 만든다. 이러한 기술을 활용해 더 나은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이를 통해 여러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빠흐띠의 꿈이자 목표다.
★ 개인의 목소리가 세상을 도달하는 플랫폼
지난 여름 진행한 온라인 입법 활동 프로젝트는 빠흐띠의 꿈이 실현 가능한 것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4개 법안 후보 중 온라인 투표로 시민이 직접 고른 ‘GMO완전표시제’ 법안 통과를 위해 ‘나는알아야겠당’이라는 온라인 프로젝트 정당이 창당됐다.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GMO식품과 외국 사례 등을 찾아 정보를 모으고, 세부 쟁점을 두고 토론을 벌였다. 이 내용은 국회의원에게 전달되어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아직 법안이 통과된 것은 아니지만 시민의 의사가 실제 정치에 다다른 데에 큰 의미가 있다.
권 대표는 이 과정에서 시민들은 자기에게 중요한 이슈가 있으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고 싶어 한다는 걸 느꼈단다. 문제는 평소 누군가 어떤 발언을 했을 때 그 이야기를 지지해주는 사람들과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빠띠’는 이러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누구나 자기 목소리를 내고 공감하는 사람들과 쉽게 만날 수 있도록 해주는 플랫폼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덕업일치 지향 온라인 공론장으로, 빠흐띠가 만들어낸 첫 번째 플랫폼이다. 사회 이슈부터 반려동물, 음식, 여행 등 자신이 원하는 주제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글을 쓰고 투표와 토론을 할 수 있다. 이처럼 각자 개성을 가지고 연대할 때 민주적인 공론장이 만들어질 거라고 빠흐띠는 믿는다.
“촛불집회 참여한 사람들을 보니까 자기 인증샷을 찍더라고요. 역사 현장에 있는 나, 개인이 중요한 거죠. 각자 개인으로 존재하는 상태에서 힘을 내고 싶은 거고요. 개개인이 중심이 되는 작은 네트워크, 그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가 새로운 민주주의 비전 같아요. 빠흐띠가 거기에 필요한 도구들을 만들어 내는 팀이 되고 싶어요.”
시민 참여가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과제
“지난 30년 동안 87년 체제는 대의 민주주의가 한국 사회 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줬어요. 대의제는 할 만큼 했어요. 이제는 시민 참여를 어떻게 이루어 낼 것인지가 새로운 과제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개헌을 하든, 무엇을 하든 논의의 중심에는 참여·분권·자치 이야기가 있을 거예요.”
★ 주민 의견 대변에는 관심 없는 대의제
많은 인구와 복잡한 구조의 현대 사회에서 대의정치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민주주의 운영 방식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자신들의 의사를 대변해 달라고 선출한 이들의 관심이 진정 자신들에게 있는지 의심하는 시민이 점차 늘어났다. 대표자들의 행위 속에서 시민의 그림자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인들은 물론 대의제 자체에 대한 회의로 이어졌다. 비단 이것은 한국 사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 대부분이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마포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위성남 지역활동가가 주민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였다. 2010년 위 활동가가 살고 있는 성미산 지역 주민들은 성미산을 지키기 위해 이곳을 개발하려는 홍익재단과 대립했다. 이미 2003년 한 차례 서울시의 개발 계획으로부터 힘겹게 성미산을 지켜냈던 주민들에게 또 다시 힘겨운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같은 일이 반복되니까 너무 답답했어요. 우리 의사를 대변할 정치인이 제도권에 한 명도 없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2010년 지방선거에 주민 후보로 구의원 후보를 한 명 내세웠죠.”
주민과 한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이 없으니 내부 구성원 가운데서 대표를 내 보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주민들이 생각한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 이후 2014년에는 ‘마포파티’라는 정치적 시민단체를 만드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후보를 냈다. 당시 출마했던 후보들은 평균 20% 정도의 꽤나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당선에는 모두 실패했다.
★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대의제 극복의 시작
그러나 여전히 위 활동가는 주민의 뜻대로 움직이는 지역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고민하고 다른 활동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있다. “대의 정치는 마트에 진열된 기성품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과 같아요. 입당을 한다고 해도 정당에서는 중앙 정치 차원의 문제들이 주요 관심사죠. 심지어 지역 후보를 낼 때도 전략적으로 후보를 선출해요. 지구당 차원에서 당원과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후보를 논의하는 일은 없어요. 이건 거대 정당이나 소수 정당이나 똑같아요. 결국 대의제에서는 주민들의 의사가 상관없어지죠. 주민들은 늘 관객이 되어버려요.”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마포파티에서는 구성원이 직접 참여하고 결정하는 당사자성과 모든 이에게 동등한 결정 권한이 있다는 1/n 정신을 내세웠다. 일종의 정치 실험이었던 셈인데 나름의 의미와 성과가 있었지만 아쉬움도 남았다. 때문에 위 활동가를 비롯한 마포의 지역 활동가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좋은 실천 방법을 찾기 위해 구체적인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위 활동가는 정치가 시민 뜻대로 흘러가기 위해 극복해야 할 것에는 대의제의 편리함도 있다고 말한다. 우리 스스로 대의제에 기대고자 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문제를 제기하기는 해도 해결은 누군가 대신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게 편하긴 해요. 지금도. 집회를 통해 요구했으니 정치권에서 알아서 해 주기를 바라는 모습이 보여요. 내가 나서지 않아도 누군가 해 주면 좋죠. 하지만 직접 정치라고 하는 건 본인이 나서야 되니까 굉장히 어려운 문제예요.”
위 활동가는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자기 요구와 생각을 어떤 식으로든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떤 위치나 세대, 상황에 놓여 있든 당사자들이 자기 처지의 자기 이야기를 해야 돼요. 남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요. 그렇게 되어야 주체로서 자기 발언이 되는 거죠. 자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 말은 쉽고 단순한 것 같아도 그게 가장 핵심적이고 어려운 일이에요.”
광장이 키우는 민주주의
“거창한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날씨가 한창 추워지고 있으니 뜨끈한 국물이라도 나눠먹으면 더 힘이 나지 않을까 하는 얘기가 나왔고 그 자리에서 각자 역할을 나눠서 준비했죠.” - 김경호 “치킨스프를 받아드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격려를 하고 갔어요. 광장에 나온 전혀 면식도 없던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고 짧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 이지훈
★ 광장에 나서는 즐거움
민중총궐기 3차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 11월 12일 광화문 광장 한편에 뽀얀 치킨스프가 가득 담긴 커다란 냄비가 등장했다. 늦가을의 추운 날씨, 광장에 나온 사람들은 따듯한 스프를 받아들었다. <치킨스탑> 프로젝트의 공동 기획자 중 한 명인 김경호 씨는 “2차 촛불집회에서 건너 건너 만난 사람들과 뒤풀이를 하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뭐라도 해보자’고 의기투합을 하게 됐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목적은 명료했고 방법은 경쾌했다. 그림을 그리는 친구는 <치킨스탑> 일러스트를 그렸고 누구는 닭을 씻고 준비했다. 누군가는 스티커를 만들었고 또 누구는 비용을 냈다.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더해 준비한 십시일반의 치킨스프는 광장에 나온 또 다른 ‘친구의 친구’들에게 온기로 전해졌다.
이지훈 씨와 김경호 씨는 30대 중반의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왔다. 때마다 선거에 참여하고 대학시절 선배들을 따라 집회에 몇 번 나가본 일이 지금껏 살며 해온 정치 참여의 전부였다. 특히 경상북도가 고향인 김경호 씨는 어린 시절부터 늘 들어온 대로 그동안은 보수정당을 지지해왔다고 했다. 이렇게 평범한 30대 시민들이 광장으로 나온 것이다. 그들은 광장에서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고 민주주의를 토론하고 무언가 새로운 일을 꾸미고 있다.
“여태 집회에 나가거나 정치에 참여하는 일은 어렵고 멀게 느껴졌죠. 그런데 이번 촛불집회는 100만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평화적으로 즐겁게 광장에서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어요.” - 이지훈
★ 민주주의는 자라고 있다
집회 뒤풀이 술자리 같았던 인터뷰는 어느새 ‘광장의 여성혐오’ 같은 첨예한 주제로까지 번져나갔다. DJ.DOC의 공연 취소가 주된 화제였다. 평화집회와 비폭력에 대한 더 첨예한 논쟁도 이어졌다.
“<치킨스탑>에서 만난 친구들이 추천해 줘서 <이갈리아의 딸들>을 사서 읽었어요. 아직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여성혐오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김경호
“예전에 뉴스에서 보던 집회 시위처럼 죽창이나 경찰 곤봉 같은 것들이 등장하는 폭력집회였다면, 100만 명이나 되는 시민들이 모였을까요? 더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나오면 세상은 더 많이 변할 것이라 생각해요.” - 이지훈
광장의 경험이 없었다면 어쩌면 나오지 않았을 화제들이다. 30년이 넘게 여성주의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던 남자는 여성주의 입문서를 읽게 됐고, 폭력적인 시위방식이 싫었던 남자는 현실을 외면하는 대신 광장의 문화를 바꾸기 위한 고민을 선택했다.
촛불과 광장은 세상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출근하고 일하고 돈을 버는 것이 전부였던 헬조선은 ‘민주주의’와 ‘더 좋은 세상’에 대한 상상이 가능한 대한민국으로 변하고 있다. 남의 일 같았던 말, 쓸데없이 진지하고 과하게 어려웠던 말, ‘정치’와 ‘민주주의’는 거리로 광장으로 소시민의 일상으로 다가왔다. 2016년 겨울,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자라고 있다.